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황상규 칼럼니스트]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지난 7월 19~29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인류의 유산(Heritage) 개념을 문화와 예술이 담긴 문화재(Cultural Property) 중심에서 갯벌 등 자연유산(Natural Heritage)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 인류의 유산은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성만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네스코는 ‘인류 전체가 반드시 보존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는지를 평가한다. 한국의 갯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다양성과 세계적인 철새 중간 기착지로서의 기능, 자연보호 정도, 바다의 콩팥과 허파로서의 생태계 기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탄소중립의 숨은 해결사, 한국의 갯벌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은 더 이상 공장 굴뚝의 탄소를 줄이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연이 스스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새로운 기후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블루카본(Blue Carbon)’과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갯벌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지구의 탄소를 저장하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살아 있는 자연 인프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이번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서산갯벌, 고흥갯벌, 무안갯벌, 여수갯벌이 추가되면서 다양한 갯벌 유형을 연속유산(serial property) 사례로 한 단계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바다의 숲, 블루카본의 보고(寶庫)
블루카본은 갯벌, 염습지, 잘피숲 등 해양생태계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장기간 저장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특히 갯벌은 ‘바다의 탄소창고’라 불릴 만큼 뛰어난 저장 능력을 갖고 있다.
국제사회는 블루카본을 평가할 때 단순히 탄소를 얼마나 많이 흡수하는가만 보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저장하는가이다. 따라서 블루카본 평가는 ▲탄소 저장량(Carbon Stock) ▲연간 탄소 흡수량(Carbon Sequestration Rate) ▲장기 저장 지속성(Permanence) ▲퇴적속도(Sedimentation) ▲생태계 건강성 ▲갯벌 훼손 여부 ▲복원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평가 방법도 매우 과학적이다. 연구자들은 갯벌에 1~3m 깊이의 코어(Core)를 채취하여 토양 속 유기탄소 함량과 퇴적층을 분석한다. 또한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퇴적 시기를 분석하고, 위성과 드론을 활용해 갯벌 면적 변화와 식생, 침식 및 퇴적 현황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이처럼 블루카본은 단순한 환경 구호가 아니라 정량적인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국제 평가체계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 갯벌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이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은 유럽의 와덴해(Wadden Sea), 한국의 갯벌, 그리고 황해 연안 갯벌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한국의 갯벌은 생태적 건강성과 자연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서해안은 세계적으로도 큰 조수간만의 차를 가진 지역이다. 하루 두 차례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은 풍부한 영양염과 유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탄소를 퇴적층 깊숙이 저장하는 자연적인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또한 갯지렁이, 농게, 칠게, 조개류와 같은 저서생물과 다양한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유기물을 분해하고 새로운 탄소를 토양 속에 축적한다. 이러한 생태계의 건강성은 블루카본 저장 능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한국의 갯벌은 철새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터전이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AF)의 핵심 기착지로서 매년 수많은 철새가 먹이를 얻고 휴식을 취한다. 풍부한 생물다양성과 건강한 먹이사슬은 갯벌의 탄소순환 능력을 더욱 높이는 기반이 된다.
무엇보다 한국의 세계유산 갯벌은 간척과 산업개발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자연성이 잘 보전되어 있다. 자연 그대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국제사회가 높게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자연기반해법(NbS), 기후위기의 가장 현명한 투자
최근 국제사회는 콘크리트 시설보다 자연생태계를 활용하는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자연기반해법은 숲과 습지, 갯벌, 맹그로브, 잘피숲 등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거나 복원하여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를 동시에 해결하는 전략이다.
건강한 갯벌은 대표적인 자연기반해법이다.
첫째,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여 장기간 저장한다.
둘째, 바다의 콩팥처럼 오염물질을 정화한다.
셋째, 해양생물의 산란장과 서식지를 제공하여 수산자원을 회복시킨다.
넷째, 태풍과 해일의 에너지를 흡수해 연안 재해를 줄인다.
다섯째, 생물다양성을 유지하여 지속가능한 해양생태계를 만든다.
이처럼 하나의 생태계가 기후변화 대응, 생태계 복원, 수질 개선, 재해 예방이라는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자연기반해법의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에는 기업의 ESG 경영과 TNFD(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시), 자연자본(Natural Capital) 평가에서도 갯벌의 가치가 중요한 요소로 반영되고 있으며, 블루카본은 미래 탄소시장과 탄소배출권의 새로운 자산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유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자산으로
한국의 갯벌은 더 이상 단순한 진흙벌판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탄소를 저장하는 거대한 자연 저장고이며, 세계 철새를 연결하는 국제 생태축이고, 지속가능한 어업과 해양생태계를 유지하는 기반이다.
이는 더 나아가 블루카본과 자연기반해법의 핵심 공간으로서 대한민국의 탄소중립과 ESG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기도 하다.
세계는 이미 자연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귀중한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갯벌은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 소중한 자연유산을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블루카본과 자연기반해법의 세계적 모범모델로 발전시켜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해양환경과 새로운 미래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널리 확산하며 잘 보전하고 온전히 물려주는 일이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