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서울 시간) 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가장 뚜렷한 성과는 에너지 협력 분야로 관측된다.
서아시아 지역 긴장 고조로 같은 처지의 에너지 순수입국인 양국이 원유와 석유제품,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서로 보장, 에너지 협력을 심화하기로 합의한 점이 가장 뚜렷한 가시적 성과로 보인다.
19일 일본 <교도통신>은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과 한국은 에너지 협력의 구체적인 분야를 추진하기 위한 정책 대화를 구축할 것이며, 양국은 핵심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한일정상회담 직후 밝혔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한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에너지협력에 진심 확인
<교도통신>은 일본과 한국 모두 서아시아 원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지난 2월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원유 수송의 주요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이후 원유 및 관련 제품 확보에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에서 “현재 구상 중인 한일정책대화 계획에 따라 양국은 두 가지 축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제, “하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석유 비축량 확보를 위한 협력”이라며 “다른 하나는 비상시 양국 비축량에서 석유제품과 LNG를 상호 공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은 지난 4월 일본 주도로 발표된 약 1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 프레임워크를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공급 확보를 위해 협력하고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도 이 프레임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 정상이 지난 14~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지” 묻자 “미중 양국간 외교적 교류에 관한 사항”이라며 사실상 답변을 회피했다.
미국의 난폭한 외교통상 정책, 험악해진 중일관계로 돈독해진 한일협력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중국이 지난 1월 일본에 대해 희토류·이중용도물자 수출을 제한하자 타격을 받은 점이 분명하다. 또 나프타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측면도 역력하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일본 소재・부품・장비 의존이 여전하지만, 반대로 일본도 한국의 에너지·제조 기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일간 상호보완적 실용주의 코드로 읽힌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의 달러 패권 약화에서 비롯된 동맹국들의 원심력 강화의 맥락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달러 패권 약화를 저지하려고 동맹국 여부를 가리지 않고 상호관세로 압박하고 대미투자와 맞바꾸는 전례 없는 정책을 구사했다. 동아시아 군사안보와 미국 중심의 경제권에 크게 의존해온 한국과 일본은 당혹스럽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한일은 미국과 관세협상, 대미투자협상을 마무리 한 이후 서로 공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은 상호관세를 낮추는 대신 조선업 등 전략산업 분야에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되, 연간 납입액은 최대 200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도록 공동설명자료(Joint Fact Sheet, JFC)에 명시했다.
일본 소부장 기업들, 중국 악재 우회로 확보 위해 한국에 투자
한국은 자본이 대거 미국으로 이동하는 만큼 다른 나라 자본을 해외직접투자(FDI) 형태로 유치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해 졌다. 마침 새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대만해협 위기가 일본의 ‘존립 위기’ 상황”이라는 취지로 발언,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다. 반발은 중국의 대일 희토류·이중용도물자 수출통제로 이어졌다. 위기를 느낀 일본이 한국과의 공조를 요청해왔다.
이경근 법무법인 태평양 국제조세센터장은 지난 1월 중순 기자와 만나 “약 1년전부터 일본의 주요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한국에 현지법인(자회사)를 세우는 식으로 직간접 투자를 늘려왔다”고 밝혔다.
일본은 한국과 에너지 관련 협력관계도 맺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협력은 나프타 무역이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는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1월말 호르무즈 위기이래 일본의 나프타 가격이 무려 71%나 올랐다”면서 “컬러 인쇄된 포장지를 흑백으로 바꾸는 자구책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필요한 나프타의 일부를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동병상련 한일, LNG 협력도 긴밀
LNG도 중요한 에너지 협력 대상 중의 하나다. 한국과 일본은 전세계 천연가스 수입국 순위에서 3위(일본)와 5위(한국)을 각각 차지한다. 1위는 중국, 2위는 독일, 4위는 이탈리아다.
한국가스공사(KOGAS)가 전 세계에서 단일 기업으로서는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저장용량도 단연 1위다. 한국 전체 도입 물량의 약 74%를 차지한다. 전 세계 천연가스 수입 2위 기업은 일본의 주부전력, 3위는 일본의 JERA(도쿄전력과 주부전력의 합작사)다.
하지만 한국가스공사는 국내 가스 수급안정이 최우선 목표인 독점적 도매사업자로, 민간 기업처럼 시장 변동성을 활용한 공격적인 이윤추구(트레이딩)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일본은 JERA를 필두로, 도쿄가스(Tokyo Gas)와 오사카가스(Osaka Gas), 간사이전력(Kansai Electric),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 마루베니 등 종합상사들이 가스를 자유롭게 사고 팔아 차익을 남긴다.
한일 양국간 가스 협력은 일종의 ‘스왑(swap)’ 개념이다. 임종순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은 20일 기자에게 “일본이 필요하면 우리 물량을 대주고 반대로 우리가 필요할때 일본 물량을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공급망과 함께 에너지 협력도 긴밀해져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한일정상회담 공동발표 중 나온 LNG 협력은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이미 2023년 업무협약(MOU)을 맺고 LNG 스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A사 소속 천연가스 전문가는 “한일 MOU 이후 실제로 몇번 물량들이 왔다갔다 했다”면서 “2025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약 3000톤 가량이 나갔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일 관계 악화로 일본 소부장 자본의 한국 직접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일 에너지협력도 더욱 긴밀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전 부사장은 “과거 우리나라에 재고가 많을 때 도입 물량을 일본에 먼저 주고, 추후 재고가 부족해지면 되돌려받는 ‘타임 스왑(Time Swap)’을 많이 했고, 최근엔 한일 중 한나라가 긴급할 때 단거리 물량을 먼저 받도록 해주는 ‘로케이션 스왑(Location Swap)’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미쯔비시상사와 호주 및 캐나다 LNG 공동사업도 이미 시행중”이라며 “동남아시아에 천연가스 지분 물량이 많은 일본은 우리가 급할 때 물량배정에서 한국을 우선 배정하는 등 중요한 협력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