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영국이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본격적인 개발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21일 영국이 고정식 해상풍력에 적합한 얕은 해역이 점차 한계에 이르면서 부유식 해상풍력으로 개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앞으로 10~15년 동안 영국 연안에 약 3000기의 부유식 풍력터빈이 설치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부유식 해상풍력이 영국 해상풍력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다. 실제 사업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웨일스 정부는 지난 8월 7일 펨브룩셔 앞바다에서 추진되는 Llŷr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에 건설·운영 동의를 승인했다. 두 개의 100MW급 사업으로 구성되는 프로젝트로 총 200MW 규모다.
사흘 뒤인 8월 10일에는 해외 자본 유치 소식도 전해졌다. 일본 스미토모상사가 계획 용량 최대 1.5GW 규모의 'Gwynt Glas'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 지분 33.3%를 인수한 것. 기존 주주인 EDF 파워 솔루션 UK·아일랜드, ESB에 더해 스미토모가 새 주주로 합류하면서 대형 프로젝트 추진에 탄력이 붙게 됐다.
부유식 해상풍력이 아직 상업화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영국에서 나타난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발전사업뿐 아니라 투자와 인허가, 기술 실증까지 사업의 각 단계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부유식 해상풍력을 육성해온 배경에는 해상풍력 개발 면적을 넓힐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정식 해상풍력은 해저에 기초구조물을 설치해야 하는 관계로 수심이 깊어질수록 설치 난도가 높고 비용이 급증한다.
반면 부유식은 발전기를 부유체에 설치하고 계류시스템으로 해저에 연결하는 방식이어서 보다 깊은 해역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최대 50GW를 확보하고 이 가운데 최대 5GW를 부유식으로 채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 기술·투자에 항만 인프라까지 전방위 생태계 구축 나서
최근 영국의 움직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부유식 해상풍력이 개별 발전사업을 넘어 관련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6일에는 스코틀랜드에서 부유식 풍력발전기의 계류와 전력 연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술의 실증시험이 시작됐다. 현지 기업 엔코마라(Encomara)가 개발한 장치로 실제 해상풍력 프로젝트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웨일스에서는 사업 인허가가 진전되고 있고 대형 프로젝트에는 일본계 투자자까지 합류했다.
항만 투자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웨일스 포트 탤벗에 최대 6400만파운드를 지원해 켈틱해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을 뒷받침할 항만 거점을 구축하기로 한 바 있다. 포트 탤벗은 최소 4.5GW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시설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처럼 영국이 발전기 설치 이전 단계부터 항만 조성에 공을 들이는 것은 부유식 해상풍력이 단순한 발전소 건설을 넘어 대규모 해양 종합 산업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대형 부유체를 제작하고 조립할 넓은 부지와 전용 항만, 이를 해상으로 운송·설치할 특수 선박과 장비, 계류시스템, 동적 해저케이블 등이 필수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결국 사업 규모가 확대될수록 제조·조선·해양 서비스 산업의 역할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영국이 초기부터 항만과 공급망 인프라를 동시 구축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다만 시장이 이미 완전한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국의 2026년 해상풍력 경쟁입찰에서도 부유식 해상풍력의 행정상 최대가격은 MWh당 271파운드로 설정됐다. 고정식 해상풍력의 113파운드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영국 정부가 부유식 해상풍력에 별도의 높은 가격 상한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고정식과 같은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1월 발표된 영국의 7차 해상풍력 경쟁입찰에서도 고정식 해상풍력은 8.2GW가 낙찰됐지만 부유식은 약 200MW에 그쳤다. 부유식 해상풍력의 시장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성을 갖춰나가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 거대 부유식 단지 띄우는 한국, 조선·해양 인프라가 반전 카드
영국과 마찬가지로 고비용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한국 역시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고정식 해상풍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깊은 바다로 영역을 넓혀야 하는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구체화된 대표적 사업이 울산 앞바다에서 추진되는 한국부유식풍력(이하 KF Wind)의 1,125MW 프로젝트다.
KF Wind는 울산에서 약 80㎞ 떨어진 해역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15MW급 풍력발전기 75기가 계획돼 있으며 사업 해역의 수심은 약 175~275m에 이른다.
최근에는 공급망 구축도 구체화됐다. KF Wind는 부유식 하부구조물 공급을 위해 SK오션플랜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국내 기업이 실제 대규모 부유체 제작에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부유식 해상풍력에 주목하는 배경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상풍력 개발이 확대될수록 상대적으로 깊은 해역을 활용해야 하는 사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역시 비용 극복이라는 과제를 피하기 어렵다.
부유체와 계류시스템, 동적 해저케이블 등 추가 설비가 필요한 데다 대형 구조물을 제작·운송할 항만과 전용 설치선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관련 기업의 생산 경험이 쌓이고 생산 규모가 커져야 단위당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초기 시장에서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이 같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부유식 시장에서 큰 기회를 기대하는 이유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 덕분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해양플랜트와 철강, 케이블, 중공업 기자재 등 관련 산업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다. 향후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이 커지면 부유체 제작부터 계류시스템, 케이블, 항만, 해상 설치와 유지보수까지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대폭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뛰어난 제조 기반만으로 시장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안심하고 설비와 인력을 투자해 생산 경험을 축적하려면 연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프로젝트 발주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물량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안정적인 인허가·정책 환경이 뒷받침되어야만 산업 기반이 비로소 시장 경쟁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최근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도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가 사업 인허가에 속도를 내자 웨일스 프로젝트에 일본 기업의 투자가 물꼬를 텄고, 스코틀랜드에서 핵심 기술 실증이 진행되는 사이 정부는 배후 항만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시장의 판을 깔아주고 있다. 발전 사업뿐만 아니라 인프라와 제도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민간 생태계가 작동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에서도 울산 등의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다면 조선·해양플랜트와 기자재 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확고히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물량 확보가 어려워지면 국내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부유식 해상풍력은 이제 기술 자체를 보여주는 단계에서 사업성과 산업 경쟁력을 함께 입증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섰다. 영국에서 최근 잇따르는 사업 승인과 투자, 기술 실증은 그 전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역시 울산을 비롯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부유식 해상풍력의 사업성을 검증받고 있다.
향후 국내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는 발전기와 부유체 같은 개별 기술뿐 아니라 공급망과 항만, 설치 인프라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