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검역이 새 국경.. K-농산물, 신뢰로 수출 뚫다

검역본부 2분기 수출검역 협상 성과 발표
배 이집트 진출·참외 수출기간 연장·포도 호주 전 품종 허용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한국산 배의 이집트 수출길이 열렸다. 호주는 한국산 포도의 수출 허용 품종을 기존 3개에서 전 품종으로 확대했고 베트남과 호주는 참외 수출 가능 기간을 각각 한 달씩 연장했다. 일본은 토마토 수출 시 적용하던 일부 검역 요건을 완화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6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농산물 수출검역 협상 성과'의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배의 대(對)이집트 수출 검역 협상을 마무리하고 호주 포도 품종 확대와 참외 수출기간 연장, 일본 토마토 검역요건 개선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표면적으로는 품목별 수출시장 확대 소식이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단순한 시장 개척 이상의 의미로 해석한다.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으로 관세 장벽은 낮아졌지만 세계 농산물 시장에서는 병해충 관리와 검역 체계가 새로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농산물 수출은 가격과 품질이 경쟁력이었다. 이제는 '검역을 통과할 수 있는 국가인가'가 시장 진입의 첫 번째 조건이 됐다.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고 관세가 낮아도 상대국의 검역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장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소식은 한국 농산물의 신뢰도가 얼마나 높은 지를 보여주는 성과로 풀이된다. 

 

◆ 관세 대신 높아진 보이지 않는 장벽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자유무역협정 확산으로 각국의 농산물 관세는 꾸준히 낮아졌다. 한국도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캐나다, 베트남 등 주요 교역국과 FTA를 체결하며 농식품 수출 기반을 넓혀왔다.

 

그러나 관세가 낮아질수록 각국은 병해충과 질병 유입을 막기 위한 위생·식물위생조치(SPS)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자국 농업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검역 규정은 갈수록 정교해졌고 농산물 수출은 비관세장벽을 넘어서는 경쟁으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절차가 병해충위험분석(Pest Risk Analysis·PRA)이다. 새로운 국가에 과일이나 채소를 수출하려면 상대국은 해당 품목에 어떤 병해충이 존재하는지, 재배와 선별, 저장, 운송 과정에서 위험 요소는 없는지를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검증한다. 이후 재배지 등록, 병해충 예찰, 저온소독, 선과장 관리 등 다양한 검역 요건을 충족해야만 수출이 가능하다.

 

상대국 검역관이 국내 생산단지를 직접 방문하는 일도 적지 않다. 협상은 외교 당국이 하지만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생산 현장의 관리 수준과 과학적 데이터다. 검역 협상이 통상 수년씩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2분기 성과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호주의 포도 품종 확대는 지난 2월 열린 한·호 식물검역전문가회의에서 우리 측이 지속적으로 요청한 사안이다. 협상 타결로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존 거봉·캠벨얼리·샤인머스캣뿐 아니라 모든 품종을 동일한 검역 조건 아래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수출단지 등록과 벗초파리 예찰, 봉지 씌우기, 저온소독 등 기존 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호주 측이 인정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배 수출 기반도 넓어졌다. 검역본부는 호주 수출단지에 전남 영암을 새롭게 추가해 등록 단지를 7곳으로 확대했다. 과수화상병 발생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발생 현황과 수출단지 예찰 결과를 정기적으로 호주 검역당국에 제공하는 등 신뢰 확보에도 공을 들여왔다. 정부가 발표한 성과는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년간 이어진 협상과 생산 현장의 관리, 과학적 검증 과정이 축적돼 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참외 수출 기간 연장이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베트남은 올해부터 한국산 참외의 수출 가능 기간을 기존 12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에서 6월까지로 한 달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해 베트남 시장이 처음 개방된 이후 정부는 수출단지의 병해충 관리와 생산 이력 관리를 강화하며 연장 협의를 이어왔고 올해 4월 하노이에서 열린 양국 농업장관 면담을 계기로 협상이 속도를 내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호주 역시 내년부터 같은 조건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 달 차이에 불과하지만 농업에서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참외는 저장성이 길지 않은 대표적인 신선 농산물이다. 특정 시기에 국내 출하가 집중되면 가격이 급락하기 쉽고, 반대로 해외 시장으로 출하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물량을 분산해 가격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수출업체도 공급 일정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현지 유통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을 가능성도 커진다. 농가 입장에서는 단순히 판매 기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수확과 출하 전략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정부가 수출 기간 한 달 연장을 주요 성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출에서는 하루의 차이가 아니라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 믿고 먹을 수 있는 한국산 신선 농산물
가장 큰 변화는 농가의 선택 폭이다. 소비시장 변화에 맞춰 새로운 품종을 재배하거나 시험 수출할 수 있게 됐고 특정 품종에 생산이 집중되는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더 큰 의미는 호주 검역당국이 품종별 위험보다 한국의 관리 체계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검역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외래 병해충 유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농산물 수입에 매우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왔다. 그런 국가가 품종 제한을 완화했다는 것은 한국의 병해충 관리 수준과 검역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앞으로 다른 품목이나 다른 국가와의 검역 협상에서도 긍정적인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토마토 검역 요건 개선도 실질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성과다. 일본 검역당국은 지난달 18일부터 토마토뿔나방을 검역병해충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 농가는 재배지 정기 검사와 온실 방충망 설치 등 추가적인 검역 요건을 더 이상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 간소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검역 규제는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적용된다. 반대로 규제가 완화됐다는 것은 병해충 관리 수준과 위험도가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음을 뜻한다.

 

검역본부는 그동안 '한·일 식물검역협력회의'를 통해 요건 완화를 지속적으로 협의하는 한편, 국내 수출 농가의 병해충 예찰과 방제 체계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가 이번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검역 요건이 간소화되면 농가의 비용 부담이 줄고 수출 준비 기간도 단축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가격 경쟁력과 수출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성과는 정부의 협상력만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검역 협상이 시작되면 농가는 병해충 발생 여부를 기록하고, 생산 이력을 관리하며, 상대국 기준에 맞춰 재배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수출업체는 수출단지 운영과 선과장 관리, 물류 체계를 뒷받침하고, 연구기관은 병해충 분석과 과학적 데이터를 축적한다.

 

검역본부는 이 같은 자료를 토대로 상대국 검역당국과 협상을 이어가며 국내 관리 체계를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신뢰를 쌓는다. 결국 검역 협상은 외교 협상인 동시에 과학의 영역이며, 생산 현장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배와 참외, 포도, 토마토의 시장 확대는 품목별 성과를 넘어 한국 농업이 국제 기준에 맞는 생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라면과 김치로 대표되는 K-푸드는 이미 세계적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신선 농산물은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저장·물류·검역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으면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세계 소비자가 한국산 농산물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맛이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되고 생산 과정을 추적할 수 있으며 국제 기준을 충족한다는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