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도 증명해야 수출한다” 정부, 중소기업 CBAM 대응 총력

설명회·교육 넘어 계측설비·검증비용까지 지원해 전방위 대비
본격 시행된 CBAM..기업 역량 강화가 수출 경쟁력 가를지 주목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이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제 제품을 잘 만들어 수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한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 산정하고, 그 수치를 뒷받침할 데이터를 확보해 검증까지 받아야 하는 기업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유럽으로의 수출이 달려있는 일인만큼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응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과거처럼 제도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탄소배출량 산정을 위한 교육과 실습, 계측설비 구축, 검증비용 지원, 현장 컨설팅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CBAM 대응이 단순한 규제 적응을 넘어 국내 제조기업의 생산·관리 체계를 바꾸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의미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관세청은 2일 경북 경산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2026년도 제13차 정부 합동 CBAM 대응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4월 서울과 6월 부산에서 열린 설명회에 이은 자리다.

 

이번 설명회에는 CBAM에 관심 있는 기업 관계자 등 200명가량이 참석했다. 프로그램도 단순한 제도 소개에 머물지 않았다. ‘CBAM 제도 이해’와 ‘실무사례 공유’로 세션을 나눠 확정기간의 주요 내용과 대응 방법, 탄소배출량 산정, 검증 대응 등을 설명하고 실제 기업의 대응 사례도 공유했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탄소집약적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현재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적용된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의 전환기간을 거쳐 올 1월부터 본격적인 확정기간에 진입했다.

 

기업 입장에서 CBAM 대응이 유독 까다로운 이유는 탄소 감축 자체도 어렵지만, 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출량을 줄였더라도 이를 증명할 데이터가 없거나 산정 과정의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출길에서 곧바로 차질을 빚게 된다. 이번 설명회에서 ‘확정기간 고유 내재배출량 산정 방법’과 ‘CBAM 검증 동향 및 대응’을 별도 세션으로 구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탄소를 줄이는 것만큼 측정하고 증명하는 능력 중요해져
정부의 지원 방식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달라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중소기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이론교육과 함께 직접 탄소배출량을 산정해보는 실습 프로그램을 다섯 차례 진행했다. 제도를 이해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기업 담당자가 실제 배출량 산정 과정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CBAM 대상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에는 탄소배출량 측정을 위한 계측설비 구축과 검증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15일까지 참여 기업을 모집한다. 기업 생산현장을 직접 찾아가 CBAM 대상 제품의 배출량을 산정해주는 컨설팅과 기업 전용 상담창구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지원 범위를 넓히는 것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CBAM 대응이 새로운 비용과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처럼 탄소배출량을 관리할 전담 조직이나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기업에는 배출량 산정부터 데이터 관리, 제3자 검증까지의 과정 자체가 낯선 과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정부가 계측설비와 검증비용까지 지원한다는 것은 CBAM 대응에서 탄소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도 읽힌다.

 

이번 설명회에서 우수 중소기업의 실제 대응 사례가 별도로 소개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CBAM 대응체계를 구축해 리스크를 낮춘 사례부터 저탄소 전구물질 사용으로 수출경쟁력을 높인 사례, CBAM 대응을 계기로 수출실적을 끌어올린 사례까지 공유됐다. CBAM을 비용 부담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생산과 원료 조달 방식을 바꾸고 탄소관리 역량을 수출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정부의 지원책이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기업 현장의 대응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을 받고 계측설비를 갖추는 것과 실제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CBAM 대응은 한 번의 신고를 준비하는 일회성 과제가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계속 축적하고 관리해야 하는 장기적인 업무에 가깝다. 탄소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뒤에는 실제 배출량을 낮추기 위한 설비 투자와 공정 개선까지 이어져야 한다.

 

정부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설명회와 교육뿐 아니라 탄소배출량 측정·검증 인프라 구축과 탄소감축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업이 정부 지원을 활용해 실제 대응 역량을 얼마나 끌어올리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EU의 제도 변화와 적용범위 확대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CBAM의 영향은 현재 대상 품목을 수출하는 기업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 국내 제조업 공급망에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정부도 CBAM 적용범위 확대 등 제도 개정 동향을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기업 부담을 완화할 방안을 EU 측과 협의하는 한편, 기업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CBAM은 이제 유럽의 새로운 환경규제를 이해하는 문제를 넘어 국내 제조기업이 탄소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관리하고,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의 역할 역시 규정을 설명하는 데서 벗어나 기업이 실제 생산현장에서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