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14일(베이징 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꽤 묵직한 대미 공세를 펼친 사실이 포착됐다.
정상회담을 불과 12일 앞둔 2일, 중국 상무부가 “모든 중국 기업과 개인들은 시행 중인 ‘제재 법’에 따라, 이란산 원유를 구매한 중국 정유사 5곳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미국 상무부를 ‘진퇴양란’에 빠뜨린 중국의 ‘제재 (차단)법’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사업을 하는 다국적 정유회사와 투자은행 모두에게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하는 조치였다. 미중 모두에서 사업하는 모든 다국적 기업들은 이번 조치로 법적 모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란산 원유를 구매한 5개 중국 정유사가 미국 제재를 따르면, 중국 ‘제재 법’을 어겼기 때문에 중국 법원에서 기소된다. 반면 5개 정유사가 미국의 제재 준수를 거부하면 미국의 ‘2차 제재(secondary boycott)’ 대상이 된다.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상하이 소재 다국적 은행들은 큰 고객들(5개 정유사)을 잃게 된다. 미국 상무부가 한마디로 ‘진퇴양란’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중국 ‘제재 법’의 당초 입법 취지가 이런 절묘한 함정에 미국을 빠뜨리는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5개의 정유 시설을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 도이치뱅방 등 상하이 금융가에서 영업하는 모든 지구촌 금융기관들 역시 고객(5개 정유사)을 잃는다.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적’ 미중 정상회담 5년 전에 이런 절묘한 수를 준비를 한 것은 ‘천리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평가받을만 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우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SWIFT)을 포함한 미국과 서방의 각종 제재로 고전을 할 것 내다봤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의 비슷한 ‘제재 법’으로 본을 뜨되, 미세한 세부까지 촘촘히 구멍을 막아 공격자(미국)에게 완벽한 외통수를 날릴 방책을 준비했다.
런던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부 서아시아) 연구센터’의 나예프 샤아반(Nayef Sha’aban) 연구원이 중국의 묘수를 샅샅이 분석, <지정학감시자(Geopolitical Monitor)>에 칼럼으로 기고했다. 칼럼 제목은 ‘5년간 숨겨져 있던 사건: 이란 전쟁은 중국의 제재 회피 실험장이었다(Five Years in the Drawer: Iran War a Laboratory for China’s Sanction Busting)’이었다.
미중정상회담 직전 중국이 발표한 도발적인 법령 준수 명령
샤아반 연구원은 “중국 상무부가 2021년 1월 9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길고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의 법령을 발표했다”고 칼럼의 운을 뗐다. 법령 전체의 이름은 ‘외국 법률의 부당한 역외 적용 및 기타 조치에 대한 대응 규칙’이다.
텔레비전 보도도, 격렬한 외교적 성명도, 서방 신문의 사설도 없이 조용히 발표한 법령이었다. 이 법령은 조용히 통과됐다. 샤아반은 “변호사들은 서류철에 넣어두었고, 학자들은 전문 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서랍 속으로 사라졌다. 서랍 속에 머물던 이 법령이 5년 3주 23일만인 2026년 5월2일 깨어났다”고 묘사했다.
중국 상무부는 ‘제재 법’에 따라 “모든 중국 기업과 개인은 이란산 원유를 구매한 중국 정유사 5곳에 대해 미국이 부과한 제재를 준수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다롄(大连)의 헝리 석유화학(Hengli Petrochemical)과 산둥성 및 허베이성 소재 4개의 독립적 ‘티팟(teapot)’ 정유사들을 ‘테헤란의 가장 중요한 고객들’로 소개하며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렸다. 이에 지난 2일 중국 정부가 5년여 잠자고 있던 법령을 근거로 미국 제재 불응 명령을 내린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의 명령을 호르무즈 해협 위기에 대한 중국측의 ‘방어성 반격’으로 여겼다. 좀 더 예리한 분석가는 “중국이 5월14일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기적절하게 추진된 긴장 고조 조치”로 해석했다.
샤아반 연구원은 “분석가들이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제재 법’은 이란 위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러시아 사태에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가 당하는 걸 지켜본 중국…“우린 물리칠 것”
중국은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한 뒤 서방의 공조된 제재 체계가 신속하게 작동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러시아는 SWIFT 시스템에서 퇴출되고, 중앙은행 외환보유고가 동결됐다. 러시아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완전히 고립됐다.
샤아반 연구원은 “러시아는 거대한 국가임에도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도 지난 2018년 ‘반제재법’이 제정됐지만, 이는 체계적인 법적 체계가 아닌, 보복 조치 수준의 미약한 도구였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의 사례를 지켜본 중국은 “우리 차례가 왔을 때 뭐가 필요할까?”를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이 러시아처럼 서방의 제재 공격을 받는 날에 대비해 마련해 둔 방책이 바로 2021년 1월에 제정된 ‘제재 (차단)법’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이 1996년 제정한 ‘헬름스-버튼법((Helms-Burton Act, 쿠바 제재 법안)’과 ‘이란 및 리비아 제재법(Iran and Libya Sanctions Act, ILSA)’에 대응, 같은 해인 1996년 ‘제재 차단법’을 을 제정했다. 쿠바와 리비아, 이란에서 사업하는 외국 기업에 2차 제재를 가하는 효력을 명시한 법령이었다.
