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현대 환경사에서 상징적인 전환점이었다.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통해 무한한 경제성장이 지구의 유한한 자원 구조와 충돌할 것이라 경고했다.
같은 해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는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라는 구호가 인류 공동의 환경윤리로 제시되었다. 이 두 선언은 산업문명이 초래한 자원 고갈, 환경오염, 인구 증가, 생태계 위기를 전 지구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 이러한 문제의식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오늘날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 현실은 당시의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반세기 남짓(약54년)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담론들을 비판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이론들은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통찰했지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등장과 인간 사회 내부의 역사적 불평등, 국제 권력 구조, 그리고 후진국의 발전권 등의 문제는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장의 한계, 과연 누구의 성장이었나 ?
『성장의 한계』는 자원 소비와 산업 생산 확대가 지속될 경우 지구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분석과 경고였다. 그러나 이 담론은 이미 산업혁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서구 선진국 중심의 문제의식이었다. 유럽과 북미는 수세기 동안 ▲석탄·석유 기반의 산업화 ▲식민지 자원 수탈. 대규모 삼림 파괴 ▲탄소 대량 배출과 기후변화 원인 제공 ▲국제 무역 질서 주도 등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선진국은 높은 생활수준과 고도 산업 인프라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성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직 산업화조차 충분히 이루지 못한 국가들 입장에서는 공정하지 않게 들릴 수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게 성장은 단순한 소비 확대가 아니라 전력 공급, 식량 안정, 교육, 의료, 일자리 확보, 경제력과 군사력의 기반을 위한 필수적 발전 과정이다.
따라서 후진국이 보기에는 선진국이 먼저 지구 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소모한 후 후발국에게 성장 제한을 요구하는 것은 “사다리를 먼저 올라간 뒤 뒤따르는 이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처럼 비칠 수 있다.
실제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 인민들도 서구 유럽과 북미 국가들처럼 풍족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 온 바 있다.
‘하나뿐인 지구’가 간과한 형평성의 역설
‘하나뿐인 지구’라는 구호는 인류 공동의 환경책임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안별로 다르고(case by case), 경우의 수와 문제의 형태도 다양하다.
역사적 탄소 배출과 산업화의 혜택은 선진국들이 선점하고, 기후피해는 오히려 빈곤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는 역차별 현상이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환경규제 부담도 후진국에게는 가혹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보편적 환경규범은 형식적 평등일 수는 있어도 실질적 정의가 아닐 수 있다. 가령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나 각종 지속가능경영지표(ESG) 규범, 국제 환경기준은 친환경 전환이라는 명분을 갖지만, 동시에 준비되지 않은 국가에게는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환경규범이 아니라, 기후정의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발전권을 함께 고려해야만 진정한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은 유럽 중심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서구인에게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었지만, 인디언 원주민에게 그것은 침략, 학살, 문화파괴의 시작이었다.
한일관계에서 볼 때도, 일본 제국주의 역시 스스로의 침략행위를 ‘대륙 진출’, ‘근대화’, ‘동양 평화’라는 언어로 포장했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것은 명백한 침략이었고, 주권 침탈과 식민지 지배였다.
『성장의 한계』와 ‘하나뿐인 지구’ 이론은 순수한 과학 담론이면서 동시에 서구 문명이 제시한 세계 질서의 일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 보편성은 반쪽짜리 진리이며, 반드시 비판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새로운 ‘재생에너지’ 경험과 인류의 미래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의 시대를 넘어 태양광, 풍력등 재생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새로운 에너지 경험을 하고 있다. 석탄, 석유를 채굴하고, 이산화탄소를 뿜어내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쓸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태양에너지는 우주와 태양계가 형성된 이후, 지구 나이를 감안하면 거의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전 셰계 곳곳으로 그리고 농촌 마을 구석구석까지 퍼져 가고 있는 태양광 발전을 보면, 선후진국을 망라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성장의 한계'의 주요한 논거 였던 화석연료 시대를 벗어나, 환경오염, 기후변화, 빈부격차, 불균형 발전 등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게 된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핵심은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를 기반으로 발전과 성장의 기회를 전 인류가 공유하는 데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문명 전환, 책임윤리, 민주주의, 평화와 협력의 회복이야말로 인류가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고 공동 번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석탄, 석유 문명을 넘어, 재생에너지 기반의 협력과 공존의 문명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뿐인 지구’는 모든 인류에게 공정한 희망이 될 수 있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