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실상 금기시해온 신규 원전 건설을 다시 추진한다. 2011년 사고 이후 원전 축소를 국가 기조로 내세웠던 일본이 15년 만에 방향을 틀어 최대 14기의 원전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노후 원전을 대체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포함한 장기 에너지 정책 초안을 공개했다. 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2040년대까지 최대 5기, 2050년대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신규 원전 건설이 국가 정책으로 부활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발전소 증설 계획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안정해진 에너지 시장,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 반도체 산업 육성과 전력 수요 급증,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과제가 동시에 일본을 압박하면서 에너지 전략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일본 에너지 정책은 사고 이후 가장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 재생에너지만으로는 AI 시대 준비하기는 미흡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사회를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과 거대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치면서 원자로 노심 용융 사고가 발생했고,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원전 운영국 가운데 하나였지만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급속히 확산됐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는 전국의 원전을 사실상 전면 정지시켰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섰으며, 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려 부족한 전력을 메우는 정책을 추진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사고 발생 15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다시 원전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노후 원전을 대체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담은 정책 초안을 공개했다. 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2040년대까지 최대 5기, 2050년대까지는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순차적으로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실상 금기어가 됐던 '원전 신설'이 다시 국가 전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번 계획은 단순한 발전설비 확충이 아니라 일본 에너지 정책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일본 정부가 원전 확대를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그리고 탄소중립이라는 세 가지 과제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의 원전은 전체 전력 생산의 약 30%를 담당했다. 원전은 명실공히 일본 산업 발전을 떠받치는 핵심 전력원이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서 일본은 부족한 전력을 LNG와 석탄 발전으로 대체해야 했다.
원전으로부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일본은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다.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LNG 수입량만 놓고 보면 일본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수준의 구매국이었다. 원전이 멈추자 일본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LNG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국제 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일본 전력회사들은 천문학적인 연료비 부담을 떠안았고, 전기요금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이란 갈등으로 대표되는 중동 불안까지 겹치고 있다.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대부분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일본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원전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전은 우라늄 연료를 한 번 확보하면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국제 유가나 가스 가격 변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일본 입장에서는 원전이 단순한 발전원이 아니라 국가 안보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 AI·반도체 시대가 불러온 전력 전쟁이 계기 제공
전력 수요 증가도 일본의 정책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반도체 산업 부흥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마모토의 TSMC 공장, 홋카이도의 라피더스(Rapidus) 프로젝트 등 대형 반도체 생산시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산업시설이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건설 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해지면서 일본 역시 관련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는 서버를 냉각하기 위해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산업 전기화도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향후 수십 년간 전력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태양광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고 풍력 역시 기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일본 정부는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 없이는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이 바로 원전 재확보인 셈이다.
이는 일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원전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미국은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도 차세대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결정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도 맞물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원전 확대 정책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후쿠시마 사고는 여전히 일본 사회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사고 이후 피난민 문제와 오염수 처리 논란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전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안전성 심사 등 넘어야 할 절차도 많다. 실제로 신규 원전이 계획대로 건설되더라도 상업 운전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원전 확대를 추진하더라도 재생에너지와 병행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원전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전·재생에너지·LNG를 함께 활용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