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임종순 칼럼니스트]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의 통합 방안은 에너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국가 차원의 협상력(Bargaining Power)을 강화하고, 자원 개발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국가 안보적 결단이다.
그러나 거대 공기업 간의 통합은 당위성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두 기관이 지닌 근본적인 차이점을 정밀하게 다루지 않는 단순 물리적 합병은 오히려 국가 에너지 수급 체계를 흔들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할 수 있다. 성공적인 통합을 위해 정교하게 풀어내야 할 3대 핵심 과제와 실무적 해법을 제안한다.
사업 구조의 이질성 : ‘상류(Upstream) 통합, 하류(Downstream) 독립’
석유와 가스는 같은 유전에서 생산되는 유기물 일 수 있지만 거래 방식과 시장 구조가 완벽히 다르다.
석유는 완결된 민간 자율 시장에서 유통된다. 비축과 ‘실시간(Spot, 스팟) 거래’ 중심의 가변적 기초재화(commodity)다.
반면 가스는 국가 배관망 인프라와 공공 규제 아래 장기계약(SPA) 및 수급 안정이 핵심인 독점적 기초재화다. 이런 차이를 무시한 일괄 통합은 조직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주회사형(HoldCo) 체제'를 갖춰 경영을 기능적으로 분리하는 게 필수적이다.
해외 자원 탐사·개발(Upstream) 및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비축 기능은 '국가자원개발통합본부'로 일원화,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해야 한다.
반면 국내 가스 배관망 운용 및 유통(Downstream)은 기존 한국가스공사의 공익적 수급 체계로 독립성을 유지시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상장(가스) vs 비상장(석유) : '현물출자 기반 모자(母子)회사 구조'
이미 주식시장에 상장된 가스공사와 완전 비상장 공기업인 석유공사의 합병은 주주가치 침해라는 거대한 법적·금융적 장벽에도 직면한다.
자본잠식 상태인 석유공사와의 직접 합병 비율 산정은 소액 주주들의 강력한 반발과 주주대표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돌파할 현실적 대안은 '단계적 지분 교환 모델'이다.
1단계로 정부가 보유한 석유공사 지분 100%를 가스공사에 현물 출자하여, 가스공사를 모회사로 두고 석유공사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모자회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후 자회사 석유공사의 경영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맞춰 단계적·선택적 사업 부문 합병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소수 주주를 보호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재무 부실의 전이 : '부채 격리(Ring-fencing)와 국가 안보 특수계정'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무적 영향(Infection) 차단이다. 가스공사는 이미 15조 원에 이르는 민수용 미수금과 최근 불거진 글로벌 LNG 공급 대란으로 고가의 현물 구입, 차입금 증가로 재무적 한계 상태다.
여기에 자본잠식 상태인 석유공사의 부채가 직접 합산될 경우, 통합 법인의 신용등급 하락과 사채 발행 한도 초과로 이어져 당장 국내 가스 수급을 위한 사채 발행마저 막히는 치명적 위기가 발생한다.
따라서 '부채 격리(Ring-fencing)'를 위한 입법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석유공사의 기존 부채와 해외 부실 자산은 정부가 신설할 '국가자원안보 특수계정(가칭)'으로 완전격리하여 가스공사의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지 않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무 리스크가 차단돼야 통합 법인이 정상적인 금융 조달을 통해 국가 수급망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물을 섞는 것이 아닌, 고압의 화학 반응 유도해야
석유와 가스의 통합은 두 병의 물을 한 컵에 붓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성격이 다른 두 기체를 고압으로 압축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고도의 화학적 반응'이어야 한다.
자산의 단순 합산이 아닌 기능의 정밀한 재배치, 부채의 전이가 아닌 안보 자산의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지구촌 에너지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을 거대한 ‘종합 에너지 안보 공기업(K-Energy)'을 갖게 될 것이다.
임종순 칼럼니스트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