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일본이 탈탄소 전환을 서두르면서도 액화천연가스(LNG)를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원전 재가동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는 동시에 전력수요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LNG를 줄여야 한다는 탄소중립 목표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일본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폭염과 산업활동 회복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의 국내 증설까지 맞물리면서 전력 공급능력 확보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LNG를 비롯한 가스발전의 역할을 어디까지 가져갈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전력수요 다시 느는 일본.. 원전·재생에너지 늘어도 빈틈 메울 LNG 필수
일본의 변화는 전력수요 전망에서 드러난다. 일본 전력광역적운영추진기관(OCCTO)은 지난 1월 발표한 ‘2026년도 전국 및 공급구역별 수요전망’에서 2025~2035년도 일본의 전력사용량이 연평균 0.5% 증가하고, 최대전력도 연평균 0.4%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감소와 절전·에너지 효율 향상에 따른 수요 감소 요인보다 경제성장과 데이터센터·반도체 공장 신·증설 등에 따른 증가 요인이 더 클 것으로 본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력수요 증가가 과거처럼 가정이나 일반 상업시설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규모 전력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산업시설이 늘면서 전력수요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OCCTO 역시 향후 수요 증가 요인으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신·증설을 명시했다.
문제는 이로 인한 대처 방안 마련이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늘어난 전력 수요에 효울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깨문이다. 일본이 발전설비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하려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2025년 확정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핵심 축으로 제시하면서도 천연가스를 현실적인 전환기 에너지원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에너지 정책은 탈탄소와 안정적 공급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복수의 전원을 활용하는 방향에 가깝다.
실제로 LNG 발전설비 역시 당장 사라지는 흐름은 아니라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현재 일본은 노후 석탄화력 등을 대체하는 가스발전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OCCTO는 LNG 화력발전 설비용량이 2024년 79.98GW에서 2034년 85.75GW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를 일본이 LNG를 다시 주력 전원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전력수급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있는 조정 가능한 전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있다.
때문에 일본은 노후 화력발전소를 대체하고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스발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장기 탈탄소 전원 경매에서도 LNG 발전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일본의 장기 탈탄소 전원 경매는 장기간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인데, LNG 화력도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일본이 탈탄소 정책을 포기했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원전·재생에너지 확대가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공급 안정성을 위해 가스발전의 역할을 일정 기간 유지하겠다는 접근에 가깝다. 다만 LNG 발전의 장점은 필요할 때 출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있을 뿐, LNG가 값싸거나 위험이 없는 전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연료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오는 한국의 경우 국제 가스가격과 환율, 해상운송비가 발전비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LNG는 원전이나 재생에너지보다 연료비 변동성도 크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 발전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전력시장 가격과 산업용 전기요금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LNG를 백업 전원으로 활용하더라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그리고 어느 가격에 연료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핵심 변수가 된다.
◆ 동일한 시험대 오른 한국.. 안정적 공급 시스템 다시 계산해야
한국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2월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 발전량 기준 무탄소 전원 비중을 7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핵심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다. 동시에 LNG를 포함한 가스발전 설비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 전력수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구상도 담겼다.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2038년 최대 전력수요는 129.3GW로 전망됐다. 이에 필요한 목표 설비는 적정 예비율 22%를 적용해 157.8GW로 산정됐다. 기존 계획과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 등을 반영한 확정설비는 147.5GW로, 2038년까지 10.3GW의 추가 설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이처럼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전원 구성도 탄소중립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날씨나 기상 조건에 따른 출력 변동성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무탄소 전원을 늘리면서도 전력 수급의 빈틈을 메울 조정 가능한 백업 전원 일정 수준 유지하기로 했으며, 그 핵심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LNG다.
이에 따라 LNG 발전이 전력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 기간 유지된다. 2038년 LNG 발전량은 74.3TWh로 전체 발전량의 10.6%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설비용량 기준으로는 69.2GW로 전체의 25.8%에 달한다.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도 전력수급의 변동성을 감당할 조정 전원의 역할을 일정 부분 남겨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과제는 발전설비를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력수요 자체가 늘어나는 가운데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전력수요에 적각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력이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맞춰 실제로 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송전망과 계통을 함께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차 전기본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초기에는 산단 내 LNG 발전을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다른 지역의 발전력을 송전망으로 끌어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물리적인 전력망 구축 외에 LNG 연료 자체를 둘러싼 고민도 일본과 닮아있다. 한국은 LNG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제 가스가격과 환율, 운송비 등 외부 변수에 발전비용이 크게 흔들린다. 따라서 LNG 발전설비를 얼마나 남겨둘지뿐만 아니라 필요한 연료를 언제 어떤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할지도 함께 계산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이러한 전력수요 증가가 산업계 전반의 구조적 현상으로 이어질 경우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반도체와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산업에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자체가 기업의 생산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발전원의 비중보다 예측 가능한 가격으로 필요한 전력을 끊김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일본의 대응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방향성을 유지하더라도 전력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난다면 기존의 발전원 감축 계획만으로는 공급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LNG와 전력망, 저장장치가 얼마나 메울 수 있을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