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원료까지 번진 미·중 공급망 전쟁 확전일로

미국, 중국산 폴리실리콘 규제 검토.. 저가 덤핑에 가격 하한제 맞불
태양광 공급망 전쟁 확전.. 원료 자국화 속 한국 산업계 기회와 부담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패권 경쟁이 태양광 산업의 가장 상류인 원료 단계까지 번지고 있다. 그동안 셀과 모듈 등 완제품 및 중간재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무역 갈등이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영역으로 본격 확산하면서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 전체가 또 한 번 거센 지각변동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4일, 로이터는 미국 정부가 중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해 가격 하한제 도입과 추가 관세 부과를 전격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초저가 공급이 글로벌 시장 가격 체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이는 단순한 징벌적 관세를 넘어, 미국 시장 진입 시 가격 경쟁 자체를 하한선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강제 차단하겠다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완제품 규제서 상류 원료로 이동한 패권 경쟁
이번 움직임이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규제 대상이 기존의 태양광 패널이나 셀이 아닌 공급망의 최상류인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이기 때문이다. 폴리실리콘은 원유를 정제해 나프타를 얻듯 규석을 정련해 만드는 태양광 산업의 핵심 기초 소재다.

 

이를 녹여 만든 결정 기둥을 얇게 절단한 것이 웨이퍼이며, 이후 셀과 모듈을 거쳐 태양광 패널이 완성된다. 원료 단계의 가격과 수급이 태양광 산업 전체의 제조원가와 공급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이 시장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곧 공급망 주도권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중국은 이 원료 단계부터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글로벌 공급망 특별 보고서(Special Report on Solar PV Global Supply Chains)'에서 중국이 폴리실리콘은 물론 웨이퍼와 셀, 모듈까지 태양광 제조 전 공정에서 세계 생산능력의 80~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완제품 전 단계인 웨이퍼와 셀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90%를 웃도는 수준으로 석유나 희토류 등 그 어떤 전략 자원보다 특정 국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공급망 우위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과 대규모 증설 경쟁에서 비롯됐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와 시장조사업체 ‘PV InfoLink’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중국 업체들의 과잉 설비 투자로 폴리실리콘 가격은 ㎏당 30달러 선에서 5~6달러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는 글로벌 태양광 발전 단가를 낮추는 데는 기여했으나, 규제를 준수하며 생산하는 미국과 유럽, 한국 정통 제조업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고사 위기로 내몰았다.

 

미국이 검토 중인 가격 하한제는 이러한 중국발 덤핑 공세를 원료 단계부터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반영이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에 이어 태양광 핵심 소재까지 안보 자산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탈탈 털어 공급망에서 전면 배제하겠다는 전략 기조가 한층 명확해진 것으로 보인다.

 

◆ 기회와 부담 교차하는 한국 태양광 어쩌나
미·중 간 상류 공급망 패권 경쟁은 한국 산업계에도 커다란 기회와 중대한 과제를 동시에 안겨줄 전망이다. 우선 미국 내 현지 생산 거점을 전폭적으로 확대해 온 한화솔루션 등 국내 완제품 기업에는 불확실성 속 호재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과 더불어 중국산 저가 모듈의 유입이 원료 단계부터 차단될 경우, 우방법인 한국 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이 한층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현지에서 폴리실리콘-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지는 통합 벨류체인을 구축 중인 기업일수록 탈중국 프리미엄을 크게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은 부담 요소다. 규제로 인해 중국산 저가 원료 사용이 차단되고 미국·우방국산 폴리실리콘 및 웨이퍼 가격이 상승할 경우, 최종 발전 프로젝트의 설치 비용이 올라가 태양광 수요 자체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중국산 소재·부품을 일정 부분 활용해야 하는 국내 제조사들의 경우 원가 부담과 조달선 교체라는 번거로운 숙제를 안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심의 상류 공급망 재편은 북미 시장 선점 기업에 미시간·조지아 등 현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릴 거대한 기회를 제공한다"면서도 "동시에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과 공급망의 완전한 '탈중국 체질 개선'이라는 중장기적 과제를 안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이번 미국 정부의 폴리실리콘 규제 검토는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글로벌 태양광 생태계의 판도를 뿌리째 바꾸는 전환점이다.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에너지 전환의 쌀로 불리는 태양광 원료까지 미·중 패권 전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태양광 산업 역시 원가 관리와 공급망 내재화를 향한 한층 정교한 생존 방정식을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