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러우 전쟁에 이어 미국과 이란의 전쟁까지 지구상 곳곳에서 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전쟁 속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이 바로 방산업체들이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냥 꽃길만 펼쳐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동과 유럽, 아시아를 동시에 뒤흔드는 지정학적 긴장이 군비 경쟁을 자극하고 있지만 정작 방산업계 내부에서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라는 경고가 커지고 있는 것. 포탄과 미사일 주문은 폭증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생산할 핵심 원자재와 부품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전쟁이 발생하면 생산 확대를 통해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에너지와 전략 광물, 반도체, 산업용 가스 공급망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생산 능력 자체가 제한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분이 방산업계의 발목을 잡는 방해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글로벌 공급망 병목, 방산업계의 최대 리스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방산 공급망 안정화 필요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NATO 산업자문그룹(NIAG)은 보고서를 통해 “장기전 환경에서는 생산 능력보다 공급망 회복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포탄과 미사일 생산 확대에 나섰지만 핵심 부품 부족과 원자재 공급 차질로 생산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연합(EU) 역시 방산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한 공동 조달 체계를 추진하며 전략 원자재 확보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대 방산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첨단 무기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와 반도체, 특수합금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리스크로 꼽았다.
실제로 미사일과 전투기, 레이더 시스템에는 갈륨·게르마늄·희토류 같은 전략 광물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문제는 이들 자원의 상당 부분이 중국 등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와 유럽 국가들이 최근 전략 광물 비축 확대와 공급망 내재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공급망 리스크 확대를 경고하고 있다. IEA는 핵심 광물 보고서에서 에너지 전환 산업뿐 아니라 방산·항공우주 산업까지 전략 광물 확보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특정 국가의 자원 통제가 글로벌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산업용 가스 역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헬륨은 반도체와 위성, 미사일 제조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데 공급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황은 화약과 폭약 생산의 핵심 원료다. 글로벌 공급망 분석기관들은 최근 중동발 에너지 불안과 물류 차질이 산업용 원료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이런 충격이 단순한 원가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급망 병목이 심화되면 무기 생산 일정 자체가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은 최근 납기 지연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으며, 일부 생산 라인은 특정 부품 부족으로 가동 차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대전은 단순한 화력 경쟁이 아니라 산업 생산 능력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군사력 우위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생산과 보급을 유지할 수 있는 공급망 체계가 전쟁 수행 능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 K-방산, 급격한 성장에 가려진 취약점 해결해야
한국 방산업계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K-방산은 폴란드와 중동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상당수를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특수강과 반도체, 정밀 화학 소재, 희토류 기반 부품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수출 물량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계약 확대 자체보다 실제 생산과 납기 이행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도 보고서에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방산 산업의 생산 차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해상 운임 증가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생산비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단순한 전쟁 특수가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방산 산업이 대표적인 ‘수혜 산업’으로 분류됐다면, 앞으로는 원자재와 에너지, 물류, 첨단 소재 공급망 확보 능력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은 최근 방산 공급망 안정화를 국가 안보 전략과 연결해 접근하고 있다. 전략 광물 비축과 군수용 반도체 내재화, 자국 중심 생산 체계 구축이 대표적이다. 공급망을 통제하는 국가가 결국 군사력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이번 위기의 핵심은 단순한 무기 수요 증가가 아니다. “누가 더 많이 주문받느냐”보다 “누가 끝까지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방산 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수혜 산업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에 가장 민감한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