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국은 정기선, 한국은 시범운항.. 북극항로 주도권 경쟁 본격화

팬스타 아크로호 오늘 출항.. 837TEU 싣고 북극해 통과
러시아 협력·운항비·보험료 넘어 산업 생태계 구축이 관건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현실의 항로로 들어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줄어든 데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까지 겹치면서 북극해를 지나는 북동항로가 새로운 물류 선택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길을 누가 먼저 차지하고 누가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느냐다. 중국은 이미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했고 러시아는 항로를 관리하며 쇄빙선과 항행 지원을 쥐고 있다. 한국은 이제야 실제 화물을 싣고 첫 시범운항에 나선다.

 

오늘 부산항신항을 출항하는 팬스타라인닷컴의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그 첫 배다. 선박은 부산을 출발해 북극해를 거쳐 영국 펠릭스토우,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차례로 들른 뒤 10월 5일께 부산으로 돌아온다. 전체 운항에는 약 45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번 운항은 단순한 시험항해와는 성격이 다르다. 화학제품과 중고차, 자동차 부품 등 실제 화물 737TEU와 공컨테이너 100개 등 모두 837TEU를 싣는다. 부산항에서 로테르담항까지 약 1만 3000㎞를 이동하며 이 가운데 약 6400㎞를 북극해에서 운항한다. 북극해 통과에는 약 8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확인하려는 것도 실제 운항에서 나오는 숫자다. 얼마나 걸리는지, 연료는 얼마나 쓰는지, 쇄빙 지원과 항만 이용 등을 포함한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실제 화주들이 이 항로를 이용할 의사가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이번 운항에서 확보한 자료를 향후 정기 운항과 관련 산업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선사가 북동항로에 나서는 것은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선장과 항해사들은 극지해역 전문교육을 이수했고,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서 극지운항 경험을 쌓은 항해사도 1등항해사로 승선한다. 국내 최초의 북동항로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운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까지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로이터는 한국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전하면서 서방의 우려를 함께 언급했다. 북극항로의 상업적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운항 과정에서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한국이 새 항로에 뛰어들면서 마주하게 될 현실도 여기에 있다. 북극항로는 가까운 길일 수 있지만 반드시 싼 길은 아니다. 쇄빙선 지원과 극지 운항에 따른 추가 비용이 필요하고 보험료 부담도 크다. 해빙과 기상에 따라 운항 조건이 달라질 수 있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조나 해양오염 대응도 기존 항로보다 어렵다. 

 

◆ 부산~유럽 45일 항해..연료비·운항시간·화물 수요 검증
북극항로가 글로벌 물류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기존 항로보다 운항 거리를 크게 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이 커진 데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줄면서 과거에는 상업 운항이 쉽지 않았던 항로의 활용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새로운 항로에 처음 뛰어든 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정기 운항에 들어갔다. 중국 해운사 씨레전드(Sea Legend)는 지난 15일 중국 닝보에서 영국 펠릭스토우까지 러시아 북동항로를 이용하는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북극을 통과하는 첫 정기 화물 서비스로 소개했다.

 

 

가디언 역시 중국의 움직임을 ‘극지 실크로드(Polar Silk Road)’ 전략과 연결했다. 중국이 전기차와 리튬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수출품을 유럽으로 보내는 새로운 통로로 북극항로를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조건이 맞으면 중국과 유럽을 잇는 운송시간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노선보다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한국은 이제 실제 화물을 실은 시범운항을 시작하지만 중국은 이미 정기선을 띄웠다. 차이는 단순히 배 한 척의 출발 시점에 그치지 않는다. 항로가 상업화되면 항만과 선박, 보험과 금융, 화물 운송과 보관 등 주변 산업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항로를 이용하느냐 못지않게 관련 산업과 인프라를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경쟁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러시아의 역할은 더 직접적이다. 북동항로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가 관리하는 수역을 지난다. 선박 운항에는 러시아 측의 허가와 지원이 필요하고,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이 항로 운영과 쇄빙선 지원에 관여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로사톰은 올해 북동항로를 이용해 유럽으로 향할 중국 선박 7척에 대한 운항 계획도 밝힌 바 있다.

 

러시아에게 북극항로는 물류망인 동시에 에너지 수출로이자 북극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공간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안보와 외교에서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지만, 실제 항로 이용에서는 러시아의 역할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과의 경쟁까지 겹치면서 북극항로는 단순한 해운업계의 새 노선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경제성 역시 아직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북극항로는 거리를 줄일 수 있지만 쇄빙 지원과 극지 운항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 보험료가 높아질 수 있고, 해빙과 기상 조건에 따라 운항 가능한 시기도 달라진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구조와 해양오염 대응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WSJ와 가디언 역시 높은 보험료와 쇄빙선 의존,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의존성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따라서 이번 시범운항에서 중요한 것은 배가 유럽에 도착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실제 화물을 싣고 북극해를 통과하면서 운항시간과 연료소모량이 어느 정도인지, 쇄빙 지원과 항만 이용료 등을 포함한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실제 화주들이 이 항로를 이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항해에서 나오는 자료가 향후 북극항로의 상업성을 판단하는 첫 실증자료가 되는 이유다.

 

◆ 쇄빙 지원·보험료·러시아 변수 넘어 상업화 가능성 따져야
정부가 북극항로를 단순한 해운정책으로 다루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공포된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오는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북극항로위원회와 종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염두에 두는 분야도 해운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항을 컨테이너 물류 거점으로, 울산항을 에너지 거점으로 육성하고 극지 해기사와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쇄빙 컨테이너선 관련 기술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항로가 열렸을 때 해운뿐 아니라 조선·항만·물류·에너지 산업이 함께 기회를 잡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셈법은 다르다. 국적 선사인 HMM이 북극항로를 실제 정기 노선으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화물과 경제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항로를 지원하더라도 기업이 선단을 투입하려면 운항비와 쇄빙 비용,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극지 운항의 안전성도 넘어야 할 문제다.

 

조선업계에는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북극항로 운항이 확대되면 극한의 빙하와 혹한을 견딜 수 있는 특수선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쇄빙 LNG선 등 극지 운항 선박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새로운 시장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국산 쇄빙 컨테이너선 핵심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산항과 울산항도 마찬가지다. 북극항로가 정기 상업노선으로 자리 잡는다면 부산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물류망의 거점으로, 울산항은 북극권 에너지 자원과 연결되는 에너지 물류 거점으로 역할이 커질 수 있다.

 

다만 투자 시점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이 충분히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면 중국 등 경쟁국에 주도권을 내줄 수 있고, 반대로 경제성이 확인되기 전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부담이 커진다. 결국 이번 시범운항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실제 투자와 사업 판단에 반영하느냐가 중요하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가 끝나면 적어도 몇 가지 숫자는 손에 남는다. 북극해를 통과하는 데 실제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연료는 얼마나 사용했는지, 예상하지 못한 비용은 무엇이었는지, 화주들은 이 항로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다.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기 운항이 가능한지, 어떤 화물이 적합한지, 어떤 선박이 필요한지, 부산항과 국내 조선·물류업계가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도 결국 이번 운항에서 얻은 경험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북극항로는 이제 막 첫 시험을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배가 북극을 건너갔다는 기록보다 그 항해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다음 사업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