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막 오른 AI 안경 전쟁.."스마트폰 다음 주인공은 바로 나"

실시간 번역·비서 기능 결합.. 웨어러블 시장 판도 변화 예고
생성형 AI 시대 새 주도권 놓고 글로벌 기업 선점 경쟁 본격화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글로벌 기업들의 신기술 전시장 쯤으로 여겨지던 스마트폰 시장이 새로운 발화점을 찾아나서고 있다. 포화 수준의 시장 구조를 타파할 획기적인 아이템을 찾아나선 것. 이유는 자명하다. 기존의 스마트폰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의 지갑을 손쉽게 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스마트 글래스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의 기능을 탑재한 안경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와 구글 등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지배자들이 눈을 돌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앞선 곳이 바로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해 5월 열린 개발자 행사 '구글 I/O 2025'에서 제미나이 AI를 탑재한 안드로이드 XR 스마트 글래스를 처음 공개했다. 이후 삼성전자, 젠틀몬스터, 와비파커 등과 협력해 생태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당시 공개된 스마트 글래스의 외형은 일반 안경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안에는 구글의 AI 모델인 제미나이와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가 탑재됐다. 사용자는 안경을 착용한 채 음성으로 AI와 대화할 수 있으며 실시간 번역, 길 안내, 일정 관리, 메시지 송수신, 사진 촬영 등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업계에서는 그를 생성형 AI 시대를 겨냥한 플랫폼 경쟁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모바일 인터넷 시대의 중심 기기였다면 스마트 글래스는 AI 시대의 중심 기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파트너로 참여하고 한국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디자인 협력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국내 산업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 향후 수년간 글로벌 IT 산업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손안에서 눈앞으로.. 빅테크가 주목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최근 2년간 AI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 오픈AI의 챗GPT를 시작으로 구글 Gemini, 앤트로픽 Claude, 메타의 Llama 등 거대 언어모델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이제 시장의 관심은 AI 자체보다 AI를 어떤 형태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가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AI 산업이 2000년대 중반 모바일 인터넷 시장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분석한다. 당시에도 인터넷 기술 자체는 이미 존재했지만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대중 시장이 열렸다. AI 역시 비슷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스마트 글래스에 논을 돌리는 기업들이 늘어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스마트 글래스가 차세대 플랫폼 후보로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가 AI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이용됐다. 사용자가 앱을 실행하고 질문을 입력해야 AI가 응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마트 글래스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AI가 실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외 여행 중 낯선 도시를 걷고 있을 때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할 필요 없이 음성으로 질문할 수 있다. AI는 현재 위치와 주변 건물, 일정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외국어 간판을 번역하거나 음식점 메뉴를 설명하는 기능도 가능하다. 업무 환경에서는 회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즉시 검색하는 형태로 활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스마트 글래스를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기가 아닌 'AI의 눈과 귀'로 부르고 있다. 사용자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AI가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업계도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지금까지 AI는 사용자의 명령을 기다리는 존재였다면 앞으로는 사용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먼저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과정에서 스마트 글래스는 가장 유력한 인터페이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메타는 레이밴과 협력해 AI 스마트 글래스를 판매하고 있으며 애플 역시 공간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웨어러블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아마존은 음성비서 알렉사를 기반으로 한 웨어러블 전략을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들도 관련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결국 경쟁의 본질은 안경 판매가 아니라 AI가 소비자를 만나는 첫 번째 접점을 차지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 시대에 애플과 구글이 플랫폼 지배력을 확보했던 것처럼 AI 시대에도 새로운 진입 관문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향후 수십조 달러 규모 시장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구글 글래스 실패 경험도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2013년 등장한 구글 글래스는 당시 혁신의 상징으로 평가받았지만 배터리 성능과 제한적인 기능, 개인정보 보호 논란 등으로 결국 대중화에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생성형 AI가 등장했고 음성 인식과 번역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단순히 정보를 보여주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사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AI가 탑재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구글 글래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지만 지금은 기술과 시장 환경이 모두 성숙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반도체·디스플레이 새 성장축 될까
최근 들어 국내 산업계가 스마트 글래스 시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스마트 글래스가 본격적으로 보급될 경우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산업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배터리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이기 때문이다.

 

AI 기능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안경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카메라와 센서, 통신칩, 배터리, 디스플레이를 모두 탑재해야 하는 만큼 부품의 소형화와 효율성도 중요하다. 특히 장시간 착용해야 하는 제품 특성상 배터리 기술은 시장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공급망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바일 기기 제조 역량뿐 아니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글래스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성장할 경우 삼성전자에게는 스마트폰 이후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부품업체들 역시 새로운 시장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AI 단말기 시장은 새로운 수요처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다. 우선 배터리 지속시간 문제가 있다. 스마트폰 수준의 기능을 제공하면서도 일반 안경과 비슷한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발열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AI 연산량이 많아질수록 전력 소비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보호 논란도 변수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상시 장착된 기기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과거 구글 글래스가 실패한 배경에도 사생활 침해 문제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격 역시 중요한 변수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외에 추가로 구매할 만큼 충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스마트워치나 VR 헤드셋 역시 한때 차세대 플랫폼으로 주목받았지만 기대만큼 대중화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이번 움직임을 과거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메타와 애플, 구글, 삼성 등 세계 최대 기술기업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 증권사 IT 담당 연구원은 "지금 단계에서 스마트 글래스가 스마트폰을 대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AI 시대의 핵심 단말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3~5년이 시장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