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지부진 중·러 가스관 줄다리기.. 한국 에너지 수급엔 어떤 변수 될까

WSJ "중국, 가격 협상 주도권 쥐고 러시아 압박"
협상 향방 따라 한국 LNG 시장도 영향 클 듯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러시아가 유럽 시장을 대신할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온 천연가스관 프로젝트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격과 계약 조건을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1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협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러시아산 가스를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아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수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 한국으로선 이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대 LNG 수입국 가운데 하나로서 중국의 선택에 따라 에너지 비용과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민 생활비용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 러시아의 ‘탈유럽 전략과 중국의 여유
‘시베리아의 힘 2’는 러시아 야말반도 가스를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보내는 연간 500억㎥ 규모의 대형 파이프라인 사업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시장을 사실상 잃으면서 이 사업을 최대 에너지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미 ‘시베리아의 힘 1’과 중앙아시아 가스관, LNG 수입, 자국 생산 등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어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크지 않다. 러시아가 정치적 합의를 강조하는 반면 중국은 상업적 조건을 우선시하며 최종 계약은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유럽을 잃은 뒤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경우, 아시아 내 에너지 패권 구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러·중 관계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전체 에너지 수급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조달 전략 변화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의 에너지 조달 방식이 아시아 LNG 시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 LNG 수입국 가운데 하나로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치열하게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만약 ‘시베리아의 힘 2’가 조기에 가동되면 중국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비중을 높이면서 LNG 수입을 일부 줄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중국 간 LNG 확보 경쟁이 완화돼 현물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에 머물 경우 중국은 기존처럼 LNG 수입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함께 아시아 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져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러시아 가스를 얼마나 싸게 사느냐보다, 중국이 LNG 시장에서 얼마나 빨리 빠져나오느냐가 한국에는 더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 한국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는?
중국의 LNG 수입 규모 변화는 한국가스공사의 도입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LNG 현물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가스 도입 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발전사의 연료비 부담과 전력도매가격(SMP)을 거쳐 전기요금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추진하면서도 여전히 LNG 비중이 높은 상황이다. LNG 가격 불안정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도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정부의 에너지 믹스 조정과 장기 계약 전략에도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산업별로 보면 발전사는 연료비 상승 압력에 직면할 수 있고, 조선업계는 파이프라인 공급 확대 시 LNG 운반선 수요 감소를 우려해야 한다. 그러나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해상 LNG 운송 수요가 예상보다 오래 유지돼 국내 조선사의 LNG 운반선 시장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 역시 LNG 가격 변동에 따라 원료비와 생산비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글로벌 기관들은 중국의 LNG 수입 패턴이 아시아 시장의 ‘스윙 팩터’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를 대규모로 도입하면 한국·일본·대만 등 주요 LNG 수입국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가격 환경을 맞을 수 있다.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면 아시아 전체가 LNG 확보 경쟁을 이어가며 가격 급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아시아 LNG 가격은 계절적 요인과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해왔다. 중국의 조달 전략 변화는 이러한 변동성을 더욱 키울 수도, 반대로 완화할 수도 있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상은 단순히 양국 간 거래가 아니라 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라며 “한국은 국제유가뿐 아니라 LNG 현물가격, 중국의 가스 조달 전략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베리아의 힘 2가 빠르게 타결되면 한국은 LNG 가격 안정이라는 간접적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협상이 지연될 경우 에너지 비용 부담이 장기화될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 모두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보면 ‘시베리아의 힘 2’는 러시아와 중국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아시아 가스 시장 전체의 수급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변수다. 한국 역시 국제유가뿐 아니라 중국의 가스 조달 전략 변화도 함께 지켜봐야 한다. 협상 향방에 따라 한국의 에너지 수급,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민 생활비용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Q&A로 보는 ‘시베리아의 힘 2’


Q. ‘시베리아의 힘 2’는 어떤 사업인가요?
A.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가스관 프로젝트로 연간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사업입니다.

 

Q. 현재 협상은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A. 양국은 사업 추진에 대한 원칙적 합의에는 도달했지만 가격·공급 방식·계약 조건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계약은 지연되고 있습니다.

 

Q. 러시아와 중국에 각각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러시아에게는 유럽 시장을 잃은 뒤 내세운 ‘탈유럽’ 전략의 핵심 프로젝트이고, 중국은 이미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Q. 한국에는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까요?
A. 중국이 파이프라인 가스를 빠르게 도입하면 LNG 수입을 줄여 아시아 현물시장의 경쟁이 완화되고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면 중국은 LNG 수입을 유지해 한국·일본과의 경쟁이 계속되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