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수소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단순한 생산기술 대결을 넘어 핵심 에너지원과 공급망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미·중의 전략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중국이 수전해 설비 제조력과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발판 삼아 그린수소 분야의 규모를 키우는 반면, 미국은 풍부한 천연가스와 탄소포집·저장(CCUS) 기술을 결합해 저탄소 수소 생산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양국이 추진하는 생산 방식 모두 명확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 어느 하나가 시장의 절대적 승자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특정 방식에 올인하기보다 가격, 탄소배출량, 운송비, 공급 안정성, 지정학적 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소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그린수소 시대
수소가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에너지원으로 부상했음에도 기대만큼의 성장을 이뤄내지는 못하고 있다. 높은 생산 단가와 미비한 인프라 탓에 한계에 부딪히면서 실제 상용화 시장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는 이러한 수소 시장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수소 수요는 약 1억 톤까지 늘어났지만 탄소 배출을 줄인 저배출 수소의 비중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했다. 청정수소의 생산 기반이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실제 시장 공급의 대다수는 여전히 가격이 저렴하고 생산이 쉬운 천연가스나 석탄 등 화석연료 기반 수소로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수치는 수소산업의 현실 속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경제적 경쟁력 사이에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분해하는 수전해 방식은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비싼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수전해 설비의 초기 투자비, 낮은 설비 이용률, 미비한 전력망 및 저장·운송 인프라라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결국 시장에서는 단순히 가장 친환경적인 수소라는 타이틀만으로는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순한 친환경성을 넘어 생산비와 운송 효율, 안정적 공급 여건 등 종합적인 경제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와 조건의 차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수소 경쟁력의 방향성 또한 크게 엇갈리고 있다.
수소 생산 부문 세계 1위에 빛나는 중국은 독보적인 수전해 설비 및 제조업 기반을 핵심 무기로 삼았다. 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에 설치된 수전해 설비와 최종투자결정(FID)에 도달한 설비의 약 65%를 점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수전해 제조 능력에서도 약 6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강자의 위용을 자랑한다. 이처럼 거대한 제조 기반과 재생에너지 설비 공급망을 내수 시장에 갖춘 덕분에 중국은 수전해 설비의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며 대형 프로젝트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또한 중국의 경쟁력은 단순히 장비를 많이 생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부터 전력변환장치, 수전해 장치에 이르기까지 수소 생태계 전반의 제조 인프라가 자국 내에 수평·수직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린수소 상용화의 핵심 요소인 값싼 재생에너지 전력과 저가 수전해 설비라는 강력한 시너지 조합을 완성해낸 것이 중국의 가장 큰 무기다.
반면 미국은 자국의 압도적 자원 환경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천연가스 생산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CCUS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화석연료를 원료로 이용하면서도 탄소배출량을 대폭 낮춘 저탄소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 역시 천연가스 개질과 CCS를 결합한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수전해 방식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임을 제시한다. 특히 미국은 천연가스 채굴뿐만 아니라 이를 액화해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하는 LNG 인프라까지 완벽히 갖추고 있어 가스 자원 자체의 우위와 글로벌 물류 인프라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이점을 지닌다.
물론 미국의 가스·CCUS 기반 수소 역시 아무런 제약 없이 무조건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CCUS 초기 설비 투자비와 이산화탄소 수송·저장 인프라 구축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천연가스 채굴 및 운송 과정에서 누출되는 메탄까지 고려할 경우 실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블루수소의 상업적 생존력 또한 단순한 천연가스 사용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높은 비율로 탄소를 포집하고 전체 공급망에 걸쳐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공급망 안보와 운송 효율, 한국의 새로운 고민
이 지점에서 자원 소국인 한국의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처럼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자체 보유한 국가가 아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상 생산 단가가 매우 높고 천연가스 역시 대부분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국내 생산에만 매달리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지역으로부터 수소를 다양한 경로로 조달하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훨씬 현실적이고 타당한 대안이 된다.
예컨대 중국의 뛰어난 수전해 기술과 설비 공급망을 활용해 그린수소 도입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동시에 미국의 천연가스·CCUS 기반 저탄소 수소 역시 가격 조건이 맞는다면 주력 공급원으로 적극 수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호주나 중동처럼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제3의 지역으로까지 조달처를 넓힘으로써 특정 국가나 특정 생산 기술에 과도하게 귀속되는 지정학적 및 기술적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 수소 조달 전략을 실행할 때에는 반드시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리적 물류 한계라는 현실적 장애물을 함께 다뤄야 한다. 중국산 설비나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외국우려기업(FEOC) 규제나 공급망 안보 이슈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또한 기체 상태의 수소는 장거리 운송이 극도로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암모니아나 LOHC(액상유기수소운반체) 등의 매개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과 물류 손실까지 치밀하게 산출해야 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최신 움직임 역시 이러한 종합적 공급망 다변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와 CCUS를 결합한 수소 생산·공급 기술 연구를 지속하면서 미국산 LNG 도입을 확대해 안정적 원료 공급망을 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단일 생산 방식에 구속되지 않고 국내외를 가로지르며 수소 생산·충전·모빌리티를 하나로 묶는 입체적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의 행보를 블루수소나 그린수소 중 어느 하나를 최종 선택한 결과로 이분법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종의 생산기술이 혼재하며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전환기적 상황에서 위험을 분산하고 각 기술 및 공급망의 주도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청정수소 정책 방향 역시 특정 생산 기술을 지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최종적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합리적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국내 청정수소 인증제는 수소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원천 기준으로 삼아 청정수소 등급을 부여하고 있으며 청정수소 발전입찰시장(CHPS) 또한 이러한 배출 기준을 엄격히 충족한 수소만을 입찰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결국 한국 수소산업의 성패는 특정 생산방식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얼마나 유연하게 조달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은 가격, 시기,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만족시키는 최적의 수소 확보 능력이다.
중국이 수전해 제조 능력으로 그린수소 생태계를 확장하고 미국이 천연가스와 CCUS로 또 다른 축의 저탄소 수소 시장을 키워가는 현 상황에서 한국이 단 하나의 생산방식이나 특정 공급망에 사활을 걸 이유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생산 비용이 최우선인 수요처, 탄소배출 규제가 엄격한 수요처, 장거리 운송이 필수적인 수요처 등 개별 시장과 용도의 조건에 맞춰 최적의 공급원을 적재적소에 매칭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이제 중국과 미국을 단순한 경쟁 상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두 국가가 가진 명확한 강점을 한국의 수소 조달 포트폴리오 안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식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한국 수소 경제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