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인공지능(AI)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확충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반발이 커지면서 사업 속도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데이터센터를 신속히 확충하려는 정부·기업의 의도와 달리 시설이 들어설 지역에서는 전력·용수 소비 및 환경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제기하는 핵심 우려는 AI 산업의 필요성 그 자체가 아닌, 생활환경에 미칠 실질적인 피해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사용, 상시적인 소음과 열기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데이터센터 확장의 핵심 과제는 단순한 부지·전력망 확보를 넘어 지역사회가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주민 수용성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 전력·물은 지역이 부담.. 커지는 데이터센터 갈등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갈등은 해외에서도 주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대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데이터센터 건립에 대한 주민 반발이 2026년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8월 말 캘리포니아주 한포드에서는 약 100명의 주민이 모여 지역 박람회장 내 데이터센터 건립 추진에 강하게 반대했다. 주민들이 지적한 핵심 문제는 AI 기술 발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데이터센터 운영에 따른 수자원 고갈 및 대기질 악화 등 생활환경에 미칠 실질적인 부작용이었다.
이 같은 갈등의 배경에는 데이터센터가 가져오는 편익과 지역사회가 부담하는 비용 사이의 간극이 자리한다. 데이터센터는 건설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발하지만 운영 단계에서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주민 입장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지역에 어떤 경제적 편익과 일자리를 가져오는지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시설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와 환경 부담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반면 그에 따른 편익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디언은 지난 3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수백 명의 주민과 환경단체가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일시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최소 20개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으며, 일부 사업은 소규모 마을과 주거지역, 요양시설 인근에 계획돼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 사례는 전력망과 용수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지역으로 데이터센터를 분산하는 것만으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용수를 확보하기 좋은 지역일 수 있지만 주민에게는 그곳 역시 삶의 터전이다. 데이터센터가 지역의 전력·용수·환경 자원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그에 상응하는 편익이 지역에 돌아오는지가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국내도 입지 단계부터 주민 의견 묻는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순한 모습이다. 한국도 데이터센터 입지를 둘러싼 수용성 문제가 심심찮게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의회는 지난 6월 16일 데이터센터 건립 관련 행정사무조사 결과보고서를 의결했다. 지난해 9월 데이터센터 건설 과정에서 제기된 시민 건강권과 행정 절차의 투명성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뒤 약 9개월간 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고양시의회는 조사 결과 데이터센터 건립 과정에서 행정 절차의 문제와 시민 안전 대책 미흡 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 금천구는 갈등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7월 1일 입지와 인허가 단계에서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주민참여형 검토체계’ 도입 방침을 밝혔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대지 경계 200m 이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 검토와 갈등조정협의회 등을 거쳐 전자파·소음·열섬현상 등의 영향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개발사업자와 주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갈등조정협의회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상생 방안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데이터센터 갈등을 착공 이후 발생하는 민원의 문제에서 입지 선정과 인허가 초기 단계에서부터 관리해야 할 과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시설 건립을 통보하는 방식보다 사전에 우려를 확인하고 사업자가 지역사회에 어떤 편익을 제공할지 함께 논의하는 방식으로 행정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갈등은 AI 산업 확대와 함께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AI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데이터센터 확충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제정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도 내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를 전력망 여유가 있는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만으로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입지 단계에서 전력과 용수 사용에 따른 지역사회 부담을 어떻게 줄일지, 소음과 환경 영향을 어떻게 관리할지, 데이터센터 유치에 따른 편익을 지역과 어떻게 나눌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의 조건이 전력 확보에서 지역의 동의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느냐뿐 아니라 시설을 받아들이는 지역사회와 어떤 비용과 편익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