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인공지능 확산과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변 속에서 꿈의 에너지 핵융합이 국가 생존 전략 기술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기술적 과제가 남아있지만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을 확보하려는 세계 주요국의 셈법이 복잡해지면서다.
이를 보여주듯 핵융합을 바라보는 글로벌 무대의 시선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연구가 실험 장치 개발이나 과학적 성과 확보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확숙과 첨단 제조업 성장에 따른 전력 패권전의 핵심 도구로 재평가받고 있는 것.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24시간 끊김 없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기반 기술이라는 점에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이는 AI가 유발한 전력 요구량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발표한 ‘Energy and AI’ 보고서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가 역설적으로 각국의 무탄소 전원 확보 경쟁을 촉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핵융합을 미래 에너지 자립을 위한 장기 대안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거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일본 핵융합 산업계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과 에너지 안보 우려를 배경으로 정부 지원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 자급률이 낮고 원유·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일본 입장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안정 기반을 다질 핵심 열쇠로 핵융합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 AI가 바꾼 전력 지도.. 핵융합을 다시 보는 세계
핵융합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배경에는 글로벌 전력 시장의 변화가 있다. 최근 전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 AI 기술 확산은 전력 수요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를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저렴한 전력 확보뿐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여러 대안 중 가장 먼저 선택을 받은 것이 재생에너지다. 탄소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재생에너지는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출력 변동성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또한 태양광은 야간 발전이 어렵고 풍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진다는 구조적 취약점도 지니고 있다.
뒤를 이은 것이 원전이다. 재생에너지의 취약성을 극복할 것으로 기대되어지는 원전은 그런 이유로 현재 가장 현실적인 무탄소 기저전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신규 건설에는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결국 앞선 대안 그 어느 것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기존 에너지원 확대와 함께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차세대 전력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핵융합은 바로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다. 성공할 경우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상용 발전을 위한 기술적 검증이 더 필요하다.
가장 먼저 시도에 나선 미국은 민간 기업과 정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이하 DOE)는 2024년 6월 ‘핵융합 발전 상용화를 위한 비전(Bold Decadal Vision for Commercial Fusion Energy)’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전략은 향후 10년 동안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민간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DOE는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핵융합 파일럿 플랜트 개발을 위해 연구기관과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실제 상업 발전소 운영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먼저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과 극한 환경을 견디는 소재 개발이 필요하다.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발전 효율도 입증해야 한다.
미국과 함께 신생 에너지원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 역시 국가 주도로 핵융합 연구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초전도 토카막 장치 EAST를 기반으로 장시간 고온 플라즈마 운전 기술과 핵심 소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전략이은 연구 성과 확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데 있다. 태양광과 배터리 산업에서 보여준 대규모 생산 능력과 공급망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에너지 기술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 차세대 원전 될까..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제 적지 않아
핵융합 경쟁은 단순한 발전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생태계 주도권 싸움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지상에서 구현하는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활용해 탄소 배출 없이 대량의 전력을 생산한다.
특히 연료 수급 면에서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잠재력을 가진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무제한에 가깝게 추출할 수 있고, 자연 상태에 희귀한 삼중수소 역시 리튬을 이용해 반응로 내부에서 자체 증식·생산하는 방식이 실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발전소 운영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고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소재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성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한지 검증해야 한다.
핵융합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단계와 ’경제적으로 전력을 생산한다‘는 단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일부 기업과 연구기관이 2030년대 실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대규모 상업 발전소 운영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주요국이 핵융합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는 미래 전력 시장의 주도권 때문이다. AI와 첨단 산업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 확보가 국가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핵융합은 아직 현재의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즉각적인 해답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장기 경쟁에 들어갔다. 핵융합이 꿈의 에너지에서 국가 전략 기술로 다시 평가받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