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당장 쓸 전기가 없다" 에너지쇼크에 석탄 다시 때기 시작한 세계

국제에너지기구,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 화석연료 회귀 경고
탄소중립 선언 무색.. 가스대란 속 발전 단가 싼 석탄으로 유턴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대의명분이 당장의 전력 생존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 흔들리고 있다. 지속되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되고 이상 기후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자 세계 각국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석탄 발전의 스위치를 켜고 있는 것이다.

 

석탄 발전의 유해성을 체감한 전 세계가 너나없이 석탄 손절의 기치를 내건지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인 벽 앞에서 스스로의 맹세를 어긴 셈이다. 친환경으로의 대전환이라는 대의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막상 그로 인한 불이익을 더는 참지 않겠다고 나선 꼴. 싸고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에너지로의 회귀는 일시적인 흐름인 걸까.

 

◆ 친환경 대의명분 누른 에너지 안보의 생존 논리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Global Energy Review 2026’에 따르면 최근 중동 갈등으로 인한 천연가스(LNG) 및 석유 공급망 불안정성이 극에 달하면서 글로벌 발전 시장에서 급격한 '연료 전환(Fuel Switching)'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가격이 급등하고 수급이 불안정한 가스 발전 대신 상대적으로 공급이 원활하고 가격이 저렴한 석탄 발전을 임시방편으로 늘리는 국가들이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가속화하는 주범은 역설적이게도 기후위기 그 자체다. 전 세계를 덮친 기록적인 폭염과 이상 고온 현상으로 에어컨 등 냉방 전력 수요가 예측 범위를 초과해 폭증했기 때문이다. 발전 효율이 날씨에 따라 널뛰는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저 부하(기본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각국 정부는 탄소 감축 목표를 잠시 접어두고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전방위하게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산 천연가스로부터의 자립을 선언하며 친환경 재생에너지 대전환을 가장 큰 목소리로 이끌던 유럽 국가들조차 예외는 아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은 다가올 난방 수요와 한여름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 당초 폐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노후 석탄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이미 멈춰 섰던 발전기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고 있다.

 

 

가파른 산업 성장으로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이들 국가 역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왔으나 폭증하는 전력 수요의 속도를 친환경 설비가 따라가지 못하자 결국 발전 단가가 가장 저렴하고 안정적인 석탄 발전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IEA는 보고서에서 “2025년 인도의 석탄 발전량은 전년 대비 3% 이상 증가했으며, 동남아시아 역시 석탄 발전 비중이 전체 전력의 40%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결국 "당장 에어컨을 켜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각국 민생과 경제의 실리적 요구가 먼 미래의 거창한 탄소중립 로드맵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 선진국과 개도국 가릴 것 없는 화석연료 회귀 현상
글로벌 석탄 회귀 현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전량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역시 동일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IEA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를 지적하며 송배전망 확충 지연이 전력 안정성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따라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전력 대식가 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와중에 전력망(송배전망) 건설은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동해안의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가 수도권으로 송전되지 못해 정작 발전기를 돌리지 못하는 계통 제약 문제가 속출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쇼크가 겹치면 우리 역시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연장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후 규제(탄소국경세 등)를 충족해야 하는 수출 기업들의 압박과 당장의 전력 요금 안정 및 수급 불균형 해소라는 두 가지 모순된 과제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IEA는 보고서에서 “단기적 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 발전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원전·수소·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송배전망 확충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도덕적 당위성과 에너지 안보라는 국가 생존권이 정면충돌하는 형국"이라며 "단순히 깨끗한 에너지만 외칠 것이 아니라 공급망 불안정성을 버텨낼 수 있는 무탄소 전원(원전, 수소 등)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송배전망 등 기초 체력을 조속히 확충하는 실리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이라는 이상과 전력 생존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석탄으로의 회귀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마냥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석탄 회귀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이 충돌하는 현장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전력망 확충과 무탄소 전원 확보라는 과제를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같은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