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국 경기 둔화 공포 비껴간 한국, 해결사는 반도체

소비·생산 예상 밑돈 中, 한국 수출은 고공행진
과거 공식 깨지나, 중국 흔들려도 한국은 버틴다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중국 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소비와 생산, 투자 지표가 일제히 시장 기대를 밑돌며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한국 경제는 예상외의 선방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급증하면서 중국이 흔들리면 한국도 흔들린다는 오래된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완전한 탈(脫)중국으로 해석하기는 이르다고 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그보다는 지금의 흐름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기대는 선별적 호황에 가깝고, 석유화학·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여전히 중국 경기 영향권 안에 있다는 분석이다.

 

◆ 중국 4월 산업생산 전년 동월 대비 4.1% 증가에 그쳐
18일, 로이터통신(Reuters)은 중국 국가통계국(NBS) 발표를 인용해 중국의 4월 산업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4.1%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5.7%)보다 둔화했을 뿐 아니라 로이터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5.9%)도 밑돈 것으로 이는 최근 수년 사이 가장 낮은 증가 폭 가운데 하나다.

 

생상이 삐걱대니 자연히 소비 심리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예상보다 약했던 소비 회복세가 그를 증명한다. 중국의 4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0.2%에 머물렀다. 3월(1.7%)보다 크게 둔화했고, 시장 전망치(2.0%)에도 크게 못 미쳤다. 중국 정부가 소비 진작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가계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투자 부문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1~4월 누적 고정자산투자는 전년 대비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부동산 투자 부진이 장기화하며 건설·소비·금융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로이터는 “중국 경제가 2분기 들어 뚜렷하게 동력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경제 둔화는 단순한 내수 부진 문제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세계 제조업 중심지 역할을 해온 중국의 생산 둔화는 원자재 수요와 교역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의 상황이다.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이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간 한국의 중국의 경기지수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이력이 있다. 과거의 예를 지켜보면 한결 같이 그런 모양새를 띠어온 것.

 

실제로 지금까지 중국 경기 둔화는 곧바로 한국 수출 악재로 연결됐다. 한국은 반도체와 화학소재, 철강, 디스플레이 부품 등을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해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와 한국 수출은 사실상 ‘운명공동체’에 가까웠다.

 

실제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25% 안팎에 달했다. 중국 소비와 제조업 투자 흐름이 한국 경제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달라졌다.

 

◆ 미국과 베트남, 대만 등으로 향하는 수출 비중 확대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집계를 보면 한국의 4월 수출은 858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큰 폭 증가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상위권 실적이다. 무역수지도 대규모 흑자를 유지했다.

 

그 주역이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가 수출 증가세를 사실상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모리 가격 회복과 AI 서버 투자 확대 영향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관세청의 5월 초순 잠정 집계에서도 반도체 수출 강세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출 증가세 상당 부분을 반도체가 견인한 셈이다. 즉, 과거의 ‘중국 중심 성장 공식’이 ‘AI 공급망 중심 성장’으로 일부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긍정적인 대목은 중국 등 일부 국가에 크게 의존했던 한국 수출지도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미국과 베트남, 대만 등으로 향하는 수출 비중이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규제 강화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 역할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AI 반도체 시장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서버용 HBM 수요가 폭증했고, 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소비보다 미국 AI 투자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과거 범용 메모리 중심이던 시장이 AI 특화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익 구조 역시 개선되는 흐름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 경제 흐름을 두고 중국 의존 시대가 약해지고 있다” 해석도 나온다. 과거처럼 중국 내수 회복 여부만 바라보던 구조에서 벗어나 미국 AI 투자와 첨단산업 공급망 변화가 새로운 성장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최근 흐름을 ‘중국 리스크 종료’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 수출 증가세 상당 부분이 반도체 한 업종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석유화학과 철강, 디스플레이, 배터리 소재 업종은 여전히 중국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는 석유화학과 철강 수요 둔화로 직결되는 대표 변수다.

 

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성장 둔화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중간재 수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중국 경기 회복 지연을 올해 한국 성장률 하방 위험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 역시 변수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신규 주택가격 하락폭은 다소 둔화했지만 부동산 투자 감소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 회복 없이는 소비와 제조업 투자 반등도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현재 한국 경제가 보여주는 모습은 ‘중국 리스크 탈피’라기보다 ‘반도체 편중 성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수요가 강한 동안에는 한국 수출이 버틸 수 있지만,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또 다른 취약성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경제연구기관 관계자는 “예전처럼 중국 소비 회복만 기다리는 구조는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중국 경제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 수출 엔진이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도기 국면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