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챗GPT가 아니다. AI가 직접 밸브를 조절한다.“
생성형 AI가 사무실 업무 환경을 바꿔놓고 있는 사이 제조업 현장 깊숙한 곳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AI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의록을 요약하는 화이트칼라용 AI를 넘어 공장의 생산설비를 직접 제어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며 설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는 '산업 AI(Industrial AI)'가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산업 AI는 기존의 단순한 설비 자동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정해진 규칙대로 일하는 것을 넘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해 공정을 최적화하고 숙련 엔지니어의 노하우까지 데이터로 학습해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지 때문이다.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로 이동함에 따라 전통적인 단순 스마트팩토리를 넘어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공장으로 진화하는 산업 AI가 새로운 승부처로 부상하고 있다.
◆ 연 1,300만 달러의 가치.. 비료공장 바꾼 산업 AI의 실체
이 같은 변화의 파급력은 최근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공개한 아제르바이잔 국영 에너지기업 SOCAR의 혁신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맥킨지의 'SOCAR는 어떻게 산업 AI로 아제르바이잔 비료기업을 혁신했나' 보고서에 따르면 SOCAR의 요소 생산법인인 'SOCAR Carbamide'는 대규모 암모니아·요소 화학공장에 기존 자동제어 시스템과 산업 AI를 결합하는 대대적인 고도화 프로젝트를 단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공장의 두뇌를 바꾼 데 있다. 그동안 미리 입력된 조건과 규칙에 따라 설비가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였다면 산업 AI가 도입된 이후의 공장은 수천 개 센서의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며 마치 살아 숨 쉬듯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게 맥킨지의 분석이다.
이를 통해 공장 곳곳에 설치된 수천 개의 센서에서 쏟아지는 온도, 압력, 원료 투입량, 설비 상태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종합 분석해 최적의 운전 조건을 도출한 것이다. 변동하는 상황에 맞춰 AI가 최선의 제어안을 판단하고 실행하는 능동적 구조로 탈바꿈한 것은 신선항 충격일 수밖에 없다.
성과는 놀라웠다. AI는 스팀과 전력, 천연가스 소비를 최솟값으로 정밀하게 제어했으며, 고장의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셧다운 등 계획에 없던 공장 가동 중단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로봇과 드론을 활용한 위험지역 점검, 증강현실(AR) 기반 원격 유지보수 지원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렸다.
맥킨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장이 연간 약 1,300만 달러(약 170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으며 천연가스 700만㎥, 전력 150만kWh, 용수 7만t을 절감하는 압도적인 효율 개선을 달성했다고 분석했다.
◆ 설비 증설에서 데이터로.. 한국 제조업으로 번진 AI 사활전
SOCAR의 성과가 단순히 하나의 성공 사례를 넘어 주목받는 이유는 글로벌 제조업이 처한 냉혹한 환경 변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석유화학 업황의 장기 침체,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 가격 변동성, 갈수록 강화되는 탄소 규제 속에서 새 공장을 지어 덩치를 키우는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해법이 될 수 없다.
이제는 기존 설비의 원가 경쟁력과 운영 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다. 맥킨지 역시 화학산업에 산업 AI를 적용할 경우, 설비의 고장을 예측하는 예지보전 생산성을 30~40% 끌어올리고 공정 최적화로 전체 생산성과 수율을 10% 이상 개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조업 강국을 자부해 온 한국 기업들 역시 산업 AI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포스코가 공식 보도채널 '포스코 뉴스룸'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포항제철소 EIC기술부는 2024년 5월 생성형 AI 기반의 설비 이상 예측 시스템을 전격 도입했다. 포스코의 지능형 정비 시스템 매뉴얼과 우수 사례를 학습한 AI 도우미가 적용되면서 현장 엔지니어들은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예지정비 로직을 손쉽게 설계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광양제철소 EIC기술부 역시 클라우드와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자체 구축한 설비 이상예지 시스템 '이노핌스(InnoPIMS)'를 구축했다. 기존에는 예지정비 모델 1개를 구축하는 데 개발자의 수작업 등으로 평균 2주나 걸렸으나 AI 시스템 도입 이후 구축 기간을 단 이틀 수준으로 80% 이상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성과를 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정 효율이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온도, 압력, 유량 등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쉴 새 없이 분석해 최적의 운전 조건을 제안하고 설비 이상을 조기에 감지하는 데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산업 AI 경쟁의 진짜 승패는 화려한 알고리즘이 아닌 데이터의 질과 축적량에서 갈린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묵묵히 쌓아온 공정 데이터와 현장 엔지니어들의 땀 밴 노하우가 결합될 때 비로소 강력하고 똑똑한 AI가 완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제조업의 경쟁력이 누가 더 큰 설비를 가졌느냐였다면, 이제 승부처는 같은 공장을 누가 더 똑똑한 데이터로 운영하느냐로 완전히 옮겨갔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 탄소 저감 능력까지 동시에 결정짓는 산업 AI는 한국 제조업이 마주한 피할 수 없는 다음 경쟁의 무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