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SMR 추진 컨테이너선 첫 국제 검증.. 원자력 상선 시대 열릴까

용융염원자로 기반 해양용 SMR 기술 국제 선급 기본승인 획득
실증·인허가·국제 규범 마련이 '원자력 상선 시대' 앞당길 변수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반 컨테이너선이 국제 선급으로부터 기술적 타당성을 인정받으며 차세대 무탄소 선박 개발에 한 걸음 다가섰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해운업계가 LNG와 메탄올, 암모니아에 이어 원자력을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하는 가운데 드러난 이번 성과는 국내 기술의 경쟁력을 확인한 첫 국제 검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실제 원자력 추진 상선이 바다를 누비기 위해서는 원자로 기술뿐 아니라 국제 규제 정비와 항만 수용성, 안전성 검증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아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 美 선급 첫 관문 통과, MSR 기반 컨테이너선 개념설계 기술력 입증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6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삼성중공업과 공동 개발한 용융염원자로(MSR) 기반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 개념설계가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기본승인(AiP)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AiP는 새로운 기술이나 설계가 개념 단계에서 선급의 안전기준과 기술 규정을 충족하는지를 검토하는 절차로 실제 건조 승인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국제적으로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번 설계는 원자로 2기를 배치해 출력 안정성을 확보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해 잉여 전력을 저장·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원자로를 선체 중앙에 배치해 충돌 위험과 파랑 영향을 최소화했으며, 기존 연료탱크와 연돌을 없애 적재 효율을 높였다. 선형은 25노트급 운항이 가능하도록 설계됐고 확장된 파나마운하를 통항할 수 있는 규모를 적용했다.

 

핵심은 기존 경수로가 아닌 용융염원자로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MSR은 낮은 압력에서 운전할 수 있어 구조 단순화와 안전성 확보에 유리하며 선박 특유의 진동·충격·공간 제약에 대응하기 적합하다.

 

러시아가 쇄빙선과 군함에 원자로를 탑재해 북극 항로를 개척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도 연구 단계에서 원자력 선박을 검토하고 있으며 유럽 일부 조선소 역시 차세대 원자력 추진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AiP 획득은 이러한 국제 경쟁 구도 속에서 기술적 선도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세계 해운 시장에서 한국 조선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원자력 추진 상선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 기술보다 어려운 국제 규제와 사회적 수용성이 남은 과제
다만 상용화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성과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원자력 추진 상선은 연료 교체 주기가 길고 장거리 운항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 건조비용과 원자로 설치·운영 비용은 기존 LNG·암모니아·수소 추진선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항만 도시 주민들의 수용성, 방사능 사고에 대한 우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역시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원자력 추진 선박이 입항할 경우 항만 당국과 지역사회가 어떤 안전 기준을 요구할지,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와 보험 체계는 어떻게 마련할지가 국제적 합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제해사기구는 해운 부문의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간 원자력 상선에 대한 구체적 규정은 아직 미비하다. 항만 입항 기준, 사고 책임, 보험,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식 등은 국제 협의가 필수적이다.

 

과거 세계 최초의 원자력 상선 사바나가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경제성과 제도 미비로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일본의 ‘무쓰(Mutsu)’ 역시 방사능 누출 사고와 사회적 반발로 운용에 실패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번 한국의 시도는 이러한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안전성과 제도적 기반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 추진 상선은 단순히 해운 산업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해사기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강화되면서 LN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 연료가 경쟁하고 있지만 각각 공급망 구축, 저장 효율, 독성 문제, 탄소 배출 등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원자력은 수년간 연료를 교체하지 않고 장거리 운항이 가능하며 연료탱크와 배기가스 처리 설비가 필요 없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는 적재 공간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장거리 항로에서는 경제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 구조와 에너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원자로와 선박 시스템 간 인터페이스를 구체화하고 운항 환경을 고려한 안전성 검증과 핵심 기술 실증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실증선 건조 가능성과 국제 협력, 제도 정비가 맞물려야만 상용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 결국 이번 AiP 획득은 원자력 상선이 현실화됐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기술적으로 출발선에 올라섰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다.

 

이는 단순히 한 차례의 기술 검증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떤 국가가 제도와 사회적 수용성까지 아우르며 상용화를 이끌어갈지를 가늠하게 하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 향후 원자로 개발과 조선 기술뿐 아니라 국제 규제와 사회적 수용성까지 확보하는 국가가 차세대 무탄소 해운 시장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이번 성과는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글로벌 해운·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