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중국 자동차 업체의 한국 진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면 이제는 한국 완성차 기업과 손잡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 체리자동차가 KG모빌리티(KGM)에 7500만달러(약 1084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업체의 한국 완성차 투자인 만큼 KGM의 자금 확보와 미래차 기술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체리의 해외 확장 전략과 맞물린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 내 자동차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고 전기차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중국 업체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해외에서 찾고 있다. 다만 직접 공장을 짓고 판매망을 구축하는 방식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이미 생산 경험과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현지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체리가 KGM을 선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KGM은 쌍용자동차 시절부터 축적한 완성차 제조 경험과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체리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 시장 진입 비용을 낮추고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한국 완성차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 KGM 품은 체리.. 단순 투자 넘어 미래차 협력 확대
KGM은 중국 체리자동차로부터 7500만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고 3일 밝혔다. 체리자동차는 KGM이 발행하는 사모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며 향후 주식 전환 시 약 10% 내외의 지분을 확보해 주요 주주로 올라설 전망이다.
양사는 2024년 플랫폼 라이선스 계약을 시작으로 지난해 중·대형 SUV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이번 투자를 계기로 협력 범위를 확대한다. 플랫폼과 SUV 공동개발뿐 아니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로봇, 반도체 등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까지 협력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첫 번째 협력 결과물로는 체리의 글로벌 승용차 플랫폼 ‘T2X’를 기반으로 개발하는 차세대 중형 SUV(프로젝트명 SE-10)가 거론된다. KGM은 이번 투자를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미래차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시장 확대의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KGM의 경영 정상화뿐 아니라 체리의 글로벌 전략 변화에도 맞춰져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가 한국 완성차 기업과 자본·기술 협력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 방식을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바라보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중국 내 생산 차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현지 기업과 협력하거나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배경에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수많은 전기차 업체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 인하 경쟁이 이어지고 있고,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일수록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해외 시장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 새로운 해외 공략법 “직접 수출보다 현지 기업 활용”
문제는 해외 시장의 장벽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규제와 통상 장벽이 높아지면서 중국 본토에서 생산한 차량을 그대로 수출하는 방식은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해외 현지에 직접 공장을 짓고 판매망을 구축하는 것 역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중국 업체들이 주목하는 방식이 기존 현지 기업과의 협력이다. 생산 기반과 판매망을 갖춘 완성차 업체와 손잡으면 시장 진입 시간을 줄이고 브랜드·유통 측면의 부담도 낮출 수 있다.
체리가 KGM을 선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KGM은 오랜 완성차 생산 경험과 유럽, 중남미 등 해외 시장 판매 기반을 갖고 있다. 체리 입장에서는 KGM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 역량과 해외 네트워크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완성차 기업이라는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 일정 부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산 자동차’라는 인식에서 오는 부담을 줄이고, 한국 생산 기반과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
다만 중국 자본과 기술의 유입이 한국 자동차 산업에 미칠 영향은 양면적이다. 한국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체리가 보유한 전동화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미래차 개발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산 물량 확대와 신규 투자 유입 역시 국내 자동차 생태계에는 긍정적 요인이다.
반면 핵심 플랫폼과 부품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기술 주도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국내 부품업체와 완성차 기업이 어떤 협력 구조를 만들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체리의 KGM 투자는 한·중 자동차 기업 간 단순한 자본 거래를 넘어 중국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확장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업체들은 더 이상 한국 시장의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중국 자본과 기술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면서도 독자적인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