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전후 80년 달라지는 일본, 비무장 노선 해제할까

중국 견제·미국 불확실성 속 안보국가로 변신 노려
방위비 확대·군사 협력 강화 가속 등 달라진 행보 과시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80년 가까이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규정해 온 핵심 단어는 '평화국가'였다. 일본은 헌법 9조를 통해 전쟁을 포기했고 군대 대신 자위대를 운용하며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왔다. 국제 분쟁에서도 직접 개입을 자제했고 때문에 경제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낮췄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장거리 미사일을 도입하며, 미국·호주·필리핀·한국과 안보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대만 문제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때 금기시됐던 '반격 능력' 확보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국방 정책 변화가 아니다. 전후 국제질서 속에서 형성된 일본의 국가 전략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 안보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불안, 일본 움직인 두 가지 변수
로이터 통신은 11일(현지시간) 분석 기사를 내놓고 "중국의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고 미국의 신뢰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일본이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안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는 특히 일본이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소극적 안보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안보 질서의 핵심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로이터가 주목한 일본 변화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의 군사력 확대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해 왔다. 국방예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해군력은 미국에 필적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일본의 위기감도 커졌다.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바라보는 지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다. 현재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 역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그간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 해경선과 군용기의 활동 빈도가 늘어나면서 일본 정부는 안보 위협 수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대만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일본은 대만의 안보 불안이 곧 일본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최서단 요나구니섬은 대만과 불과 100㎞ 남짓 떨어져 있다. 만약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일본 영토와 주일미군 기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는 일본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인용해 과거에는 가정에 불과했던 대만 위기가 이제는 실제 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현실적 시나리오가 됐다고 전했다.

 

일본을 움직인 두 번째 변수는 미국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은 중국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때문이기도 하다. 전후 일본 안보의 핵심은 미일동맹이었다. 일본은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미국은 안보를 책임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본 내부에서는 "언제까지 미국에만 의존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방위비 부담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해졌다. 미국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안보 공약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동맹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이를 중국의 위협과 미국의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압박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이 군사적 역할 확대를 선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이 두 가지 요인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의 목표 수준과 같다. 과거 오랜 기간 유지했던 'GDP 대비 1% 안팎' 원칙에서 사실상 벗어난 셈이다.

 

일본은 장거리 순항미사일 도입과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 탄약 비축 확대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동안 공격용 무기라는 이유로 논란이 컸던 장거리 타격 능력 확보 역시 공식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전후 일본 안보정책의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 군사력과 외교력 동시 활용하는 '정상국가' 지향
로이터는 일본이 이제 더 이상 국제 안보 문제에서 뒷줄에 서 있는 국가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은 최근 몇 년 동안 외교·안보 활동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호주와 안보 협력을 강화했고, 필리핀과는 군사 협정 체결을 추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과의 방산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과거 일본은 한일관계 악화를 이유로 안보 협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중국 견제를 이유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사 문제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안보 구도에서 함께 협력해야 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본의 변화가 모두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신군국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 침략 역사를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지역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존재한다. 일본의 군사력 확대가 단순한 자위 목적을 넘어설 경우 역사적 경험 때문에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특히 독도 문제와 역사 인식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마냥 환영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면 현실론도 존재한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중국의 군사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일본의 변화를 감정적 시각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한미일 안보 협력 체계는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재무장은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전략 변화, 대만 해협의 긴장, 북한 핵 위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북아 전체의 안보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 일본은 전후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온 국가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더 이상 경제력만으로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가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력을 동시에 활용하는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냐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방어적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주변국들은 보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본을 바라본다. 전후 80년 동안 유지돼 온 질서가 바뀌기 시작한 지금, 일본의 선택은 단순한 국내 정책 변화가 아니라 동북아 안보 지형 전체를 재편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