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종전 협상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유럽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지원 지속과 대러시아 압박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외교적 해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전쟁 이후 안보 질서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종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점에 유럽의 군비 증강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시적 충돌이 아닌 안보 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인식하면서 대규모 국방비 확대와 무기 조달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전쟁 특수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방산 수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최근 KF-21 전투기의 최초 형식인증 획득으로 수출 기반을 확보한 한국 방산업계에도 새로운 기회와 과제가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는 평가다.
◆ 전쟁 특수 아닌 '방산 슈퍼사이클' 시작 전망도
이번 논의의 직접적인 계기는 16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했다. 회담 이후 미국과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았다.
이는 전쟁 초기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장기전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유럽 모두 막대한 재정 부담과 무기 재고 감소 문제에 직면했고, 전쟁 이후 질서 구축 논의도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이 군비를 줄이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실제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국방비는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독일은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의 국방예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NATO 회원국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군비 증강 국가로 꼽힌다. 프랑스와 영국 역시 장기 국방투자 계획을 수정하며 무기 획득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은 명확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 이제 유럽은 더 이상 전쟁 이전의 안보 환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NATO 회원국들에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유럽 내부에서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군비 증강을 넘어 방산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실제 유럽 주요 방산기업들은 생산라인 증설과 신규 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공동 무기 조달과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운영되던 생산체계가 이제는 전시 대응 능력 확보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일시적인 전쟁 특수가 아니라 '방산 슈퍼사이클(Defence Supercycle)'로 해석한다. 냉전 종식 이후 30년 동안 축소돼 왔던 국방예산이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NATO가 향후 국방비 목표를 GDP 대비 3.5% 수준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방산업계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 국가들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최첨단 기술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실제로 운용 가능한 무기를 빠른 시간 안에 공급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이 폴란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배경 역시 빠른 납기와 대량 생산 능력이었다.
유럽 방산업체들이 수년치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공급 지연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신속한 인도가 가능했다. 전쟁 장기화 과정에서 입증된 이러한 경쟁력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효할 것으로 전망된다.
◆ 방산 슈퍼사이클' 올라탄 K-방산 성패의 관건은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방산산업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실제 유럽 주요 방산기업들은 생산라인 증설과 신규 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공동 무기 조달과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비용 효율성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유사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생산능력 확보가 우선 과제가 됐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일시적인 전쟁 특수가 아닌 '방산 슈퍼사이클'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냉전 종식 이후 축소돼 왔던 국방예산이 다시 장기 확대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한국 방산업계는 유럽의 새로운 대안 공급자로 주목받고 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이 폴란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배경 역시 빠른 납기와 안정적인 생산 능력이었다. 유럽 업체들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물량을 공급하며 신뢰를 쌓았다.
최근 KF-21 형식인증 획득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는다. 형식인증은 국가가 항공기의 안전성과 설계 적합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다. 해외 구매국 입장에서는 전투기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던 KF-21이 이제는 본격적인 수출 플랫폼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다만 앞으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자국 방산산업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K-방산의 경쟁력도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 공동개발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장기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종전론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전쟁 종료 여부가 아니다. 전후 유럽 안보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 방산업계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에 있다. KF-21 형식인증이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전은 K-방산 성장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는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