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기 안 사요” 와트당 12센트 태양광이 던진 전력회사 딜레마

중국산 패널 와트당 12센트 수준까지.. 가정·기업도 직접 전기 생산
배터리 붙이면 남는 전력 저장.. 전력망 운영·요금체계까지 변화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태양광 패널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형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전력회사가 가정과 기업에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건물 지붕이나 공장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필요한 전력의 일부를 직접 생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터리까지 결합하면 낮에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두었다가 저녁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처럼 전기를 사서 쓰던 소비자가 직접 전기를 만드는 주체로 이동하면서 전력회사의 기존 전기 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 패널 폭락이 부른 자가발전과 가상발전소 혁명
파이낸셜타임스(이하 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산 태양광 패널 가격이 와트당 12센트 수준까지 떨어졌다. 중국 업체들의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난 데다 공급과잉까지 겹치면서 패널 가격이 빠르게 낮아진 결과다. FT는 이처럼 저렴해진 태양광 덕분에 특히 파키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필리핀 등에서 기존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고 가정과 기업이 직접 전력을 생산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태양광 패널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가 직접 발전설비를 갖추는 데 드는 초기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이에 따라 전력망을 통해 전기를 받아 쓰는 것보다 직접 발전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인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력망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지역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송전선과 변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대신 건물이나 공장에 태양광을 설치해 필요한 전력을 현장에서 즉시 생산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력회사 입장에서 단순한 발전원 교체 이상의 문제가 된다. 기존에는 소비자가 필요한 전력을 전력회사에서 구매하는 것이 당연한 기본 구조였다. 하지만 공장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해당 공장은 낮 동안 필요한 전력의 일부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공장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전력의 일정 부분을 태양광으로 충당한다면 그만큼 전력회사에서 사 오는 전기의 양은 줄어든다. 일조량이 많아 태양광 발전량이 높은 날에는 전력 구매량이 더욱 감소한다. 여기에 배터리까지 설치할 경우 낮에 남은 전력을 저장했다가 태양광 발전이 멈추는 저녁 시간대에 활용할 수도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낮에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태양광으로 직접 만들고 남는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저녁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간대에 전력회사로부터 전기를 사 오는 양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배터리가 결합되면서 상황은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전력회사에서 사 오는 전기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필요할 때 저장해둔 전기를 역으로 전력망에 공급하는 것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최근 가정용 태양광과 배터리의 결합이 소비자를 전력시장의 단순한 구매자에서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주체로 바꾸어 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신규 주택용 태양광 설비 중 배터리를 함께 설치하는 비중이 2020년 6%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37%까지 급증했다.

 

여러 가정의 태양광과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 전력회사나 전력시장에 하나의 발전소처럼 제공하는 ‘가상발전소(이하 VPP)’ 역시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개별 가정의 배터리 용량은 작지만 수천~수만 가구를 하나로 연결하면 전력 수요가 몰리는 피크 타임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거대한 전력자원이 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가상발전소 가입은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태양광과 배터리를 동시 설치하는 가구 역시 크게 늘었다.

 

