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태양광 패널과 농작물이 서로의 온도를 낮춰주며 발전 효율과 생육 환경을 동시에 개선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농형 태양광이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기존 우려와 달리 패널과 작물이 양방향으로 이득을 주고받는 상생 구조가 입증된 것이다.
그동안 영농형 태양광은 패널의 차광으로 인한 일조량 부족이 핵심 쟁점이었다. 햇빛이 부족해지면 농작물 생육에 차질이 생기고 결국 농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이 만든 그늘은 폭염 시기 작물의 고온 스트레스를 낮추고 수분 손실을 막아주는 효과를 냈다. 나아가 작물과 토양에서 방출되는 수증기가 패널 주변 온도를 낮춰 태양광 발전의 약점인 고온으로 인한 효율 저하까지 일부 상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볕 47% 줄어도 탄소 흡수는 선방.. 폭염 스트레스 상쇄는 덤
지난달 31일 미국 과학 전문매체 라이브사이언스(Live Science)에 따르면 프린스턴대와 듀크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지구 시스템 모델링 발전 학술지(Journal of Advances in Modeling Earth Systems)'를 통해 영농형 태양광의 식량·에너지·건강 효과를 종합 분석한 연구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태양광 패널과 작물, 토양, 공기, 물 간의 에너지·물질 이동을 정밀 계산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의 영농형 태양광 현장 데이터로 검증을 마친 뒤 미국 뉴저지의 덥고 습한 날씨 속 토마토 농장에 이 모델을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햇빛이 반토막 나 수확량과 생육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시뮬레이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패널 아래 토마토의 낮 평균 잎 온도는 일반 노지보다 1.84℃ 낮아졌고,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에는 최대 7.56℃까지 떨어졌음이 그를 증명한다. 작물의 증산에 따른 물 손실도 22.4% 감소했다. 패널이 만든 그늘이 단순히 햇빛을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물 주변의 온도와 수분 환경을 바꾼 결과다.
물론 빛이 줄어드는 대가는 있었다. 모델에서 패널 아래 토마토가 받는 햇빛은 일반 노지보다 47% 적었다는 것이 그것. 그만큼 탄소를 흡수하는 양도 감소했지만 감소폭은 31%로 빛의 감소폭보다 작았다. 연구진은 상대적으로 온화해진 환경이 고온 스트레스를 낮추면서 그늘로 인한 일부 손실을 상쇄한 것으로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햇빛을 받느냐가 아니었다. 기온이 높고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작물이 얼마나 뜨거워지고 물을 얼마나 잃는지도 생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작물과 태양광 패널의 관계다. 연구진의 모델에서는 영농형 태양광 패널의 낮 평균 온도가 주변에 식물이 없는 토양 위 패널보다 5.6℃ 낮아졌다. 태양광 패널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데 식물과 토양에서 일어나는 증발산이 주변 미세기후에 영향을 주면서 패널의 온도를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높은 온도로 발생하는 발전 효율 손실 가운데 약 15%를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루 태양광 에너지 생산량도 약 3% 늘어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부수적인 효과도 발견됐다. 농업 노동자의 작업환경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근무시간의 열 환경을 계산한 결과 패널 아래에서 사람이 느끼는 평균 온도는 일반 농지보다 4.46℃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량과 전력을 함께 생산하는 영농형 태양광을 폭염에 노출되는 농업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 12월 법 시행 앞둔 한국, 단순 설치 넘어 최적 균형점 찾아야
다만 이번 연구를 영농형 태양광이 실제로 농작물 수확량을 높인다는 직접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이번 연구는 실제 토마토 농장에서 수확량을 비교한 실증 결과가 아니라 실제 영농형 태양광 현장의 데이터를 이용해 검증한 모델을 특정 기후와 작물에 적용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결과 역시 뉴저지의 덥고 습한 날씨와 토마토라는 조건을 바탕으로 산출됐다. 작물의 종류나 기후, 패널의 높이와 배열, 차광 정도가 달라지면 결과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영농형 태양광 사업의 본질은 패널 양산이 아닌 농작물 생육과 발전량 간의 균형점 산출에 있다. 한국 역시 제도 정비와 함께 이 같은 고민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접어들었다.
현재 한국은 영농형 태양광의 제도적 기반을 빠르게 다져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6월 공포된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이 법은 농업 생산을 유지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병행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오는 12월 17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제도화의 방향 역시 단순히 농지에 태양광을 확대하는 데 맞춰져 있지는 않다. 농업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수익이 농업인과 농촌 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법의 주요 취지이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이제 논의의 중심은 법적 허용 여부에서 현장실증의 실효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반 지상형 태양광과 달리 영농형 설비는 정교한 설계가 성패를 가른다. 농기계 작업 공간을 보장하면서도 작물이 필요로 하는 최소 일조량을 확보해야 하는 까닭이다. 패널의 높이나 간격, 차광 수준 같은 미세기후 변수 하나가 농가 수확량은 물론 발전 수익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이와 함께 고려해볼 부분이 경제성이다. 농업을 유지하면서 발전설비를 설치하려면 일반적인 지상형 태양광과 다른 구조가 필요하고 그만큼 초기 투자와 유지관리 조건도 달라진다. 어떤 작물이 적합한지, 어느 정도의 차광이 적절한지, 농기계 작업에 지장이 없는 설계가 가능한지도 현장에서 검증해야 할 과제다.
결국 이번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태양광 패널과 농작물이 반드시 토지와 햇빛을 두고 다투는 상극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기온과 수분, 일사량을 종합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단일 부지에서 식량과 전력을 동시에 얻는 것은 물론 기후위기 속 폭염에 맞설 농업의 적응력까지 끌어올리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법제화로 물꼬를 튼 국내 영농형 태양광 시장의 향방 역시 마찬가지다. 양적 확대에 치중하기보다 농업 생태계와 발전 수익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정교한 현장 설계와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