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한때 전기차와 함께 미래 친환경차의 한 축으로 주목받았던 수소차가 새로운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전기차가 승용차 시장을 빠르게 넓히는 가운데 수소차는 충전 인프라와 수소 가격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어서다. 수소차 전체 시장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수소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장거리 운행과 높은 가동률이 필요한 트럭·버스 등 대형 상용차는 수소가 전기차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실제 국내외에서도 수소 모빌리티의 활용처를 승용차에서 상용차로 넓히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둔화된 성장세.. 새로운 돌파구 필요한 수소차
이 같은 체질 개선의 배경에는 벼랑 끝에 몰린 승용 수소차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수소승용차 판매량은 2022년 1만104대에서 2023년 4294대, 2024년 2717대로 크게 줄었다. 2022년과 비교하면 2024년 판매량은 약 73% 감소한 수준이다.
다만 이 수치를 현재 시장 상황으로 그대로 해석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2025년 6월 현대자동차의 신형 넥쏘가 출시되면서 수소승용차 판매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발생한 대기수요가 이전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준 측면도 있다.
2026년에도 수소승용차 보급 정책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6월 ‘2026년 수소전기자동차 민간보급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대차의 디 올 뉴 넥쏘 79대를 보급 대상으로 정하고 대당 최대 395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충전요금을 낮추고 2027년까지 수소충전소를 추가로 설치하는 계획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수소승용차가 전기차와 비교해 뚜렷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차종이 빠르게 늘고 충전 인프라도 확대되면서 승용차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수소차는 차량 가격뿐 아니라 수소 생산·운송·충전 인프라 구축까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결국 수소차 보급을 확대하려면 모든 승용차 시장에서 전기차와 경쟁하기보다 수소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후보가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다.
◆ 국내외서 트럭·버스로 향하는 수소 모빌리티
수소가 상용차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형 트럭과 버스는 하루 운행거리가 길고 차량 가동률이 높아 긴 주행거리와 짧은 충전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용량 배터리를 실어야 해 차체가 무거워지는 대형 전기트럭과 달리 수소연료전지는 장거리·고가동 운송 현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용차 중심의 전환 기류는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선명하게 확인된다. 다임러트럭은 지난 9월 3일 볼보그룹, 도요타, 보쉬, 에어리퀴드, 토탈에너지스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과 손잡고 유럽 내 수소트럭 생태계 확대를 위한 대형 협력 구상을 발표했다. 수소 공급부터 충전 인프라, 차량 보급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2030년까지 수소트럭 시장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완성차 업체 간 실증 사업도 구체적인 시점을 명시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도요타와 스카니아는 지난 9월 7일, 도요타의 3세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한 대형 트럭 40대의 시험 운행 계획을 밝혔다. 첫 차량이 도로에 투입되는 시점은 2027년 1분기다. 도요타는 장거리 운행과 높은 가동률이 필수적인 중대형 운송 분야를 수소 수요와 인프라를 동시에 끌어올릴 핵심 거점으로 판단하고 있다.
차량 보급에 맞춰 유럽 대륙 전체의 충전 인프라 논의도 한층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지난 8월 31일,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 약 2,000곳의 트럭용 수소충전소가 신설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유럽연합 내 수소충전소가 350bar와 700bar 방식을 합쳐 310여 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대형 상용차를 축으로 인프라 판을 크게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셈이다.
아시아의 맹주인 중국 역시 정책적 사다리를 상용차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수소에너지 종합 활용 시범사업'을 통해 중대형·중장거리 운송과 콜드체인 물류를 수소연료전지차 우선 보급 대상으로 명시했다. 버스와 도시 물류차는 물론 위생차량, 건설·토목 운송차량 등 가동률이 높은 분야를 우선 사수하겠다는 구상이다.
북미 시장에서도 대형 물류 현장을 겨냥한 실질적인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하이로드 에너지(Hyroad Energy)와 협력해 수소연료전지 기반 클래스8 대형 트럭 40대를 실제 운송 현장에 투입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 같은 흐름이 수소 상용차가 전기 상용차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대형 상용차 영역에서도 전기트럭의 침투율이 빠르게 올라가는 데다 수소차 역시 비싼 차량 가격과 수소 공급 단가, 부족한 충전소 등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국내외 시장이 장거리·대형 운송 분야에서 수소의 해법을 찾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승용차처럼 충전 편의성과 초기 구매 가격이 결정적인 시장보다는 '긴 주행거리, 빠른 충전, 높은 가동률'이 수익성과 직결되는 물류 현장에서 수소 본연의 상대적 우위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수소산업도 승용차 보급 대수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수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할 필요가 있다. 버스와 대형 트럭, 물류차량 등 상용차를 중심으로 초기 시장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수소 생산·유통·충전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수소차의 미래가 전기차와의 정면승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영역에서 수소만의 시장을 만드는 데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