중국의 ‘제재 법’은 1996년 EU의 ‘제재 (차단)법’을 본떠 신중하게 설계됐다. 중국 정부는 외국법령이 규정한 ‘정당하지 않은 역외 적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더 넓은 권한과 재량권을 자국 ‘제재 법’에 명시했다. EU 차단법은 차단 대상 법률을 명시적으로 나열했지만, 중국 차단법은 달랐다.
샤아반 연구원은 “중국 ‘제재 법’에서는 의도적으로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 중국이 어떤 외국법에 대해서든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언제든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장착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그물(제재 법)을 친 뒤 법률이 가장 절묘하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시점을 기다렸다. 샤아반 연구원은 칼럼에서 “적용 전례가 없는 법은 전략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중국은 특유의 인내심으로 적합한 상대를 찾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고 묘사했다.
중국은 4가지 조건이 맞다 떨어질 때까지 5년을 기다렸다
EU의 ‘제재 (차단)법’은 제정 이후 25년 동안 명목상의 법에 그쳤다. 주요 기업에 대해 집행된 사례는 거의 없었고, 당초 약속했던 강력한 제재 효과도 내지 못했다.
중국은 EU 법령의 실패를 치밀하게 분석, 기어이 그 원인을 파악해냈다. EU로부터 얻은 반면교사의 핵심은 “집행되지 않는 법령은 상대방에게 ‘결코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샤아반 연구원은 “중국은 유럽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시기에 해당 법령을 이용하지도 않았다”고 논평했다. 그는 중국이 자신들의 ‘제재 법’을 발효할 ‘적절한 순간(Golden Time)’의 4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돼야 했다고 강조했다.
우선, 국제법적・도덕적 명분이다. 비동맹 국제사회의 여론에 따르면, 미국이 전쟁 중 이란산 석유를 구매하는 중국 정유업체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 남용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이를 ‘장거리 관할권 행사’로 명시하고 있다.
둘째, 쉽게 버릴 수 있는 표적이다. 티팟 정유사는 민간 소유의 독립 운영 시설로, 시노펙이나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같은 국영 대기업보다 미국 금융 시스템에 훨씬 덜 노출돼 있다. 만약 갈등이 고조된다면, 중국은 민간 정유사 5곳을 잃더라도 구조적 기반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셋째 , 미중간 즉각적 긴장 고조가 미국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상황이다. 5월14일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2주 정도 앞둔 미국은 2일 중국의 ‘제재 법’ 발효 명령에 즉각 대응할 수 없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심각한 대립을 보여준다면 회담 자체가 또다시 무산될 수 있다.
넷째, 중국이 ‘책임감 있는’ 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다는 점이다. ‘제재 (차단)법’이 발효된 2일(베이징 시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이란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왕 부장은 즉각적인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촉구했다. 이란을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것. 이런 대응은 중국이 서방 블록 전체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국제법적 월권 행위에 반대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의미지를 보여주려 한 노림수였다.
이란은 리허설, 대만은 본 공연
2024년 베이징은 이란 석유 수출량의 80% 이상을 구매했다. 이란과 중국의 이런 관계는 미국과 중국 간의 심각한 갈등이 에너지와 무역, 금융 제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러 시나리오별로 체계적인 금융 및 법적 대응을 강구했다.
샤아반 연구원은 “제재 (차단)법령은 중국의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인 CIPS, 석유거래의 위안화 결제, 10억 배럴이 넘는 석유 전략비축량과 결합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런 준비가 대만과의 잠재적 갈등을 위한 기반 형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언젠가 대만에 대한 중국의 행동에 대해 러시아에 적용했던 것과 같은 포괄적 제재 체계로 대응할 때, 중국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이라고 설명했다. 5월2일 첫 시행된 ‘제재 (차단)법’과 이란산 석유에 대해 시험된 CIPS 결제시스템 등이 미국의 조치를 무력화 시키는 방책들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번 ‘제재 (차단)법’ 명령에서 홍콩을 모호한 상태로 남겨뒀다. 홍콩은 중국과 이란 간 석유 거래 결제의 상당 부분이 처리되는 곳이다. 샤아반 연구원은 “이런 의도적인 모호함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고, 외교적 운신의 수단”이라며 “홍콩은 이란과 중국 양국 금융시스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이번 명령에서 홍콩을 명시적인 적용 범위에서 제외, 금융 전쟁에서 우회로를 열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26년 호르무즈 해전은 에너지 위기, 지역 전쟁, 미·이란 관계의 전환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이라고 칼럼에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미중정상회담에서 실제로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러면서 “중국이 만들어 놓은 미국 제재 무력화 사례는 러시아와 이란, 북한 등에 두루 전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