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싶어도 못 낳는다.. 세계 덮친 ‘출산율 쇼크’

인도마저 대체출산율 아래로..선진국 넘어 신흥국까지 저출산 확산
유엔 "진짜 위기는 저출산이 아니라 출산 선택권의 붕괴"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인도의 출산율이 최근 대체출산율(2.1명)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제사회에 경고등이 켜졌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사설에서 이를 "글로벌 베이비 버스트(Baby Bust)"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하며 출산율 감소가 더 이상 선진국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최근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RB)도 출산율 하락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때 인구 폭발을 걱정했던 세계가 이제는 인구 감소를 우려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를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는 20세기 국제사회를 지배했던 대표적인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1968년 출간된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식량난과 자원 부족, 환경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인구 증가 억제를 주요 정책 과제로 삼았고 중국의 한 자녀 정책도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유엔은 세계 인구가 2080년대 약 103억 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은 뒤 감소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럽과 일본 정도가 저출산 문제를 겪었지만 이제는 아시아와 중남미, 중동까지 출산율 하락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저출산이 특정 문화권이나 경제 수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 규모와 종교, 정치체제가 달라도 출산율 하락이라는 결과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 "아이를 원하지만 낳을 수 없다" 신흥국까지 번진 저출산
한 세기 전 국제사회의 가장 큰 고민은 인구 폭발이었다. 식량과 물, 에너지 부족으로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세계가 마주한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 곳곳에서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으며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 감소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지난해 6월 유엔인구기금(이하 UNFPA)이 발표한 ‘2025 세계 인구 현황(State of World Population 2025)’ 보고서다. 보고서의 제목은 '진짜 출산율 위기(The Real Fertility Crisis)'였다. UNFPA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출산율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사람들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하는 만큼 낳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14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5명 중 1명은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수의 자녀를 갖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부담이었다. 여기에 주거비 상승, 고용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적절한 배우자를 찾기 어려운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UNFPA는 특히 최근 일부 국가에서 제기되는 '젊은 세대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녀를 원한다"며 "문제는 출산 의지가 아니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해외 언론들이 이 보고서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디언은 지난 10일 UNFPA 보고서를 분석한 기사에서 세계적인 출산율 하락 현상이 단순한 인구 통계 변화가 아니라 주거난과 경제적 불안, 성 불평등이 결합된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평가했다. 특히 응답자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출산 계획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저출산이 더 이상 한국이나 일본, 유럽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다. 인도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 인구 증가 국가로 꼽혀 왔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 국가가 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유엔 자료에 따르면 인도의 합계출산율은 1.9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를 현재 규모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을 밑돈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세계 인구 증가를 이끌던 인도마저 저출산 국가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인도 일부 대도시의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수도 뉴델리의 출산율은 이미 상당수 유럽 국가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이 인도 사례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단순히 인구 규모 때문이 아니다. 과거에는 경제가 발전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출산율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과 태국, 터키, 칠레 등 신흥국들도 빠르게 대체출산율 아래로 떨어지고 있음이 그를 잘 보여준다. 아시아와 남미는 물론 중동 일부 국가에서도 출산율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은 현재 세계 인구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증가세를 이어가겠지만 세기 후반에는 정점을 찍고 감소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미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인구 정점에 도달했거나 곧 도달할 국가에서 살고 있다.

 

◆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출산율 하락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인구 통계상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는 노동시장이다. 출생아 수 감소는 결국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경제 성장률은 둔화된다. 특히 제조업과 의료·돌봄 분야는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이미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지방 도시에서는 학생 수 부족으로 학교가 폐교되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서는 일손 부족이 만성화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이민 확대 없이는 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금과 복지 시스템에도 비상이 걸린다. 고령 인구는 늘어나는데 이를 부양할 젊은 세대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금제도는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구조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출산율 하락이 지속될 경우 이 같은 구조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진다.

 

경제학자들이 저출산을 성장률 문제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 감소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소비 감소는 투자 위축과 성장 둔화를 불러온다. 일부 연구자들은 21세기 후반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은 효과가 있을까. 많은 국가가 현금 지원과 세제 혜택, 육아수당 확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한국과 일본, 헝가리, 싱가포르 등이 수십조 원 규모의 저출산 대책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반등은 쉽지 않았다.

 

UNFPA 역시 단순히 출산 장려금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높은 집값, 과도한 교육비 부담,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 돌봄 부담의 성별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여성들이 출산 이후 경력과 소득에서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출산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UNFPA 조사에서도 여성 응답자들은 가사와 육아 부담의 불평등을 중요한 출산 기피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확산이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등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대면 관계가 줄어들고 연애와 결혼이 늦어지면서 출산 시기 자체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논쟁적인 가설이지만 출산율 하락이 경제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는 인구 증가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직면한 현실은 인구 감소다. 더욱이 그 감소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유엔은 이를 두고 "저출산의 위기가 아니라 출산 선택권의 위기"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인구 국가인 인도마저 대체출산율 아래로 내려간 지금, 인류는 새로운 인구 실험에 들어섰다. 인구 증가를 전제로 설계된 경제와 복지, 노동시장 시스템이 인구 감소 시대에도 작동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