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폭염과 가뭄, 극한호우 등 기후재난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기후정책이 온실가스 감축 중심에서 기후변화로 이미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줄이고 사회의 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위험을 사전에 평가하고 취약지역과 계층을 찾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기후보험과 적응산업까지 법률에 담기면서 기후변화가 환경정책을 넘어 안전·복지·금융·산업의 문제로 확대되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9일 서울 중구 비즈허브서울센터에서 기후적응 분야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후위기 적응 및 회복력 강화에 관한 법률’의 하위법령 마련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와 입법예고 등을 거쳐 법률 공포 후 1년 이내 하위법령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기후위험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체계 마련 눈길
이번 법 제정의 가장 큰 특징은 기후위기 적응을 독립적인 정책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기후위험을 체계적으로 평가·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후위기 적응 정책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등에 일부 조항으로만 흩어져 있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정된 이번 법은 기후변화 영향 조사와 위험 평가부터 적응대책 수립·이행 점검, 취약계층 지원까지 정책 전 과정을 별도의 독립된 법체계로 일원화하여 실행력을 높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후위험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체계다. 정부는 기후위기 적응정보를 수집·관리·공개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분야별·지역별 기후영향과 취약성을 조사·분석한다. 기후위험 평가 결과를 공간정보로 구축해 공개하고 이를 활용해 기후위험 저감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기후재난이 발생한 이후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에 위험지역과 취약요인을 파악하고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기후위험 정보가 축적되면 지방정부의 재난 대응뿐 아니라 도시계획이나 기반시설 관리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기후변화가 환경부만의 정책 과제가 아니라 지역개발과 사회기반시설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자리 잡는 셈이다.
이외에 기후위험 평가와 함께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과 지역에 대한 지원체계도 담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반복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폭염이나 집중호우 등의 피해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만큼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을 별도로 파악하고 정책자원을 집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 기후보험·적응산업까지.. 관건은 하위법령
기후위기 대응은 보험과 산업 영역으로도 확대된다. 법에는 기후보험 도입과 기후보험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근거가 포함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보험 등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기후보험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형태로 작동할지는 앞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기후재난의 빈도와 피해 규모를 어떻게 산정할지, 보험료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정부와 보험업계가 위험을 어떻게 분담할지 등에 따라 제도의 실효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적응산업 육성도 추진한다. 기후공시 대응을 위한 평가도구 개발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기후적응이 새로운 산업과 기업의 대응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법률 제정 이후 실제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은 앞으로 마련될 하위법령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날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논의하는 내용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정부는 최근 기후변화 추세에 맞는 하위법령 수립 방향을 비롯해 분야별 적응정보의 표준화, 기후위험 평가 방법, 범부처 협력 거버넌스 구축, 취약계층 지원방안 등을 논의한다.
특히 무엇을 기준으로 기후위험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지역별 기후위험을 어떤 지표로 평가할지, 폭염·가뭄·홍수 등 서로 다른 위험을 어떻게 비교할지, 평가 결과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에 따라 법의 활용도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도 과제다. 실제 기후재난 대응이 지역 단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국가가 구축한 기후위험 정보를 지자체의 적응대책과 예산·사업으로 어떻게 연결할지가 중요하다. 향후에는 기후위험 정보가 기업의 사업장 관리와 시설 투자, 보험상품 개발, 지자체의 도시계획 등 민간과 공공의 의사결정에 어디까지 활용될지도 관심사다.
그동안의 국내 기후정책이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이미 달라진 기후 속 위험을 어떻게 예측하고 회복할 것인가'로 정책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게 됐다. 그러나 정책의 외연이 넓어진 만큼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제 현장의 위험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실질적인 예산 배정과 사업 추진, 보험 및 산업계의 대응 체계로 긴밀히 연결해내는 실행력이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오일영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후에너지정책실장은 “기후위기적응법 제정은 최근 심화하는 기후위기에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특히 기후 취약계층이 체감할 수 있는 튼튼한 기후안전망 구축을 위해 하위법령 제정 작업을 차질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