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세계 농업 현장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세계 농민 6명 중 1명꼴인 17%가 이미 농업 관련 업무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정보 탐색부터 영농 의사결정까지 AI가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국내 농업 현장은 아직 AI 활용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AI 영농 서비스 개발과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고령 농업인 비중이 높고 농가별 데이터 축적도 충분하지 않아 글로벌 농업의 AI 전환을 따라가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 단순 검색 넘어 영농 의사결정 도구 자리매김
맥킨지가 이번에 발표한 ‘글로벌 농민 인사이트 2026’은 전 세계 10개국 농민 5500명을 대상으로 농가의 기술 채택과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다. 2020년부터 이어진 조사인 만큼 농민들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생성형 AI다. 농업 관련 업무에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답한 농민은 17%였다. 아직 대부분의 농민이 AI를 사용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생성형 AI가 농업에서도 실험적인 기술을 넘어 실제 업무에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생성형 AI가 기존 애그테크와 다른 점은 접근성이다. 스마트팜이나 자율주행 농기계처럼 별도의 장비를 설치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이 궁금한 내용을 직접 질문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농업 정보 습득 방식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모든 산업이 다 그렇듯 농업 역시 정보는 곧 생산성과 연결된다. 어떤 품종을 선택할지, 언제 파종하고 수확할지, 작물의 이상 징후가 무엇인지, 어떤 농자재를 선택할지 등 농민은 매일 수많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에는 주변 농민의 경험이나 농업 전문가, 농자재 판매점, 영업사원 등에 의존했다면 요즘 부상하고 있는 생성형 AI는 이 과정에 새로운 정보원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농민의 기술 구매 방식 자체가 디지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맥킨지는 농민들이 제품을 조사하고 비교·평가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채널의 활용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판매자가 설명하는 제품을 받아들이기보다 직접 정보를 찾아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이런 변화에 잘 들어맞는다. 특정 제품이나 기술을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뒤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거나 추가 질문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 입장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웹사이트나 자료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다만 AI가 기존의 농업 전문가를 곧바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맥킨지 조사에서 농민들이 제품이나 기술을 선택할 때 신뢰하는 정보원 가운데 농업 전문가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았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농민이 늘고 있지만 AI가 내놓는 답변 자체를 무조건 신뢰하는 단계까지 온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농업이라는 산업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농업은 같은 작물이라도 지역과 토양, 기후, 재배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AI가 일반적인 재배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특정 농가의 상황까지 정확하게 반영하려면 훨씬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농민들이 AI를 실제 영농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답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생활정보나 단순 검색과 달리 영농 판단이 틀리면 한 해 농사를 망치거나 농자재 비용을 고스란히 손실로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 활용률 17%와 유료 이용률 4%의 차이도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생성형 AI를 한번 사용해보는 농민과 실제 영농에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비용까지 지불하는 농민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있다. 결국 농민들이 AI를 받아들이는 핵심 기준은 기술의 새로움보다 실제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가, 투자한 만큼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 AI를 만드는 것보다 농민이 쓰게 하는 것이 관건
한국에서도 농업의 AI 전환을 위한 움직임은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농업을 넘어 인공지능과 농업 데이터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정책 범위를 넓히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농업인을 대상으로 AI 활용을 확대하고 관련 서비스를 개발·보급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농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농민이 농업 관련 궁금증을 질문하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제공하거나 농업 경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농업 AI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면서 앞으로 관련 서비스와 교육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가 AI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농민이 실제로 AI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 농촌의 가장 큰 현실적 장벽 가운데 하나는 농가의 고령화다. 생성형 AI 자체는 사용법이 간단해졌지만 AI에 어떤 질문을 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일정 수준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생성형 AI를 영농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업 데이터도 문제다. AI가 농민에게 정말 유용한 답을 제공하려면 단순한 농업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품종을 재배하고 있는지, 토양과 기상 조건은 어떤지, 과거에 어떤 병해충이 발생했는지 등 개별 농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한국 농업을 잘 아는 AI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신뢰성도 넘어야 할 산이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답을 내놓더라도 농민이 실제 농약 살포나 재배 방식 변경에 활용하려면 답변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농업 전문가의 검증이나 실제 농가의 적용 사례가 함께 제공돼야 AI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당분간 현실적인 AI 활용 모델은 AI가 농업 전문가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1차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가 이를 검증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방대한 농업 정보를 빠르게 찾아 정리하고, 농업 전문가는 현장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최종 판단을 돕는 구조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농업의 AI 전환은 기술 개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농민이 실제로 자주 겪는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AI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쌓여야 한다. 농약이나 비료 사용량을 줄여주거나 병해충 피해를 낮추고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판매 시점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구체적인 경제적 효과가 있어야 지속적인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맥킨지 조사에서 농민들이 새로운 기술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도 결국 경제성이다. 농가 수익성이 악화할수록 불확실한 기술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비용 절감이나 생산성 향상이 분명한 기술에 선택적으로 돈을 쓰게 된다.
생성형 AI가 농업에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별도의 대규모 설비 투자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정보 탐색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간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농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범용 AI를 넘어 농업에 특화된 데이터와 서비스가 필요하다.
세계 농민 6명 중 1명이 생성형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맥킨지의 조사 결과는 농업에서도 AI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AI 농업 전환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AI 서비스를 내놓느냐가 아니다. 농민이 실제로 매일 사용할 수 있는 AI를 누가 먼저 만드느냐다. 농민의 질문에 답하고, 현장의 데이터를 읽고, 농업 전문가의 판단을 보완하면서 실제 소득과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해야 한다.
세계 농업이 AI를 활용해 새로운 영농 방식을 시험하는 동안 한국 농촌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AI를 농업에 도입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AI가 농민에게 실제로 쓸모 있는 도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