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중국의 희토류 통제 강화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가운데 한국이 캐나다와 에너지·자원 협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원유 수입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확보, 핵심광물 투자에 이어 공동비축 체계 구축까지 추진하면서 단순한 구매·공급 관계를 넘어선 '공급망 동맹' 구축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번 협력은 특정 자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산업의 취약점으로 꼽혀온 에너지·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이 희토류를 전략 무기화하고 중동 정세 불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안정적인 우방국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부와 캐나다 천연자원부는 2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한-캐나다 에너지 자원 공급망 협력 포럼'을 개최하고 원유와 LNG, 핵심광물 전 분야를 아우르는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전략경제협력 특사 방문 일정과 연계해 마련됐다. 강 특사는 포럼에 앞서 팀 호지슨 캐나다 천연자원부 장관과 만나 양국 간 에너지·자원 협력 방향을 논의했으며, 양측은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환경 속에서 한국과 캐나다가 서로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양국은 협력의 초점을 기존의 구매·공급 중심 관계에서 기술과 자본이 결합된 공급망 파트너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산업부가 이번 협력을 단순 수입 확대가 아닌 '통합 공급망 파트너십'으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원유부터 희토류까지.. 공급망 전반 묶는 '패키지 협력'
이번 협력의 가장 큰 특징은 원유, LNG, 핵심광물 등 개별 자원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우선 원유 분야에서 한국은 올해 약 488만 배럴 수준인 캐나다산 원유 도입 물량을 내년 최대 1600만 배럴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단순 계산으로 3배가 넘는 규모다. 장기적으로는 연간 2000만 배럴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만약 계획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캐나다의 세 번째 원유 수출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캐나다 역시 생산 원유의 9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해온 구조에서 벗어나 아시아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LNG 협력도 한층 강화된다. 현재 한국가스공사는 LNG 캐나다 프로젝트에 지분 5%를 투자해 연간 70만톤 규모의 LNG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2단계 사업과 신규 Ksi Lisims 프로젝트가 더해질 경우 한국이 확보하는 캐나다산 LNG는 연간 340만톤 규모까지 늘어난다.
산업부는 캐나다산 LNG 수입 비중이 2025년 1.7%에서 2031년 3.0%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중 자체는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에너지 업계에서는 공급선 다변화 효과에 주목한다. 캐나다 서부에서 출발한 LNG는 약 13일 만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으며, 중동이나 일부 분쟁 지역과 달리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핵심광물 분야 협력은 더욱 눈길을 끈다. 현재 캐나다는 한국의 세 번째 광물 수입국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번 포럼에서 리튬과 희토류, 니켈, 동정광 등을 중심으로 총 90억3000만 캐나다달러 규모의 구매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흑연 광산 개발을 위한 1억3000만 캐나다달러 규모의 투자 의향도 밝혔다.
여기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캐나다 지질조사소는 자연수소 공동연구 이행협정을 체결했다. 자연수소는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수소를 활용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생산 비용도 낮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양국은 미래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중국·중동 의존도 낮추려는 한국의 히든 카드
이번 협력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공급망 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공급망이 언제든 지정학적 갈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중국은 희토류와 흑연, 갈륨 등 전략광물을 수출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방산,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 상당수는 특정 국가에 생산과 정제 능력이 집중돼 있다.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원유와 천연가스, 핵심광물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산업에 필요한 리튬과 니켈, 희토류 공급망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른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 공급망을 구축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다.
캐나다는 이러한 전략에 가장 적합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풍부한 자원 매장량은 물론 정치적 안정성과 법치 체계, 높은 계약 신뢰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과의 연계성도 뛰어나 북미 공급망 편입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협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핵심광물 공동비축은 기존 자원 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공동비축은 공급 차질이나 가격 급등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양국이 비축 물량을 활용해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제도다. 단순한 구매 계약을 넘어 공급망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산업부와 캐나다 천연자원부는 올해 말까지 공동비축 실행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한-캐나다 협력을 단순한 자원 수입 확대가 아니라 한국 공급망 전략의 방향 전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 자원 외교가 필요한 자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원유 1600만 배럴, LNG 340만톤, 광물 구매 90억 달러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자원 확보의 축을 단순 거래 관계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 시대, 캐나다가 한국의 새로운 자원 안보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