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미만 SNS 금지 승부수 던진 영국..디지털 성인식의 가치 묻다

영국, 틱톡·인스타그램·유튜브 이용 차단 추진.. 호주 이어 세계적 규제 확산
중독·우울증·딥페이크 범죄 우려 커지자 국가 개입 본격화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영국이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이용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 정책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 디지털 정책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5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X(옛 트위터) 등 주요 플랫폼에 대한 청소년 접근을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연내 관련 제도를 마련한 뒤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플랫폼 규제를 넘어선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이후 지난 20여 년간 각국 정부는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소년 우울증 증가, 수면 부족, 사이버폭력, 온라인 성범죄, 알고리즘 중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제 정책의 관심은 "어떻게 더 많이 연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안전하게 연결할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영국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흐름의 상징적 장면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SNS 규제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세대의 삶의 방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회적 실험으로 평가한다. 과거 사회가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 자동차 운전을 제한하며 성인과 미성년자의 경계를 설정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돌려주겠다" 영국이 칼 빼든 이유
영국 정부가 강력한 규제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정책 발표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SNS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무한 스크롤과 자동재생,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청소년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중독성을 강화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영국의 정책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로이터는 지난 1월 영국 정부가 청소년 SNS 이용 제한을 위한 공식 검토 절차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정부는 이미 관련 법안을 시행 중인 호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연령 인증 방식과 기술적 차단 수단의 실효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팬데믹 이후 나타난 사회 변화였다. 코로나19 기간 원격수업과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크게 늘어났다. 이후 영국 교육계와 보건당국에서는 집중력 저하와 수면 부족, 우울감 증가 현상이 잇따라 보고됐다. 특히 SNS 사용 시간이 긴 청소년일수록 불안감과 외모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확산됐다.

 

영국 정부가 올해 실시한 국민 의견 수렴 결과 역시 정책 추진에 힘을 실었다. 영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수만 명이 참여한 온라인 공청회에서 학부모 다수가 청소년 SNS 이용 제한에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관련 보도에서 "많은 부모들이 스마트폰이 자녀의 성장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더 이상 개인의 책임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청소년 온라인 안전 문제는 영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이버 괴롭힘과 아동 성착취 콘텐츠, 딥페이크 범죄가 잇따라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치권 역시 규제 강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BBC와 가디언, 로이터 보도를 종합하면 영국 정부는 SNS뿐 아니라 게임 플랫폼과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PHS)의 비벡 머시 전 공중보건국장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SNS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담배 제품처럼 경고 문구를 부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 주정부가 청소년 온라인 보호 법안 논의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사설에서 "SNS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 서비스가 아니라 청소년의 삶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 환경이 됐다"고 평가했다. 과거 부모들이 학교나 지역사회의 안전을 걱정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온라인 공간 자체가 새로운 양육 환경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 영국만의 고민 아니다..세계는 이미 'SNS 제한 경쟁' 중
영국의 이번 결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적 흐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이 최근 정리한 각국 규제 현황에 따르면 SNS 연령 제한 정책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국가는 호주다.

 

호주는 2024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지난해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계정 보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이를 방치할 경우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프랑스는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SNS 가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스페인 역시 최소 이용 연령 상향을 검토 중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그리스,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청소년 보호를 위한 입법 논의에 나섰다. 중국은 이미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 시간과 온라인 활동을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 각국은 인터넷 보급률과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스마트폰과 SNS는 교육과 소통, 정보 접근을 확대하는 도구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책 기조가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가 곧바로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세계 최초로 SNS 연령 제한 정책을 시행한 호주의 사례에서도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부 청소년들은 VPN이나 가족 계정을 이용해 제한을 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기업들은 연령 인증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완벽한 차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찬성론자들은 SNS를 음주나 흡연과 유사한 연령 제한 대상이라고 본다. 기술 기업들이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설계한 서비스인 만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인터넷 이용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이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교육과 학습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단순 금지보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플랫폼 책임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최근 분석 기사에서 "문제는 SNS 자체보다 플랫폼의 설계 방식"이라며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와 이용 시간 관리 장치 강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역시 이 논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청소년의 SNS 과의존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온라인 도박, 사이버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청소년 온라인 안전망 강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영국의 정책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세계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사회가 음주 연령과 흡연 연령, 의무교육 연한을 정하며 청소년 보호 기준을 세웠다면 21세기 사회는 디지털 공간의 입장 연령을 정하려 하고 있다.

 

한때 인터넷은 청소년에게 더 많이 열어줘야 할 공간으로 여겨졌다. 이제 세계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국이 시작한 이번 실험은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디지털 성인식' 논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국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교육 정책과 플랫폼 규제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