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군함으로 승부수 띄운 K-조선.. KDDX, 7조 방산 생태계 연다

한화오션, 한국 최초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상세설계 착수
레이더·전투체계 국산화 시험대, 2032년 해군 인도 목표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한국 조선업계가 군함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선다. 방위사업청은 31일 한화오션과 한국형 구축함(KDDX)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KDDX 사업은 기본 설계를 넘어 실제 함정 제작과 성능 검증을 위한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하게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능력을 보유한 한국 조선업은 그동안 LNG선과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 상선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왔다. 하지만 중국 조선업의 빠른 추격과 글로벌 선박 시장 경쟁 심화 속에서 단순히 배를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지속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경쟁의 기준은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큰 배를 얼마나 빠르게 만드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복잡한 기술을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2032년 해군 인도를 목표로 추진되는 KDDX는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기동함대를 구성할 핵심 전력이다. 동시에 국내 방산과 조선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술 시험대이기도 하다.

 

◆ 전투체계·레이더까지 통합플랫폼 국산화 도전
KDDX를 단순히 새로운 구축함 건조 사업으로 보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현대 해전에서 군함의 경쟁력은 선체 크기보다 눈과 두뇌에 달려 있다. 얼마나 멀리 있는 위협을 탐지하고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며 어떤 무기로 대응하느냐가 전투력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이지스(Aegis) 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 전투체계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지스함은 단순히 미사일을 많이 싣는 배가 아니라 레이더와 전투체계, 무장 시스템을 하나로 연결해 움직이는 통합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KDDX는 바로 이 영역에 도전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함정 건조 능력을 갖추고도 핵심 전투체계와 일부 무기체계에서는 해외 기술 의존도가 존재했다. 하지만 KDDX 사업을 통해 전투체계, 다기능위상배열레이더, 소나체계, 함대공유도탄 등 주요 장비의 국산화를 추진하며 독자적인 해상 전투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 이는 단순히 국산 장비 비중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 해상전에서 필요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KDDX가 산업계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군함 시장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글로벌 조선 시장은 오랫동안 가격 경쟁 중심의 상선 시장이었다. 한국은 기술력으로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중국의 추격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반면 군함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다. 군함은 단순 제조품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설계 능력, 첨단 전자 기술, 무장 통합 능력, 유지보수 역량까지 종합적인 기술력이 요구되는 복합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척의 함정을 수출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정비와 성능 개량, 후속 지원 사업이 이어지는 장기 시장이기에 이로 인한 부가 가치는 한층 더 놓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KDDX를 통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단순히 배를 만들어 판매하는 조선 강국을 넘어, 첨단 함정과 전투체계를 함께 공급하는 방산 플랫폼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 2032년 해군 인도 목표, 해외 의존 벗어나 독자 전투체계 구축
최근 한국 방산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천궁 등 다양한 무기체계가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K방산’이라는 이름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히 개별 무기를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세계 방산 시장은 하나의 무기보다 이를 운용하는 전체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레이더와 지휘체계, 통신망, 무인체계 등이 결합된 통합 솔루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KDDX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다. 함정 건조 능력에 전투체계와 첨단 센서 기술을 결합할 수 있다면 한국은 단순한 조선업 국가가 아니라 종합 해양 방산 공급자로 도약할 수 있다.

 

물론 KDDX가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첨단 함정 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수많은 시스템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안정적으로 통합해야 하며 개발 과정에서 기술적 난관과 일정 지연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핵심 장비들이 실제 작전 환경에서 어느 수준의 성능을 보여줄지는 중요한 검증 과제다. 해외 시장 진출 역시 쉽지 않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기존 방산 강국들이 구축한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KDDX의 성패는 첫 번째 함정을 성공적으로 건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얼마나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산시키고, 이를 수출 경쟁력으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계획대로라면 KDDX는 2032년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진짜 의미는 그때 완성되는 함정 한 척에만 있지 않다. 반도체가 단순히 메모리 칩을 만드는 산업이 아니듯 미래의 군함 역시 단순한 철강 구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곧 센서와 소프트웨어, 통신과 인공지능, 무장 체계가 결합된 첨단 기술 플랫폼이다.

 

따라서 한국이 KDDX를 통해 확보하려는 것은 한 척의 군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술과 경험이라고 해야 옳다.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의 다음 경쟁력이 무엇이 될지, 그리고 K방산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