그렇다고 전력회사 입장에서 이를 반드시 위협적인 경쟁자로만 볼 필요는 없다. 여러 가정에 분산된 배터리를 필요한 순간에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면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값비싼 발전소를 추가 가동하거나 새로운 전력설비를 건설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VPP가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의 피크발전소 의존도를 낮추고 변전소 증설 시기를 늦추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팔 전기는 없는데 유지비는 그대로인 전력망 딜레마
문제는 전력회사에서 사 오는 전력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전력망을 유지하는 비용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광을 설치한 가정도 밤에는 전기가 필요하다. 또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격히 떨어진다. 공장 역시 태양광만으로 24시간 필요한 전력을 완전히 충당하긴 어렵다. 결국 기존 전력망은 여전히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전력회사는 태양광을 설치한 소비자가 전기를 덜 구매하더라도 송전선과 변전소, 배전망을 변함없이 유지·관리해야 한다. 소비자가 전력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도 비상시나 필요할 때 언제든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망을 상시 가동 상태로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른 태양광 발전량의 큰 변동성 역시 전력망 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맑은 날 낮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폭증하지만 해가 지면 빠르게 감소한다. 이 때문에 전력회사는 태양광 발전이 집중되는 시간대에는 다른 발전기의 출력을 낮추거나 남는 전력을 저장해야 하고, 반대로 해가 지는 시간에는 줄어든 태양광 발전량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발전원을 즉시 가동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공개한 최근 태양광 추정치에 따르면 9월 13일 오전 9~10시 전체 태양광 출력은 약 2만 261MW로 실제 총수요 대비 태양광 비중이 26.6%에 달했다. 오전 11~12시에는 태양광 출력이 약 2만 8062MW까지 치솟았다가, 오후 들어 급격히 떨어졌다. 오후 5~6시에는 4202MW, 오후 6~7시에는 649MW 수준으로 폭감했다.

 

이는 태양광이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시간과 사람들이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태양광 발전이 가장 활발한 낮 시간대가 지난 후 전력 수요가 다시 높아지는 저녁에는 이를 받쳐줄 다른 발전원이나 저장장치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바로 이 때문에 태양광 확대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낮에 생산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태양광 발전량이 줄어드는 저녁 시간대에 공급하면 발전량의 시간차 간극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력거래소도 올해 봄철 태양광 연계 ESS의 충·방전 시간을 조정하는 운영방안을 시행한 바 있다. 10~16시에 전기를 충전하고 17~24시에 방전하는 방식을 적용해 낮 동안 집중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가 저녁 피크 시간대에 활용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전력회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기를 적게 사 가는 소비자와 많이 사 가는 소비자 사이에서 전력망 유지 비용을 어떻게 공정하게 분담시킬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가 남기 때문이다.

 

태양광을 설치한 소비자는 전력회사에서 사 오는 전력량 자체는 줄어들지만 비상시나 야간에는 여전히 송전선과 변전소를 이용하게 된다. 반면 태양광을 설치하지 않은 소비자는 전력망에 100% 의존하며 관련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태양광 확산이 빨라질수록 전력망 사용료와 전기요금 체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한국전력 역시 분산에너지 확대 기조에 맞춰 전력망 운영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전은 분산에너지에 대한 계통 사용료 및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흩어진 발전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배전망 운영체계 개편과 ESS·수요반응(DR) 등 신규 전력망 운영 기술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분산형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대규모 송전망 건설 부담을 낮춰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배전망 측면에서는 새로운 투자와 운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전은 2025년 말 발표된 제1차 배전망 계획을 근거로, 향후 5년간 약 10조 원 규모의 배전망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태양광, ESS, 전기차, 수요반응 등 다양한 분산형 전력자원들을 하나로 묶어 배전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가 향후 핵심 과제로 꼽힌다.

 

결국 태양광 패널 가격의 하락이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발전소 몇 곳이 태양광으로 바뀌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전기를 어디서 만들고, 언제 저장하며, 누가 소비하고, 남는 전력을 누구와 거래할 것인지 등 전력 생태계의 전 과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회사 역시 전기를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 단방향 유통 역할에만 머무르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생산한 전력을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남는 전력을 효율적으로 저장·관리하며, 필요한 시간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통합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전력 선택권이 넓어지는 긍정적 변화이지만 전력회사에는 풀어야 할 거대한 새로운 숙제가 생긴 셈이다. 전기를 사지 않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전체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함과 동시에 각 가정과 기업에 파편화된 태양광과 배터리 자원들을 전력망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 가격 하락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러한 전력 산업의 대전환도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전력회사가 독점하고 중심이 되었던 전력 공급 구조에 가정, 기업, 배터리 사업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새로운 생산·저장 플레이어로 들어오면서 전력산업의 무게중심이 소수 대형 공급자에서 다수의 분산형 참여자 중심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