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커피값 이상 무.. AI로 원재료 쇼크 막는 식품업계

이상기후·전쟁에 농산물 가격 출렁…‘애그플레이션’ 상수화 우려
커피·코코아 쇼크 반복…먹거리 물가 흔드는 농산물 변동성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에 소비자들의 근심이 커져만 간다. 도대체 우리가 먹는 커피와 초콜릿, 빵, 라면 가격은 왜 반복해서 오르는 걸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먹거리 물가 불안의 배경에는 국제 농산물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이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지정학 리스크가 상수가 되면서 글로벌 식품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원재료를 싸게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조달해야 하는지’를 예측하는 경쟁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

 

◆ “감 대신 데이터”…AI가 바꾸는 식품업계 공급망 전략
최근 국제 농산물 시장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에서는 반복되는 가뭄과 폭염이 작황에 영향을 미쳤고, 베트남 역시 이상기후 여파로 생산 차질 우려가 이어졌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는 주요 생산지인 서아프리카 지역의 병충해와 기상 악화로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오렌지 농축액 가격 역시 미국 플로리다 지역 작황 부진 영향으로 급등세를 보였고, 밀·옥수수·대두 같은 주요 곡물도 전쟁과 물류 차질, 주요 생산국 정책 변화에 따라 가격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충격이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 흉작이나 국제 분쟁 같은 돌발 변수에 가격이 일시적으로 출렁였다면 최근에는 기후변화 자체가 구조적 위험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서 생산량 예측이 어려워졌고, 공급망 혼란도 반복되는 양상이다.

 

이 여파는 결국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 직결된다. 국제 원재료 가격 상승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커피·초콜릿·제빵·면류·음료 가격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는 이를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발 물가 상승)’이라고 부른다.

 

실제 식품업계에서는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던 시기 라면과 과자, 빵 가격 인상 논란이 반복됐고 커피 프랜차이즈 역시 원두 가격 부담을 이유로 판매가를 조정해왔다. 사료용 곡물 가격 상승은 축산업 비용 증가로 이어져 우유와 육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식품·곡물 기업들은 공급망 운영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현지 네트워크와 구매 담당자의 경험에 의존해 수급 전략을 세웠다면 이제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격 변동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AI는 위성사진과 기상 데이터, 토양 정보, 선박 이동 경로, 항만 재고, 뉴스 흐름, 선물시장 가격 등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 특정 작물 생산량 감소 가능성이나 가격 급등 위험을 조기에 탐지하는 데 활용된다. 예컨대 브라질 커피 재배 지역 강수량 감소와 병충해 확산 조짐이 나타날 경우 향후 공급 부족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특정 국가의 수출 제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대체 조달처를 찾는 식이다.

 

◆ 맥킨지 “정보력보다 분석 속도”…식품기업 공급망 전략도 변화
글로벌 컨설팅 기업 McKinsey & Company 역시 최근 농산물 거래 산업 보고서에서 이런 변화를 주목했다. 맥킨지는 지난 12일, ‘How agility and AI could rewire agriculture trading’ 보고서를 통해 농산물 거래 산업이 과거보다 훨씬 높은 변동성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기후변화와 지정학 갈등, 무역 규제, 바이오연료 정책 변화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적인 경험 기반 거래 방식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보고서는 과거 농산물 거래에서 강점으로 꼽히던 ‘정보 접근성’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예전에는 현지 생산 상황과 재고, 물류 흐름을 먼저 파악한 기업이 유리했다면 이제는 위성 이미지와 기상 데이터, 국제 뉴스, 선박 운항 정보 등이 공개 데이터 형태로 빠르게 축적되면서 누가 더 빠르게 분석하고 실행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글로벌 곡물·농산물 트레이딩 기업들이 이미 AI를 활용해 기상 상황과 재고 흐름, 공급량 변화를 실시간 분석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틱(agentic) AI’가 위험 신호 감지와 대체 공급망 제안까지 수행하는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국내 식품업계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 밀과 옥수수, 대두, 설탕 등 핵심 식품 원재료 상당 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시세 변동과 환율 변화가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현재 생산관리와 수요 예측 중심으로 활용되는 AI가 향후 원재료 구매 전략과 공급망 관리 영역으로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부 대형 식품기업들은 판매 예측과 재고관리 고도화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국제 원재료 가격 변동 예측과 구매 시점 최적화에도 활용 범위를 넓힐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경험 많은 구매 담당자의 감각과 네트워크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국제 물류 흐름과 기후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읽고 대응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며 “AI를 활용한 예측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원가 방어 능력 차이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식품기업의 경쟁력이 단순 제조 능력이 아니라 예측 능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국 미래 먹거리 물가의 변수는 날씨뿐 아니라 그 변화를 얼마나 빨리 읽는 AI 기술력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