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원자력, AI 붐 타고 부활 날개 활짝

美 스리마일섬 재가동 승인·신규 원전 검토 잇따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에 세계 각국 원전 재평가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세계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때 탈원전 기조 속에 성장세가 둔화됐던 원전 산업은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확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원전은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의 반대편에 있는 산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드러나면서 원전이 다시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AI가 바꾼 에너지 공식.. 원전이 답 될까
최근 들어 원전과 관련된 유의미한 소식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지난 1일, 로이터 통신은 미국 전력회사 듀크에너지(Duke Energy)가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듀크에너지는 미국 최대 규모의 원전 운영사 가운데 하나로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일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원전 재가동을 위한 절차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리마일섬은 1979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장소로 유명하지만 이번 재가동 추진은 AI 시대의 전력 확보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앞선 두 사례에서 드러나듯 최근의 원자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AI가 촉발한 전력 확보 경쟁이 원전 산업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원전이 탄소중립 정책의 보조 수단으로 거론됐다면 이제는 AI 산업 성장의 핵심 인프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서 확인되듯 최근 원전 산업 부활의 가장 큰 배경이 AI임이 분명하다. 기존의 전력 체계로는 AI 구동에 필요한 전력 요구량을 맞출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원전이 그 대안으로 자리한 셈이다.

 

현재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 규모다. 기존 인터넷 서비스보다 훨씬 많은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하는 AI는 막대한 전기를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인해 향후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전력 수요 증가를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AI 산업이 소비하는 전력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보다 160%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서버 증설 경쟁도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로이터가 지난해 말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100~130GW 수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미 전력 부족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여러 외신들이 AI 산업 성장으로 미국 전력망이 상당한 부담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연이어 내놓을 정도로 현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를 보여주듯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최대 60GW 규모의 전력 부족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데이터센터가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소비하는 전력은 1GW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약 80만~90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때문에 미국 버지니아주와 텍사스주, 조지아주 등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에서는 전력망 증설이 주요 정책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허가 과정에서 전력 공급 능력이 핵심 심사 기준으로 거론될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데이터센터 건설의 핵심 요소가 토지와 통신망이었다면 지금은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빅테크 기업들은 단순히 전기를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원전 재가동 프로젝트와 연계해 장기 전력 공급 계약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마존과 구글 역시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경쟁의 핵심 자산이 반도체에서 전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데이터센터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원전이 다시 선택받는 이유, 전기먹는 하마 잡을 존재
원전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전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안정적 수요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재생 에너지의 특성에 비교해보면 그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탄소 배출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는 한계가 있다. 반면 원전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저전원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단 몇 초의 정전도 허용하기 어렵다. 서버와 냉각 장비가 24시간 가동돼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원전 재평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발전량이 기상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반면 AI 데이터센터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원전을 병행하는 이른바 '에너지 믹스' 전략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역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프랑스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국은 소형모듈원전(SMR)을 미래 전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도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원전 도입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이어졌던 탈원전 흐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때 경제성 문제로 외면받던 원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력 공급 안정성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면서 원전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이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차세대 원전 기술의 새로운 수요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건설 기간이 짧아 데이터센터 인근에 직접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이 관련 기술 개발 경쟁에 나선 가운데 한국 역시 SMR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기류 변화는 한국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원전 설계와 건설, 운영 능력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다. 특히 한국형 원전은 경제성과 공기 준수 능력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체코 원전 사업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 신규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유럽 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이는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한국 원전 산업이 거둔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AI 시대가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원전 발주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주목받는 분야는 소형모듈원전(SMR)이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건설 기간이 짧아 데이터센터나 산업단지에 직접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이 관련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한국 역시 차세대 원전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북미 지역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원전 기자재 기업들 역시 글로벌 수주 확대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시대의 전력 수요 확대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 원전 산업이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AI 산업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전력 확보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라면 전력은 그 기반을 떠받치는 필수 자원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들은 향후 10년 동안 전력 인프라 확보 능력이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전성 문제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신규 원전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에너지 시장은 분명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일 듀크에너지의 신규 원전 검토 발표와 2일 스리마일섬 원전 재가동 승인 소식은 AI 시대가 원전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원전이 탄소중립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AI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인프라로 재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