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새 조약, 미국 비준 없이 ‘유엔해양법협약’으로 규율…북극해로 쏠리는 시선

[시리즈 기획-북극항로③] 냉전 이후 북극 협력 제도화
북극해 연안 5개국, 남극과 달리 배타적 영토주권 추구



[엔트로피타임즈 이상현 기자] 

 

북극 지역은 남극과 달리 별도 조약 없이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준용하고 있다. 인류의 개척 수준이 낮을 불모지 당시 군사안보 이슈가 거의 없게 마련이다. 초창기에는 과학적 탐사 수준에서 기존 국제적 협약의 규율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기술진보로 북극에 대한 개발 수준이 높아지면 반드시 군사안보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UNCLOS를 의회 비준하지 않은 점도 북극항로의 숨은 복병이다. 대다수 지구촌 분쟁의 근원에 미국이 있음이다. 

 

북극 관련 국제규제가 형성된 과정을 정리해 둔다. 

 

국제협약→북극이사회→북극연안5개국…좁아지는 주도권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대륙붕, 항행권, 해양과학조사 등의 기본 틀을 제공했다. 북극 해양질서도 이 국제법적 틀 안에서 논의돼 왔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료된 1991년 당시 북극환경보호전략이 마련됐다. 냉전 이후 북극을 환경보호와 과학협력의 공간으로 다루려는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약 5년 뒤인 1996년 노르웨이와 덴마크, 러시아, 미국, 스웨덴, 아이슬란드, 캐나다, 핀란드(가나다순) 등 북극권 8개국과 북극지역 원주민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 ‘북극이사회(Arctic-Council)’가 출범했다.

 

이사회 주요 의제는 ▲환경보호 ▲지속가능발전 ▲과학 협력 ▲수색·구조 ▲오염대응 등이었다. 군사안보 문제는 공식 의제에서 제외됐다.

 

2008년 5월27~29일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 그린란드의 3번째 큰 도시 일루리사트에서 제1회 북극해 회의가 열렸다.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극 연안 5개국(A5)’이 북극해 문제를 국제법 질서  틀로 관리하자는 데 중지를 모으면 모인 것이다. 북극을 둘러싼 영유권 경쟁이 무질서하게 폭발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미가 있었다. 

 

북극이사회 회원국인 스웨덴과 핀란드는 반발했지만, 5개 북극해 회의 당사국들은 “북극해에 직접 해안선을 가진 연안국들만 모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A5 회의가 열린 직접적인 계기는 한 해 전인 2007년 러시아 과학자들이 북극점 해저에 러시아 국기를 설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를 계기로 북극해 연안국들이 모두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했다. 덴마크 등은 북극 영유권 경쟁이 격화될 것을 우려, 기존 북극이사회 전체 틀보다 더 좁은 ‘A5’ 형식으로 빠르고 명확한 정치협약을 꾀했다.

 

첫 북극해 회의에서 중지를 모아 합의한 ‘일루리사트 선언(Ilulissat Declaration)’의 뼈대는 ‘북극에 대한 거버넌스는 남극처럼 새로운 조약을 만들지 말고 기존 국제법, 특히 UNCLOS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북극해 연안국들은 “우리가 법적·지리적 이해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5개 나라 이외의 나라들이 북극을 공유지로 여겨 발을 걸쳐 놓으려는 발상 자체를 아예 차단한 셈이다.

 

 

러시아가 불 지핀 영유권 논쟁…미국은 UNCLOS도 비준 안해

 

러시아 통신사 <리아노보스티>는 2007년 8월3일 워싱턴발 기사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북극 해저에 국기를 꽂으려는 임무를 ‘영토에 대한 불법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탐험가들은 하루 전인 8월2일 두 대의 소형 잠수함을 타고 북극 아래 4200미터까지 잠수, 해저에 티타늄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화석연료가 무궁무진하지만 인간이 도달할 수 없었던 북극 해저영토 지점에 자신들의 기술과 투지로 기어코 도달했다는 정복감을 표시한 상징적 행위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측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의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해저에 금속 깃발과 고무 깃발, 침대 시트를 깔았는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이 주장에는 법적 효력이 없고, 어떤 특정한 기준이 아니라 기술적 장점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2001년에 북극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북극 영토가 러시아 본토에 이어진 대륙붕의 연속이라는 주장이다. 이듬해 유엔 패널은 결정이 나올 때까지 더 많은 과학적 증거를 요구했다.

 

케이시 대변인은 “미국은 극지방을 횡단하는 수중 로모노소프와 멘델레예프 해령 등 12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에 회의적이지만 러시아가 주장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 정부는 해양법협약(UNCLOS) 회원국으로서 자신들의 권리에 따라 청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이 아직 해당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에 관여)할 입장이 입장이 아니다”며 “미 상원이 해당 조약을 비준하는 데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20년이 다 돼 가는 2026년 현재까지 미국은 UNCLOS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협약에 포함된 심해저(Deep Seabed) 채굴 관련 규정이 미국의 자본주의적 이익과 맞지 않고, 국가간 부(wealth)의 재분배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자국 보수 진영의 반대에 부딪혀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

 

러시아는 해양영토, 중국은 일대일로의 복안…북극항로에 쏠린 시선들

 

러시아 북극탐험대의 소식이 전해졌던 2007년은 북극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해였다. 그 해 여름 북극 해빙이 당시 관측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북극 연구가 크게 확대됐기 때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언론 보도 나온 바로 그 날 필리핀에 한 연설에서 “이번 탐사의 목표는 러시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륙붕이 북극까지 퍼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극 해저탐험대는 8시간이 넘게 수행된 임무에서 해저 토양과 물, 동물군 샘플을 채취했다. 탐사팀은 특히 기후변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해저 밑에 매장된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에 향후 수십 년 안에 접근 가능해진다는 점에 주목했었다.

 

미국 정부도 사흘 뒤 미국 해안경비대 소속 쇄빙선 힐리(USCGC Healy, WAGB-20)를 시애틀 모항에서 북극으로 출항시켰다. 주된 목적은 군사적 목적 보다는 북극 과학연구였다. 미국은 힐리를 북극 연구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했다. 매년 여름 많은 과학자들과 극지전문가들이 힐리를 타고 장기간 북극 연구 항해를 수행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이렇게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북극 접근이 활발해지자, 국제사회는 2011년 ‘북극 수색·구조 협정’을 체결했다. 북극항로 이용이 늘어날 경우 사고 대응이 중요해졌다는 인식이 협정에 반영됐다.

 

2013년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이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로 참여했다. 이는 북극이 북극권 국가만의 의제가 아니라 지구촌 의제로 부각됐다는 신호였다. 한국도 이때 제도적 참여 기반을 확보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17년 극지해역 운항 선박의 안전과 환경 기준을 정한 규범인 ‘극지해역 운항 선박에 대한 국제 코드(Polar Code)를 발표하고 전격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나라들은 선박 설계와 장비, 승무원 훈련, 운항계획, 오염방지 기준에 이 코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8년 중국은 북극정책 백서를 발표하고 이른 바 ‘극지 실크로드’를 제시했다. 북극항로를 ‘일대일로’ 구상과 연결하려는 방향으로, 중국이 북극을 장기 전략공간으로 보고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