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탈탄소 기조화에 따른 에너지전환이 진행될수록 화석연료 투자는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세계 에너지시장에서는 새로운 에너지와 기존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저탄소 에너지의 생산능력을 키우는 한편 석유·가스 공급망에도 여전히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모습이다.
에너지 수요 자체가 계속 증가하면서 기존 에너지를 빠르게 걷어내기보다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추가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이 ‘기존 에너지의 교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 태양광에 4400억 달러, 석유에도 5400억 달러 투입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지난 1일 '에너지 전환 투자: 전체 시스템 가치를 볼 때(Investing in the energy transition: Time to look at whole-system value)'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5년 에너지 전환이 상당한 진전을 보였음에도 태양광·풍력 등 저탄소 발전 설비의 증가만으로는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이다.
맥킨지는 기존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들이 더 이상 전 세계적으로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있다는 가정이다. 기존 통념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어나는 만큼 화석연료 소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보았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두 에너지원이 동반 성장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5년에는 태양광과 풍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공급 역시 늘었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화석연료가 추가한 에너지 규모는 약 4.5엑사줄(EJ)에 달했다. 석유 수요는 하루 약 130만 배럴 증가했고 석탄 소비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세계 전체 에너지 수요 역시 전년 대비 1.3% 늘어났다. 신재생에너지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 파이 자체가 커지면서 화석연료가 담당해야 하는 절대적인 물리량 역시 함께 증가한 셈이다.
투자 규모에서도 기존 에너지원과 신규 에너지원이 함께 확대되는 흐름이 명확히 확인된다. 2025년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전체에는 약 3조 3000억 달러가 투자됐다. 이 가운데 약 1조 8000억 달러가 화석연료와 발전, 저탄소 기술 등 에너지 생산 부문에 투입됐고, 전력망·저장장치 등 기반 시설에는 약 4790억 달러, 에너지 효율과 최종 소비 부문에는 7730억 달러가 들어갔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자금이 빠르게 몰리는 가운데 기존 에너지원의 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구체적으로 원유 탐사·채굴(석유 상류)에 약 5400억 달러, 태양광에 약 4400억 달러가 각각 투자됐다. 투자 대상은 다르지만 두 부문에 비등한 규모의 자금이 들어간 셈이다.
석유 상류 부문 투자는 기존 유전의 자연 감퇴를 막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비용이며 태양광 투자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신규 확장 투자다. 맥킨지는 이를 특정 에너지원이 다른 에너지원으로 단순히 교체되는 과정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진 여러 에너지 시스템이 시장 내에서 병렬적으로 구축·가동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 에너지 전환 속 화석연료 투자 지속.. 핵심 변수는 수요 증가
기존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가 계속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에너지 수요의 절대적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맥킨지는 2025년 에너지 수요가 증가한 주요 요인으로 아시아 지역의 냉방 수요 확대, 화물 운송 및 석유화학 산업 성장, AI 데이터센터 확대, 리쇼어링(본국 복귀)에 따른 산업 설비 투자 등을 꼽았다. 전기화 역시 기존 에너지원 수요를 일부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전력 수요를 창출해 내고 있다.
에너지 수요 자체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기존 에너지원의 역할을 곧바로 대체하기 어렵다. 신규 발전 설비와 전력망을 구축하는 동안에도 기존 에너지의 공급망과 생산 기반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전망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IEA는 지난 5월 28일 발표한 '세계 에너지 투자 2026'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에너지 투자가 전년 대비 5% 증가한 3조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재생에너지·원전·전력망·저장장치·저배출 연료·에너지 효율·전기화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 약 2조 2000억 달러, 석유·천연가스·석탄에 약 1조 2000억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청정에너지 투자가 화석연료의 약 두 배에 달하며 에너지 투자의 중심축은 이미 이동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도 여전히 1조 달러가 넘는 거액이 투입되는 만큼 기존 에너지원이 단기간에 투자 대상에서 사라지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변수도 다양해졌다. IEA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를 계기로 각국이 공급망 다변화와 에너지 안보 강화에 나서면서 재생에너지·원전뿐만 아니라 석탄·석유·가스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IEA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자급률은 19%에 불과해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반면 전체 에너지 투자 중 청정에너지 비중은 92%로 세계 평균(66%)을 크게 상회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제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안보도 확보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평가할 때도 단순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확대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전량을 늘리는 데 필요한 송전망과 저장장치(ESS), 전력 수요 변동에 대응할 유연성 자원, 안정적 공급을 뒷받침할 발전 설비와 연료 공급망까지 종합적으로 살피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맥킨지가 강조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향후 에너지 전환 평가에서는 단순 투자액이나 설비 증가율보다 '투입된 1달러가 에너지 시스템 전체에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탄소 발전 설비의 확충 속도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 공급 안정성, 회복탄력성,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다각도로 함께 달성할 수 있는지가 핵심 기준이 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다음 단계는 단순히 '화석연료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접근하기 어렵다. 급격히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 속에서 신·구 시스템의 균형점을 찾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비용과 공급망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에너지 시장의 진짜 과제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