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경제안보’에서 ‘군사안보’로…북극항로에 쏠리는 시선

[시리즈 기획-북극항로➁] 영원히 좋은 무역로는 없다 
지름길도, 우회로도 언젠가는 다 필요…북극항로 경쟁


[엔트로피타임즈 이상현 기자]

 

북극항로가 열릴수록 안보 문제도 커진다. 북극해를 지나는 선박이 늘면 그만큼 감시와 통제가 더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항만과 통신망 역시 한층 더 중요해진다. 해저케이블과 에너지 인프라 보호 문제가 커진다. 군사적 긴장과 상업운항이 같은 공간에서 중첩된다. 군사안보와 경제안보는 ‘따로’ 또 ‘함께’ 서로 버티며 대항한다.

 

미국은 북극항로 문제를 어떻게 국가전략에 배치할 지 아직 정확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동 아시아에서 러시아 북부 해안을 거쳐 유럽에 닿는 북극항로(북동항로)가 80% 이상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지난 2025년 8월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가진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전향적인 협력에 나설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 이유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유럽경제가 무너진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전국이 되는 그림이 영 마뜩찮은 측면이 있다. 특히 미국 정치권에는 ‘러시아가 성장하면 중국 못지 않게 반드시 미국에게 잠재적, 실질적 위협이 된다’고 보는 세력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쇄빙기술 등 여러 열세에도 북극항로 주도권을 러시아가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적 밑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곧 드러날 미국의 북극항로 이해관계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군사적 방책 강화로 가시화 될 전망이다.

 

“국제물류에 잇따라 이상한 일들이…”

 

최근 몇년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국제물류 교란이 인류 전체에 얼마나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2021년 3월23일부터 29일까지 파나마 선적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 내에서 좌초돼 운하가 6일간 양방향 차단됐다. 과속, 돌풍 등 여러 사고 원인이 거론됐지만 결국 명확히 규명되지도 않은 사건이었다.

 

2020년 지구촌을 뒤흔든 코로나19 봉쇄 이후 공급망은 대혼란을 겪었다. 2021년 11월 미국 서부 해안 항구에 입항하지 못한 컨테이너선들이 100여 척 앞바다에 대기 중인 장면은 코로나 대혼란의 상징적 장면이다.

 

코로나 팬더믹이 잦아들 무렵인 2022년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됨에 따라 전 세계 물류는 다시 한 번 요동치며 갖가지 경제적 충격을 안겨줬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인 2023년과 2024년 최악의 가뭄으로 파나마 가툰 호수 수량이 급감, 파나마 운하로 끌어올 물이 부족해지면서 운영에 애를 먹은 사례도 빼놓을 수 없는 ‘물류대란’이다.

 

지구촌이 동유럽 지역 전쟁에 적응할 무렵인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지방자치단체 하마스가 수천 발의 로켓포를 발사하고 무장대원을 이스라엘 남부 국경을 넘어 침투시키는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서아시아 분쟁이 2026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해와 서아시아 지역의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에너지와 각종 상품 무역은 미국과 이란의 해상 위협이 격화되면서 불안정해졌다. 

 

비용이 급증한 것도 모자라 아예 항행이 불가능해져 배가 바다 위에서 수개월을 머무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당연히 국제 정치와 경제에 엄청난 충격으로 이어졌다. 먼 바다로 우회하면서 물류비와 보험료가 치솟았다. 지구촌 전체를 아우르는 공급망 충격은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격을 함께 끌어 올렸다.

 

단거리 찾아 택한 병목…위기는 반드시 크고 강한 충격 안겨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를 이어주는 무역로는 당연히 거리가 가까워야 최고로 인정받는다. 항로가 길어지면 운임이 상승하고, 납기가 늘어나기 때문에 무역원가가 증가한다. 물리적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고 가능성도 높아지니 보험료도 오른다. 

 

그런데 단지 거리가 가깝다고 최적화된 무역로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무역업자들은 물류 효율성을 위해 좁은 병목에 무역을 의존해 왔다. 그런데 그 병목이 흔들리면 비용이 크게 오른다. 병목의 흔들림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비용도 일시적이다. 하지만 수에즈・파나마 운하처럼 영구적인 비용으로 고착화 되는 경우도 있다. 장기전쟁과 같은 일이 있으면 단기 비용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른 무역로를 물색해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무역로가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산길로 이동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비슷한 이치다. 최상의 무역로도 특정 사건으로 약간의 운행 환경만 변해도 비용이 늘어날 수가 있다.

 

이런 관점으로 북극항로의 전략적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아무리 좋은 무역로도 위기 때 모든 물류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은 북극항로, 특히 러시아 북부를 지나는 북동항로의 주도권을 80% 거머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북극해 주변에 군사역량을 눈에 띄게 보강하고 있다. 이처럼, 서방은 군사적 긴장이 높이는 행위만으로도 북극항로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북극항로 일부 노선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일부 화물을 바다가 얼지 않는 기간동안 비교적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다는 점은 기존 항로를 보완하는 항로로 손색이 없다는 의미가 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처럼 미국과 이란의 분쟁이 장기화 되는 경우 기존 물류망의 회복력을 높이는 선택지로 북극항로가 부각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군사적 긴장만 높여도 녹록치 않은 북극항로

 

지구본을 북극점 바로 위에서 보면 북극은 미국과 러시아를 잇는 최단거리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중간에 두개의 섬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폭 85킬로미터의 베링해협을 사이에 두고 추코트카(러시아)와 알래스카(미국)이 마주하고 있다. 

 

북극은 동서냉전 당시부터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공간이었다. 군사적으로나 해양기술적으로나 두 강대국 이외에 범접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던 셈. 

 

미러의 핵 전략과 전략잠수함, 장거리 폭격기, 조기경보체계, 미사일 방어가 모두 북극과 연결되는 작전개념으로 엮여져 있다.

최근 북극은 다시 안보화 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권 군사기지를 재정비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와 북대서양 방어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과학연구와 경제협력을 명분으로 북극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북극은 자원과 주권, 안보, 경쟁의 공간으로 부각된다. 알래스카 에너지 개발과 이를 위한 미국 쇄빙선 확충, 해안경비대와 해군의 북극 활동 강화 등이 이미 가시화 됐다. 

 

미국은 러시아가 북극을 군사화 하는 것, 중국이 극지로 진출하는 것을 각각 견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그린란드와 북대서양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 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이런 전략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북극을 기후협력의 장으로 여기면서 유럽에 북극 리더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솔직한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명분도 체면도 모두 내팽개치고 오직 미국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북극권 영토인 알래스카 자원 개발을 서두르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 활동을 안보 틀 속에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본다. 경제안보를 위한 군사안보를 표명하며 북극해 접근능력과  감시능력, 쇄빙 능력을 국가안보의 일부로 노골적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현  <엔트로피>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