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국내 전력망 부족이 발전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전력이 실제 사업 추진 가능성이 낮은 이른바 지연·허수 발전사업에 대한 관리에 나선다. 장기간 전력망 접속권만 확보한 채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사례를 줄여 한정된 전력망을 실제 발전사업자에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겠다는 취지다.
한국전력은 19일 발전사업 허가부터 전력망 이용 개시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송·배전용전기설비 이용규정' 개정안을 마련하고 2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도 개편은 최근 급증하는 발전사업 신청에 비해 송·배전망 확충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통 접속 대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 노쇼는 이제 그만.. 전력망 묶어둔 허수사업 정리
그간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음에도 전력망 접속용량을 계속 확보하는 사례가 늘면서 실제 발전사업자의 계통 접속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는 기존의 제도가 안고 있는 커다란 흠결이었다.
현재 발전사업은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전력망 이용을 신청하고 한전과 이용계약을 체결한 이후 발전소를 건설하는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사업성이 악화되거나 인허가, 주민 수용성,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사업이 장기간 멈춰도 확보한 접속용량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력망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예약만 유지하는 사업이 늘어나면서 뒤늦게 사업을 추진하는 발전사업자는 계통 접속을 위해 수년씩 대기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한전은 이러한 관리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사업 단계마다 일정 기간 내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관리체계를 도입했다.
발전사업 허가 후 1년 이내 전력망 이용을 신청하지 않거나, 이용신청 후 1년 안에 이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접속용량을 회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계약 체결 이후에도 사업 추진 여부를 기존 2년마다 점검하던 방식에서 매년 점검하는 체계로 강화했다.
사업기간이 일반 태양광보다 훨씬 긴 해상풍력에는 별도의 중간점검 제도도 도입된다. 한전은 이용 개시 5년 전까지 환경영향평가 완료 여부를, 3년 전까지는 고정가격계약 체결 여부 등을 확인해 사업 추진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사업 진행이 원활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한국에너지공단, 민간위원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업자 책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사업자 귀책사유가 인정되면 이용계약이 해지될 수 있으며, 귀책사유가 없을 경우에는 이용 개시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사업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유예기간도 마련됐다. 2025년 8월 21일 이전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사업자는 올해 8월 20일까지 전력망 이용을 신청해야 하며, 2025년 9월 21일 이전 이용신청을 마친 사업자는 올해 9월 20일까지 이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 전력망 관리 강화는 시작, 근본 해법은 계통 확충
한전은 이번 제도 시행으로 그동안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약 30GW 규모의 발전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0GW는 원전 약 30기에 해당하는 설비용량으로 국내 최대전력 수요의 3분의 1 수준에 맞먹는 규모다. 그만큼 상당한 전력망 접속용량이 실제 사업 진행 여부와 무관하게 묶여 있었던 셈이다. 사업 추진이 어려운 발전사업의 접속권이 정리되면 후순위 사업자에게 전력망을 보다 신속하게 배정할 수 있어 신규 발전사업의 계통 연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전력망 이용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송전망 자체를 확충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업들의 RE100 수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 증가로 계통 접속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신규 송전선로 건설은 주민 수용성과 인허가 절차 등으로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정책과 함께 중장기적인 계통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번 규정 개정은 단순한 행정절차 변경을 넘어 한정된 전력망을 실제 사업자 중심으로 재배분하는 방향으로 계통 운영 방식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접속권 확보를 위한 선점 경쟁은 줄어들고, 실제 사업 추진 역량이 발전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