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트로피타임즈 황상규 칼럼니스트]
올여름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은 이제 단순히 불쾌한 날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이 되었다. 특히 도시에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태양열을 축적하고 건물과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인공열까지 더해지면서 열섬현상이 심해진다. 같은 기온이라도 도시의 보행자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훨씬 높아진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여름 도심의 인도와 산책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 가로수 그늘이 끊어지고, 그늘막 하나 없는 도로를 걷다 보면 몇 백 미터가 마치 몇 킬로미터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건물 그늘이나 가로수 아래를 찾아 걷는다.
살인적인 폭염과 ‘그늘보행권’
한 여름 길거리 태양빛 아래를 잠시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최근 ‘그늘보행권’이라는 말이 시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서울시는 최근 ‘그늘보행권’을 도시정책의 새로운 원칙으로 제시하고, 시민들이 일상적인 이동 과정에서 끊김 없이 그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행공간을 계획·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순히 그늘막 몇 개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지하철역, 학교, 시장, 병원, 공원까지 이어지는 실제 보행동선에 그늘을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부산에서도 ‘그늘보행권’이 중요한 도시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시내 주요 도로나 산책로 등을 낮에 다녀 보면, 도심 보행로 상당한 구간이 땡볕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그늘막’과 ‘쿨링포그’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러한 시설들은 극히 제한적이고, 시민이 실제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그늘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자연 생태계에서 햇빛은 생명과 생존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우리 인류에게 햇빛을 쪼일 권리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기후재난의 수준까지 환경이 바뀌면서 햇빛은 ‘양날의 칼’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햇빛을 받을 권리도 중요하지만, 폭염 속에서는 햇빛을 피하고 그늘을 선택할 권리도 동시에 중요해지게 되었다.
햇빛을 받을 권리와 그늘을 선택할 권리
도시에서 햇빛은 양면적인 존재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들은 햇빛을 필요로 한다. 자연채광과 일조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고 인간의 건강과 생체리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조권’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햇빛을 받을 권리, 즉 ‘Sunlight Access’는 도시환경에서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폭염이 심해지는 여름철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강한 직사광선은 보행자의 열 스트레스를 높이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표면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특히 고령자, 어린이, 장애인, 야외노동자 등에게 폭염 속 보행은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관점이 태동하고 있다.
‘햇빛이 필요할 때는 햇빛을 받을 수 있고, 햇빛이 위험할 때는 그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편의시설의 문제가 아니다. 보행권과 건강권, 환경권, 이동권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시민권과 연결될 수 있다.
‘그늘보행권’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늘막 몇 개의 숫자가 아니다. 시민이 실제로 이동하는 경로에 그늘이 얼마나 넓게, 오래, 끊김 없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늘은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생활권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그늘을 찾아 헤매는 도시에서 그늘을 생산하는 도시로
여름철 노외주차장을 이용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주차공간을 피해 나무나 건물의 그늘이 있는 자리를 선호한다. 때로는 그늘진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주차장을 몇 바퀴씩 돌기도 한다.
그늘은 이처럼 시민들이 실제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선택하고 싶은 도시의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차장은 대부분 “자동차를 세우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폭염 속에서 자동차와 운전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늘을 제공하는’ 주차장을 만들고, ‘그늘로 연결된’ 산책로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주차장의 경우, 이 개념을 ‘그늘 안전 주차권’이라는 정책적 개념으로 발전시켜 볼 수도 있다. 법률상의 권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폭염 시대에 시민과 자동차가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주차환경을 도시가 제공해야 한다는 정책적 개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태양광 설치를 적절히 연결하는 묘안(妙案)이 필요하다. 주차장 위에 태양광 캐노피를 설치하면 자동차에는 그늘이 생기고, 캐노피 위의 태양광 패널은 전기를 생산한다. 생산된 전력은 주차장 조명이나 건물에 공급하거나 전기차 충전에 사용할 수 있고, ESS와 결합하면 저장도 가능하다.
