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중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론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소비 부진,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정책권과 산업계에서 최근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차이나 쇼크 2.0(China Shock 2.0)'이다. 2000년대 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값싼 중국산 제품이 세계 제조업을 뒤흔들었던 '차이나 쇼크'가 또 다른 형태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다만 이번에는 의류와 신발, 생활용품이 아니라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패널, 산업용 장비 등 첨단 제조업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5일 EU 집행위원회가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새로운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규제 대상이 특정 국가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유럽 외교가와 산업계에서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통상 갈등 차원을 넘어선다. 유럽이 중국 제조업의 급속한 성장에 구조적인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 세계의 공장 넘어 산업 강국으로, 유럽 위기감 표출
중국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생산기지가 아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8일 보도에서 중국을 "세계의 공장을 넘어 산업 초강대국으로 변모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중국이 현재 세계 제조업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패널, 고속철도, 산업용 장비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압도적인 생산 역량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기차 분야는 유럽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유럽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배터리 공급망 역시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집중돼 있으며 핵심 광물 가공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태양광 산업에서는 격차가 더욱 크다. 르몽드는 6월 7일 별도 분석 기사에서 중국이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배터리와 풍력 설비 공급망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친환경 전환을 추진할수록 중국산 제품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유럽의 위기감이 고취되는 건 당연한다. 그중에서도 제조업에 특화된 독일의 위기감은 특히 크다. 유럽 싱크탱크 CER(Centre for European Reform)는 5월 말 발표한 정책 보고서에서 "차이나 쇼크 2.0이 독일 제조업에 가장 큰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자동차와 기계, 화학 산업 등 독일 경제의 핵심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독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 압박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중 독일 자동차 산업은 상징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한때 중국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던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이제 중국 현지 기업들과 정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부 분야에서는 기술 우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유럽의 견제와 중국의 반격.. 한국도 예외 아니다
중국의 공세가 심화되면서 유럽은 점차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EU는 지난해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를 진행해 왔으며 철강과 태양광,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중국의 과잉 생산이 글로벌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5월 말 브뤼셀 연설에서 "현재의 대중국 경제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생산 능력 확대가 글로벌 시장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보다 단호한 대응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반격에 나선 중국의 행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시아타임스는 6월 초 중국 상무부가 유럽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 "차별적 조치가 시행될 경우 필요한 대응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유럽의 견제를 보호무역주의로 규정하며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충돌이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20여 년 전의 차이나 쇼크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가격 경쟁이었다면 지금의 차이나 쇼크 2.0은 기술력과 공급망,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장기 산업정책과 거대한 내수시장, 세계 최대 수준의 생산능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충격의 성격이 다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동차와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조선 기자재 등 한국 제조업의 주력 산업 상당수가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유수 매체가 밝힌 시장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5월 수출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의미다.
2000년대 초 세계를 놀라게 한 첫 번째 차이나 쇼크는 미국과 유럽 제조업 일자리를 흔들어 놓았다. 지금 유럽이 우려하는 것은 두 번째 충격이 훨씬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산업 구조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중국 경제 둔화에 주목하는 사이 중국 제조업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고, 그 파장은 유럽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