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전력망이 부족하면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전기를 보낼 수 없고 기업이 공장을 세우려 해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급증하는 데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송전망 확충은 이제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정부가 한전이 사실상 독점해온 국가기간 전력망 건설에 민간을 투입하기로 한 이유다. 국회는 지난 20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전력망확충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민간사업자도 국가기간 전력망 개발사업의 시행주체가 될 수 있다. 한전 혼자 감당해온 송전망 건설에 자본과 시공 역량을 더해 갈수록 커지는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송전망 건설은 자본과 인력을 집중 투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속도가 붙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사업 착수 후에도 인허가와 토지 보상, 주민 협의처럼 장기간이 소요되는 까다로운 절차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간의 참여가 실제 공기 단축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결국 사업 구조와 리스크 분담 체계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 한전이 맡던 전력망 건설, 민간도 시행주체로
국회는 지난 20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국가기간 전력망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를 대폭 넓힌 점에 있다. 기존에는 전기사업법상 송전사업자인 한전만 시행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전력망확충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면 민간사업자도 사업시행자로 지정될 수 있다.
단, 이번 조치가 민간에게 전력망의 소유권이나 운영권을 넘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간사업자가 특정 송전망의 건설을 맡아 완공하면 해당 시설을 송전사업자(한전)에게 넘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전력망 운영 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건설 단계에만 민간의 자본과 인력을 추가로 동원하는 형태다. 참고로 이 민간 참여 제도는 2029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정부가 이처럼 오랜 독점 틀을 깬 결정적 이유는 송전망을 새로 지어야 할 현장 수요가 전방위로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발전 지역과 소비 지역을 연결할 전력 고속도로가 더 필요해진 데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 인프라의 증설이 전력망에 유례없는 부담을 가하고 있어서다. 아무리 발전소가 전기를 잘 만들어도 이를 실어나를 송전망이 없으면 산업 현장은 작동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이에 발맞춰 개정안에는 여러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접속설비' 건설 근거도 포함됐다. 개별 사업자가 각자 접속설비를 따로 지으면서 생기던 중복 비용 부담을 줄이고 국토 난개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국가기간 전력망의 적용 대상 역시 크게 확장됐다. 재생에너지 송전선로뿐만 아니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전력을 대량 공급하기 위한 송·변전설비,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의 전력을 송전하기 위한 일부 핵심 설비까지 모두 포함된다. 전력망 확충이 단순히 에너지 공급 차원을 넘어 국가 핵심 산업의 입지와 직결되는 최우선 인프라 사업이 된 셈이다.
한전 입장에서는 그간 모든 전력망 건설을 홀로 떠안아야 했던 구조적 과부하를 덜 수 있게 됐다. 전국 각지에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자금과 시공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 역시 사업 물량이 급증한 현 시점에서 시행 주체를 다각화하여 국가 전체의 전력망 구축 역량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 사업자 늘려도 인허가 난맥·주민갈등은 여전한 불씨
그러나 사업 시행자의 폭을 넓혔다고 해서 민간기업들이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민간의 참여 유인은 한전의 부담 경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계산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송전망 사업은 민간이 시설을 소유하며 전력을 팔아 장기 수익을 내는 발전 사업과 달리 완공 즉시 한전에 시설을 넘겨야 한다. 따라서 민간기업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참여하려면 공사 기간 투입될 자금과 금융비용, 각종 변수를 상쇄하고도 남을 명확한 투자 수익 기준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만약 사업비 정산 방식과 적정 수익률 구조가 불투명하다면 법 개정으로 길은 열렸을지언정 실제로 나서는 민간 투자자는 거의 없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공사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이나 시공 중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사업비 증가 등 현장의 위험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참여의지는 더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송전망 건설은 사업자가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공사 기간을 통제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치명적 특성을 지닌다. 노선 지정 단계부터 수많은 인허가를 거쳐야 하는 데다 토지 보상과 지역 주민 협의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송전선로 통과 지역에서는 토지 이용 제한과 재산권 침해, 경관 훼손 등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보상 규모와 지역 지원책을 둘러싼 협상에만 수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사업 주체가 한전에서 민간으로 바뀐다고 해서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과 지연 요소가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공공성 기반이 약한 민간사업자에게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과정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경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사업자에게 주민 협의의 책임을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법적·행정적 중재 역할을 수행할지에 대한 명확한 역할 분담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민간사업자에게 제공할 적정 이윤과 리스크 보상 수준을 정하는 일 역시 매우 신중해야 한다. 민간의 사업비를 인정해 주는 기준이나 리스크 분담 방식에 따라 향후 국민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이나 공공 재정의 부담 크기가 직접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과 변수가 존재하는 이상 이번 개정안의 성패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민간사업자가 참여했는가'로 갈리지 않는다. 2029년 말까지로 설정된 한시적 민간 참여 기간은 제도의 실효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검증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 투입으로 실제 건설 기간이 단축되었는지, 비용 증가와 공기 지연 리스크가 줄었는지, 나아가 인허가 및 주민 협의의 병목 현상이 실질적으로 해소되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만약 기존 방식으로 10년이 걸리던 송전망 공사가 민간 참여를 통해 7~8년으로 단축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입증되는 셈이다. 반대로 사업 주체만 민간으로 바뀌었을 뿐 인허가 지연과 주민 갈등에 막혀 전체 기간이 그대로라면 단지 건설 주체만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이번 개정의 목적은 한전의 독점 해소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수행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송전망을 더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느냐'다. 민간이 참여할 만한 투자 조건과 함께 공기 지연 및 비용 증가 위험의 분담 방식, 그리고 주민 협의 구조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짜느냐에 국가 전력망의 미래가 달려 있다.
법이 정한 2029년이 민간 참여 연장 여부나 정하는 행정적 시한이 아니라 실질적 결과를 따져 묻는 시점이어야 하는 이유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도 공사 기간은 줄지 않은 채 비용만 늘어난다면 성공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이 증명해야 할 핵심은 민간의 참여 자체가 아니라 전력망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지어냈다는 실체적 성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