즉, ‘주차’ + ‘그늘’ + ‘태양광’ + ‘전기차 충전’ 이라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수도 있다.
시민들이 그늘을 찾아 빙빙 돌던 도시에서 그늘을 생산하는 도시, 시민이 잠시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다.
폭염대책, ‘그늘막’ 몇 개 더 만들겠다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폭염이 심해지면 지방정부는 당장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 그늘막을 설치하고, 쿨링포그를 가동하며, 살수차를 운영하고, 무더위쉼터를 확대한다. 이러한 대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특히 갑작스러운 폭염에는 즉각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그러나 매년 폭염이 심해질 때마다 그늘막과 쿨링포그 시설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설을 설치하는 비용(예산)뿐 아니라 전력과 물, 유지관리 비용도 발생한다. 특히 쿨링포그는 기온·습도·바람 등의 조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폭염이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도시가 아니라 폭염을 견딜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나무를 심고 도시 숲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물과 도로의 배치, 보행로의 차양, 공공공간의 열환경까지 도시계획 단계에서 고려하고 있다.
우리도 폭염대책을 개별 시설의 숫자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늘막을 몇 개 설치했는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집에서 목적지까지 얼마나 안전하게 그늘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가로 평가하고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그늘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화해야 한다. 가로수와 도시숲, 건물의 처마와 캐노피, 공원과 광장의 그늘, 바람길과 수변공간, 필요한 곳의 냉각시설을 하나의 도시 열환경 네트워크로 설계해야 한다.
그늘을 만들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 그늘 도시’
여기서 태양광 발전을 연결하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도 시도해 보면 좋겠다. 지금까지 태양광은 주로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로만 인식됐다. 지붕이나 주차장,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몇 MWh의 전기를 생산하는지를 계산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태양광의 역할을 한 단계 확장할 수 있다. 시민에게 필요한 그늘을 제공하면서 그 위에서 덤으로 전기까지 생산하는 새로운 개념.
도로 옆 인도에 그늘막 보도(Solar Shade Walkway), 그늘이 있는 공원(Solar Shade Park), 그늘이 있는 자전거도로(Solar Bike Corridor), 그늘막이 있는 전통시장(Solar Canopy), 그늘진 주차장(Solar Carport), 그늘이 있는 해안 산책로(Solar Coastal Corridor)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의 공통점은 태양광 패널이 햇빛을 차단해 그늘을 만들고, 동시에 일부 햇빛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시설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즉, 그늘 제공 → 폭염 대응 → 보행환경 개선 → 태양광 발전 → 탄소감축 → 전기차 충전 → 시민 휴식공간 등으로 선순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래의 도시에서는 햇빛·그늘·바람·물·녹지·에너지를 서로 분리해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환경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한다. 특히 태양광은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 태양광 패널이 만드는 그늘을 단순한 ‘부수효과’로 보지 말고, 폭염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공공서비스로 평가해야 한다. 앞으로는 태양광 발전량뿐 아니라 ‘그늘 면적’, ‘그늘 지속시간’, ‘그늘 연결성’과 같은 새로운 도시환경 지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햇빛을 받는 권리와 햇빛을 피할 권리는 동전의 양면
햇빛은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햇빛을 받을 권리와 햇빛을 피할 권리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광이라는 기술을 통해 두 권리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겨울에는 햇빛을 누리고,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그 과정에서 태양에너지는 전기로 전환한다. 이것이 바로 ‘햇빛을 쬘 권리와 햇빛을 피해 그늘을 보행할 권리, 그리고 태양광의 콜라보’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가 해야 할 일은 폭염이 올 때마다 임시 그늘막을 늘리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도시 자체가 그늘을 생산하고, 동시에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햇빛은 에너지로 바꾸고, 그늘은 시민들에게 돌려주자. 그것이 폭염과 에너지 위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새로운 도시의 길이 될 수 있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