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안보

[황의 e법칙] 전쟁의 시대는 끝났다


[엔트로피타임즈 황상규 칼럼니스트]


미국의 참전 요청에 따라 한국군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파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확대 국면에서 한국의 군사적 참여가 과연 국익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전쟁의 확대와 무분별한 전쟁 참여는 결국 미친 짓에 가까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전쟁, 시작은 쉽지만 끝내기는 어려워

 

전쟁은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 한 번 군대를 보내고 미사일이 발사되면 보복이 이어지고, 보복은 다시 보복을 부른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전쟁 목적조차 희미해진 채 더 큰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현재 세계가 목격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을 둘러싼 중동 지역의 전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쟁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명분이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침략을 막기 위해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그 명분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파괴되는 도시, 무너지는 경제가 드러난다.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했으며, 지금까지 실제로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른 대가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됐다. 당초 러시아가 예상했던 단기간의 군사작전은 장기전으로 바뀌었고,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으며, 얼마나 많은 가정이 가족을 잃었는가. 학교와 병원, 주택과 발전소, 철도와 산업시설 등 국가의 기반시설도 광범위하게 파괴됐다.

 

경제적 피해는 더욱 막대하다. 세계은행 등의 평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향후 복구·재건에 필요한 비용은 약 5,88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이 끝난다고 피해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파괴된 국가를 복구하는 데에는 앞으로도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 역시 전쟁 수행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며, 군인과 민간인의 인명 피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있다. 러시아는 과연 이번 전쟁을 통하여 무엇을 얻었으며, 우크라이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 러시아는 영토와 지정학적 영향력, 국가안보를 이야기할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생존과 영토 회복, 주권과 자유를 이야기할 것이다. 각각의 입장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를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계산은 달라진다. 그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며, 파괴된 도시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를 잃은 아이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처는 경제적 보상만으로 치유될 수 없다.


중동 전쟁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 역시 핵과 미사일, 국가안보와 자위라는 명분 속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피해는 당사국을 넘어 주변 국가와 세계경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적인 해상 통로다. 이 지역의 군사적 충돌이 확대되면 국제유가와 해상운임이 상승하고, 에너지 가격은 다시 물가와 산업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주유소의 기름값으로 나타나고,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나타나며, 식탁의 물가와 기업의 생산비용으로 나타난다. 국가의 국방비와 전쟁비용이 증가하면 결국 그 부담은 국민경제와 미래세대로 넘어간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지도자이지만, 전쟁터에서 죽는 사람은 대부분 평범한 국민이다. 젊은 군인과 민간인, 어린이와 노인, 전쟁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희생된다.

 

전쟁터로 보내는 군인이 자신의 아들이고 딸이라면, 자신의 가족이라면 과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자신의 자식이 미사일 공격으로 죽고, 드론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의 집이 폭격으로 무너진다면 그때도 이를 ‘국가를 위한 필요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물론 국가에는 안보가 필요하다. 침략을 당했을 때 이를 막을 군사력도 필요하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정한 군사적 억지력이 필요한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군사력을 갖는 것과 전쟁을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과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권력의 관계다. 전쟁이 발생하면 외부의 적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고 국민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전쟁 중에는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건전한 비판도 국가안보와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약화된다. 보통 독재를 꿈꾸는 정치인들은 전쟁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전쟁이 발발하면, 합법적 계엄을 선포할 수 있고, 전쟁 기간 동안 집권을 연장할 수도 있다.

 

전쟁이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권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거나 정치적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처음의 목적은 점점 흐려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관성이 붙어서 ‘이기기 위해 계속 싸우는 전쟁’이 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너무 많은 비용을 투입했기 때문에 멈추기도 어려워진다.


드론·AI·위성 시대, 전쟁은 더 위험해졌다

 

현대전은 과거의 전쟁과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군사적 충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드론이다. 값싼 소형 드론이 전차와 장갑차, 방공체계와 주요 시설을 공격한다. 정찰과 감시뿐 아니라 표적 탐지와 공격까지 드론이 수행한다. 소위, 비대칭 전력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차와 전투기, 함정과 미사일의 숫자가 군사력의 우열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드론과 AI, 사이버전, 전자전이 고가의 군사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전쟁의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는 위성통신과 위성인터넷이다. 과거에는 지상의 통신망과 지휘체계를 파괴하면 상대방의 전쟁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상의 통신망이 파괴되더라도 위성통신과 위성인터넷을 통해 일정 부분 통신과 지휘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지상의 인터넷과 통신망을 파괴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쉽게 굴복시키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드론, 위성, AI, 사이버전, 정밀유도무기와 전자전이 결합하면서 현대전은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비극을 줄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직접 보지 못하는 먼 거리에서 상대방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능력이 더욱 정교해졌다. 전쟁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전쟁 당사자인 인간들의 지혜는 그만큼 발전했는가. 이것이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제 ‘전쟁을 끝내는 시대’로 가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의 군사적 충돌은 이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더 많은 군인을 희생시킬 것인가. 더 많은 도시와 산업시설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것인가.

 

전쟁에는 승자가 있을 수 있지만, 승자 또한 전쟁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적을 굴복시키고 전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팔다리도 한 두 개 쯤 내줘야 한다.

 

한쪽이 상대방보다 덜 파괴됐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진 무덤과 폐허,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삶까지 계산한다면 전쟁의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적자다.


대한민국의 선택은 ?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안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강력한 방위력과 한미동맹 역시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외교력과 평화전략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문제 역시 단순히 미국의 요청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익과 국민의 생명, 에너지 안보, 국제법,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가 아니라 전쟁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국가여야 한다.

 

이제 인류는 전쟁을 잘하는 국가를 강한 국가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외교력과 협상력으로 전쟁을 피하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지켜내는 국가를 진정으로 강한 국가라고 평가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부모가 일터로 가고, 농부가 농사를 짓고, 기업이 생산하고,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다.

 

지금의 전쟁을 우리 인류의 마지막 전쟁으로 만들자는 것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구호가 아니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 에너지 위기, 환경파괴, 그리고 AI·드론·위성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의 파괴력이 더욱 커진 현실에서 인류가 선택해야 할 생존의 문제다.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는 사람은 역사의 방향을 바꾼다. 이제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과 국가의 자존심보다 국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이 부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쟁이 되기를 바란다. 인류가 후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평화의 역사다.



황상규 칼럼니스트
ESG평가연구소장, ISO26000한국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 환경윤리학 박사 수료, , ‘사회책임의 시대‘(2013)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