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황의 e법칙] 1945년 8월, 핵무기에 불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기억하며

 

[엔트로피타임즈 황상규 칼럼니스트] 


1945년 8월 6일과 9일. 이 날은 결코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날이다. 81년 전 바로 이 날, 인류는 처음으로 핵무기가 실제 전쟁에 사용되는 참혹한 역사를 경험했다.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 약 600m에서 우라늄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했다. 폭발 위력은 약 1만 5,000t의 TNT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당시 히로시마의 인구는 약 35만 명이었으며, 히로시마시는 1945년 말까지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흘 뒤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는 나가사키 상공에서 플루토늄탄 ‘팻 맨(Fat Man)’​이 폭발했다. 나가사키의 피해 역시 엄청났다. 당시 자료와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7만 명이 그해 말까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두 도시에 투하된 핵무기는 단순히 한순간의 폭발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폭풍과 열선, 화재, 방사선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평생 지속되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겼다.


한국인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이중의 고통’ 이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는 이중적 고통과 비극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용과 동원으로 일본에 끌려가 군수공장과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 피폭자 상당수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본의 전쟁체제에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7만 명의 한국인이 피폭을 당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사망했으며, 약 2만3,000명이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인에게 원폭 투하가 일제 식민지배라는 첫 번째 고통 위에 핵폭탄이라는 두 번째 고통이 겹쳐진 사건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피폭 후유증과 질병,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까지 감당해야 했다. 특히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피폭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핵무기와 원자력발전은 동전의 양면

 

핵무기의 역사는 역설적이다. 인간은 원자핵에 숨어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견했고, 그것을 전쟁의 무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원자력 기술을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의학, 농업, 식품, 환경 등 평화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내세우는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 개념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역설에서 출발했다.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는 기술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핵물질과 핵기술, 핵과학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 확대될수록 핵물질의 안전관리와 국제적 검증, 핵확산 방지 역시 중요해진다. 원자력 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핵무기 확산 방지는 별도의 영역이 아니라 함께 관리되어야 할 과제이다.

 

특히,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의 확산을 막는 국제사회의 중요한 장치다. 그런데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5개국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다른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핵보유국의 핵군축 의무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는다면 비핵보유국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핵무기 확산과 관련한 ‘핵확산금지조약’은 오늘날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핵능력 고도화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안보 불안을 키우고 있다. 재래식 무기의 비대칭전략으로 미국·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핵경쟁도 다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2026년 2월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핵무기를 제한해 온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만료​되면서 세계는 수십 년 만에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핵무기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제한이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유엔 사무총장 역시 이를 국제평화와 안보의 중대한 위험으로 평가했다.

 

전쟁과 AI 시대, 핵무기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26년 8월, 우리를 더욱 우려스럽게 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제정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연일 언급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충돌과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1945년 8월의 핵무기 사용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큰 차이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등장이다. 핵무기는 지금까지 인간의 판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나름대로 지켜져 왔다. 그런데 AI가 실시간으로 세계적 군사정보를 분석하고, 상대국(적국)의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고, 공격 가능성을 판단하고, 선제적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수많은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바로 그 장점이 핵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인간에게 몇 분 또는 몇 시간의 판단 시간이 주어지던 상황에서 AI가 결정을 지나치게 빠르게 압축한다면, 오판이나 잘못된 정보가 순식간에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국제평화연구소(SIPRI)도 군사분야 AI가 의사결정 시간을 압축하고 오판 위험을 높이며, 핵무기 위기에서 불안정성을 더욱 높이게 되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앞으로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접근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인간이 만든 핵무기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판단하는 인공지능이 결합한다면 과연 인류가 그 시스템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핵무기 없는 세상, 전쟁과 살상이 없는 세상

 

AI 시대를 맞아 핵무기의 사용을 억제하고 핵군축을 진전시키는 국제적 노력을 새롭게 다시 강화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핵보유국은 자신들의 안보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핵무기의 위험을 줄이고 궁극적인 핵군축이라는 국제적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 비핵보유국 역시 핵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규범을 지키면서 평화적 핵기술의 이용과 안전한 관리라는 원칙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인간의 최종 통제(Human Control)’가 핵무기와 군사 AI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인공지능도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핵무기 사용을 독자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AI는 전쟁을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고, 오판을 줄이며, 갈등을 조기에 발견하고, 평화협상을 지원하는 기술로 발전해야 한다.

 

인류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혜와 국제제도도 발전시켜 왔다. AI 역시 인류를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가치와 원칙으로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핵무기 없는 세상, 전쟁과 살상이 없는 세상, 그리고 인공지능(AI)이 인류의 파괴와 멸종이 아니라 세계 평화와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사용되도록 하는 일, 그것은 1945년 8월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 던지는 가장 절박한 메시지이자, 가르침이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