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에너지와 비료, 기타 ‘무더기 화물(Bulk)’ 상품의 전략적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상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트럼프가 모든 걸 망쳤다”고 말한다.
북극항로 개발은 두 개의 전쟁이 모두 끝나고 미러관계 복원과 함께 본격화 될 전망이다. 북극항로 개발속도는 미국의 사태수습 능력에 달려 있다. 부산을 북극항로 기항으로 만들려는 한국도 이런 큰 그림의 주요 이해관계자다.
트럼프의 성공이 미러협력 증진과 한국의 신성장동력이 될 북극항로 개발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럭비공
해운 전문가들은 미국의 해상 봉쇄가 걸프 지역 전체의 해상운송비용과 불확실성, 운항 위험을 증가시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란 항만과 연결된 선박 뿐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다른 걸프 국가들로 향하는 선박들까지 이미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최수범 사단법인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4월 하순 러시아 매체 <리아노보스티>와의 인터뷰에서 “설령 일부 선박 운항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상업적 행태는 즉시 변화했다”면서 “용선은 더욱 어려워지고, 보험료는 더 비싸지며, 선주들은 더욱 신중해졌다”고 분석했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이번 봉쇄 조치는 심각한 법적 분쟁 소지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통상 해상 봉쇄는 ‘해상무력충돌법’에 따라 평가된다. 이 법은 해상에서 발생하는 무력 충돌 때 민간인 보호와 전투수단 및 방법 제한을 다루는 국제인도법(IHL)의 일부다. 196개국 정부가 가입한 제네바협약과 추가 의정서가 IHL의 근거다.
최 사무총장은 “유엔 헌장 체계 내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명시적 승인이 있을 때 그 합법성이 더욱 쉽게 옹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상 봉쇄를 규율하는 전통적인 법에서 핵심 요건에는 사전통보, 실효성, 공정한 집행, 인도주의적 고려 존중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란 영토 항구에 대한 일방적 봉쇄의 법적 정당성은 매우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북극항로, 호르무즈 봉쇄로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선박을 이용한 에너지 운송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호르무즈 해협 바닷길의 대안적 무역로로 북극항로에 다시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해운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위기가 북극 항로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호르무즈에 의존하는 무역 흐름을 즉시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최수범 사단법인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호르무즈 사태를 계기로 여러 나라에서 무역로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지만, 급격하게 대규모로 무역로 대체가 일어날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최 사무총장은 “호르무즈 사태의 영향은 이미 심리적인 차원을 넘어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해협 봉쇄는 심각한 사태 악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법적 근거는 심각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북극 항로에 대한 장기적인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총장은 다만 “북극항로는 ▲여전히 ‘계절성’ 제약을 받고 있고 ▲쇄빙선 지원 의존도가 높으며 ▲보험 제한 ▲인프라 병목 현상 등 상당한 운영상의 제약에 직면해 있다”면서 “향후 수년간 즉각적인 대안보다는 보완적인 항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트럼프의 정치생명 약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미 동맹국들
미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차원에서 북극항로 개발에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미국이 배후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지 못(않?)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종전 이전에는 본격적인 미러 협력이 사실상 어렵다.
미국은 알래스카 북부 해안지대 원유와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생산된 액화천연가스(LNG)를 북극해를 통해 유럽으로 판매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종전에 반대하는 유럽연합(EU)이 북극항로를 통한 미국산 화석연료 수입에 강하게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영향권이 70% 이상인 항로가 활성화 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취지다.
EU는 한편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이래 미국의 소프트파워 약화를 주목하고 있다. 과거 미국의 명백히 막강한 단극패권 구도에서 ‘자의반 타의반’ 충성경쟁을 했던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은 하나둘 미국을 향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란 전쟁 개전에 부정적인 여론이 61%에 이른다는 미 국내여론을 고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패배 시나리오를 고려한 ‘시간끌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상호관세와 미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강제적 대미투자 패키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미 동맹국들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형성, 트럼프 2기 내각이 씌운 올가미를 벗어던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 EU향 에너지 수출길로만 북극항로에 관심
특히 EU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와는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미러의 북극항로 개발에도 제동을 걸기 위해 러시아의 도움을 받거나 러시아 북극항구에 들어간 선박들이 EU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할 전망이다.
EU는 지난 2월 발표한 20번째 대러 제재 패키지안에서 러시아산 원유 해상 운송 서비스 전면 금지와 함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소속 유조선 43척을 추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지난 4월27일 예비 승인된 이번 조치는 사실상 러시아 해역이나 북극항로를 이용한 선박들이 EU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갖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러시아 연계 유조선의 국제해역 압류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북극항로 개발과 러시아의 해상 수송망 자체를 제약하려는 전략의 일부로 분석된다. 지난 2025년 6월9일치 <파이낸셜타임즈(FT)> 보도에 따르면, 5월초 현재 대러 제재 때문에 유럽 해운사들이 러시아 쇄빙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북극항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이는 EU의 대러제재 체계가 러시아 북극항만과의 협력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미국은 에너지 이외의 교역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의 영향권이 70% 이상인 북극항로가 일반 상품을 위한 국제통상길이 되면 가뜩이나 취약한 북극항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잠식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해운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미국이 에너지 이외의 교역에 대한 북극항로 항행조건 등을 복잡하게 설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에너지 주도권 빼앗은 미국, 북극항로 속도 낼까?
에너지 측면에서 보자면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에 충실했고, 사실상 성공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와해 또는 무력화 시켜, 에너지 주도권을 미국이 거머쥐려는 계획은 조만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우선 연말까지 높은 국제유가를 유지하면서 OPEC와 OPEC+의 유가담합 구도를 파탄냈기 때문에, 주요 산유국간 담합의 힘은 약화되고 경쟁이 원유 증산 가속화 될 전망이다.
이는 국제유가를 소폭 끌어내리는 효과가 있겠지만, 서아시아산 에너지의 주요 고객들인 동아시아 선진국들(한중일)은 미국과 러시아산 에너지로 대거 갈아탈 전망이 높다. 호르무즈 사태를 계기로 최소 거래선을 다변화 할 것이기 때문에, 서아시아 걸프 산유국들은 불가피하게 대형 거래처 다수를 미국과 러시아에 빼앗기는 셈이다.
한국의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올해 안에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시험운항 등을 러시아 당국과 협력하겠다고 공포했다. 그러나 미국이 유럽의 반발을 달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의 반발이 강화되면 새 항로에 대한 미러협력도 동력을 잃을 전망이다. 미러가 북극항로 개발에 대한 동력을 잃으면 한국이 아무리 북극항로 개발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트럼프가 망친 세계”를 성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성공이 미러협력을 본 궤도에 올릴 수 있다. 미러협력이 이뤄져야 한국이 북극항로 개발을 통해 부산을 북극항로 극동 기항으로 개발할 동력을 얻는다.
'트럼프는 밉지만'…트럼프 성공이 신성장동력 북극항로 참여 관건
한국은 트럼프가 강매한 투자협약 패키지를 무력화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러협약이 보장하는 북극항로 개발 프로젝트(신성장동력)에 편승해야 하는 처지다.
우려되는 것은 한국에 미 공화당 인맥이 드물고, 민주당 인맥만 많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집권 2기 트럼프의 레임덕이 본격화 되고, 민주당 목소리가 커진 미국은 러시아를 한층 더 심하게 악마화 할 것이다. 대만해협에서 전쟁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아 한반도에 전쟁의 불씨가 번질 수 있다.
북극항로? 그런 건 ‘사치’로, 잊어야 할 단어가 될 전망이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