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미국도 한국도 전력 뻥튀기 몸살.. AI 데이터센터 검증 착수

허수 수요에 흔들리는 미국 전력망과 제도적 대응 현황
한국 전력 시장의 현주소와 단계별 정밀 관리 필요성 커져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전력 확보 경쟁이 거세지면서 실제 건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전력 수요를 뜻하는 이른바 ‘유령 수요’가 미국 전력망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들이 전력망 접속을 앞다퉈 신청하면서 실제 필요한 전력보다 많은 수요가 전력망에 잡히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송전 설비를 확충할 경우 투자와 전기요금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러한 유령 수요 경고음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초기 신청 수치와 실제 집행 사이의 격차를 명확히 가려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계획 단계의 허수 수요를 걸러내지 못하면 한정된 전력 계통 용량이 잠식되어 정작 전력이 시급한 사업이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 전력망 접속 신청 700GW 돌파.. 검증 강화와 제도 개선 시급
로이터는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중서부·중부대서양·남부 일부 지역의 전력망 자료와 전력회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전력 수요처의 전력망 접속 신청 규모가 700GW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현재 미국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력의 10배를 웃도는 규모다.

 

로이터는 이 가운데 상당수 신청이 중복됐거나 실제 사업을 추진할 자금과 역량이 부족한 사업자의 허수 신청일 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대규모 전력 수요 신청이 급증한 텍사스의 상황은 더욱 가파르다. 미국 전력망 운영기관 ERCOT과 텍사스 주지사실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약 48GW였던 대규모 전력 수요처의 접속 신청 규모가 최근 474GW를 넘어섰다. 데이터센터와 AI·클라우드 서버 시설을 겨냥한 전력 선점 경쟁이 급격히 과열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전체 신청 물량 가운데 실제 전력 사용으로 이어질 알짜 규모를 가려내기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미국 전력회사마다 데이터센터 수요를 집계하는 기준 자체가 제각각인 탓도 크다.확정 계약을 체결한 프로젝트만 집계하는 곳이 있는 반면 아직 확약이 없는 문의 단계의 사업까지 수요 전망에 포함하는 곳도 있다.

 

이는 단순한 우려 수준이 아니다. 실제 검증을 강화하자 예상 수요가 줄어든 사례도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전력회사 엑셀론은 지난 7월 30일 발표한 투자자 대상 자료에서 데이터센터 관련 고확률 수요 전망을 11GW로 낮췄다. 기존 전망보다 약 40% 줄어든 규모다. 이는 데이터센터 사업에 대한 담보 요건을 강화한 뒤 수요 전망을 조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오하이오의 전력회사 AEP 역시 데이터센터의 계통 접속 관련 비용을 부과하는 신규 규정을 도입한 이후, 전력 수요 파이프라인이 절반 이하로 급감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전력망 선제 투자 위험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데이터센터 입주 예정 지역에는 발전소와 송전선로, 변전소 등을 미리 구축해야 하는데 막상 사업이 무산될 경우 선제 투자한 설비의 활용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건립이 확정됐음에도 전력망 확충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데이터센터 가동 자체가 지연되는 차질을 빚기도 한다. 실제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 영역에서는 이 같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이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졌다. 로이터는 기존 수요와 예상 데이터센터 물량이 동시에 늘어난 여파로 최근 네 차례의 용량시장 경매에서 PJM 지역 가정과 기업이 부담해야 할 용량비용이 총 294억 달러나 불어났다고 전했다.

 

텍사스는 이런 문제에 대응해 데이터센터 전력망 접속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8월 데이터센터 전력망 접속 신청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지시를 내렸고, 전력 프로젝트의 실소유주와 자금조달 방식, 세제 혜택 활용 여부, 용수 사용량, 자체 발전설비 계획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전력망 안정성을 판단하려면 데이터센터 사업의 실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취지다.

 

◆ 한국도 계획 수요와 실제 공급 구분하여 관리 기준 개편해야
AI 산업 확대로 빚어진 이런 불협화음은 한국이라고 자유로울리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AI 확산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되면서 데이터센터의 계획 물량과 실제 전력수요를 구분하는 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8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확대,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따라 한국에서 추가로 필요한 전력이 25~30GW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대형 원전 약 20기의 발전량에 해당한다. 전기차 보급과 전기 난방 확대도 추가 수요 요인으로 거론됐다.

 

대규모 전력수요가 예상되는 만큼 실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이미 전력계통 확보 단계에서 상당한 물량이 걸러지고 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 코리아 역시 관련 리포트를 통해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CBRE 코리아가 지난 7월 발표한 ‘Korea Data Center Investment’ 자료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 수도권에서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검토를 신청한 데이터센터 사업은 522건, 신청 용량은 총 3만3592MW였다.

 

이 가운데 1차 기술검토에서 공급 가능 판정을 받은 사업은 243건·1만5542MW였고, 공급 불가 판정을 받은 사업은 279건·1만8050MW였다.1차 기술검토를 통과한 243건 가운데 본심사까지 올라간 사업은 24건이었으며 최종적으로 전력 공급 가능 판정을 받은 사업은 10건·1010MW였다. CBRE는 전체 522건 가운데 최종 공급 가능 판정을 받은 사업의 비중을 1.9%로 제시했다.

 

 

다만 이 수치를 데이터센터 사업의 실패율이나 실제 건설 가능성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522건·3만3592MW는 2026년 3월까지 누적된 1차 기술검토 신청 물량이고, 10건·1010MW는 그 이후 단계에서 최종 공급 가능 판정을 받은 누적 물량이다. 같은 모집단을 동일한 시점에서 추적한 전환율이 아니기 때문이다. CBRE 자료를 재정리한 AI-DC KOREA 역시 이 수치를 ‘누적 행정 흐름’으로 봐야 하며 프로젝트별 성공확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신청 단계의 전력 규모와 최종 공급 가능 단계의 물량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초기 단계에서 제시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그대로 향후 공급 물량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실제 사업 진행 상황을 단계별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데이터센터 사업에서는 전력계통 접속 신청, 공급 가능 여부 확인, 전력계약, 인허가, 착공, 가동이 각각 다른 단계다. 전력계통을 신청했다고 해서 곧바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전력 공급 가능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즉시 실제 전력 사용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전망할 때 단순히 개발업체가 발표한 데이터센터 규모를 합산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량이 일반 건축물보다 월등히 크고 AI용 서버가 들어서면 고밀도 전력 공급과 냉각설비까지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몰릴 경우 발전량 자체뿐 아니라 송전망과 변전소의 수용능력까지 함께 확보해야 한다. 전력망 확충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변수다. 데이터센터 사업이 확정되기 전에 전력망 투자를 시작하면 사업 지연이나 취소 때 투자 효율이 떨어질 수 있고, 반대로 사업 확정 이후 전력망을 준비하면 데이터센터 가동 시점에 맞추지 못할 수 있다.

 

결국 AI 데이터센터 시대의 전력수요 관리는 ‘몇 GW의 데이터센터가 계획돼 있는가’에서 ‘그 가운데 실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전력을 사용할 것인가’로 기준을 옮기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의 유령 수요 논란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전력망 접속 신청만으로 막대한 수요가 쌓이면 발전·송전 투자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물량이 섞일 경우 전력망의 한정된 접속 여력을 잠식하고 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다.

 

한국 역시 AI와 반도체 중심의 대규모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계획 단계의 수요와 실제 공급이 확정된 수요를 구분하는 관리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 신청부터 실제 가동까지 각 단계의 물량과 이탈·지연 현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전력망 투자 규모도 보다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