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석유값 뛰자 원전에 눈 돌린 일본.. 멈춘 원전 15기 살리나

화석연료 의존도 높은 일본, 연료비 부담에 원전 재가동 카드 만지작
AI 데이터센터·전기차로 전력수요 증가.. 기존 원전 활용해 공급 확대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일본이 멈춰 섰던 원전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화석연료 수입을 늘리며 원전을 줄여왔지만 국제 에너지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불어나는 연료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멈춤 없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기저 전력으로서 원전이 다시 부상한 이유다. 결국 원전의 안전한 재가동 여부가 일본 경제의 에너지 비용과 전력 수급 안정성을 좌우할 최대 분수령이 되고 있다.

 

◆ 석유·가스 수입에 기댄 일본.. 연료비 부담 다시 증가
일본이 원전을 다시 바라보는 배경에는 높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있다. 일본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석유와 LNG 등 주요 발전 연료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거나 중동 등 주요 산유국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일본의 발전비용과 에너지 수입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은 최근 일본의 수입 통계에서도 나타났다. 로이터는 14일(현지시간) ‘Breakingviews’ 분석에서 일본의 7월 원유 수입액이 전년 같은 달보다 88% 증가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8월 20일 발표한 무역통계를 인용한 수치다. 일본의 7월 전체 수입액은 12조1000억엔(약 790억달러)으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입액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이 꼽히는 만큼 원유뿐만 아니라 LNG 등 화석연료 전반의 가격이 오르면 일본 경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더 커진다. 발전 과정에서 해외에서 들여온 연료를 계속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석연료 가격은 국제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만큼 기업과 가계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의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

 

이러한 가격 불안정성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원전이 꼽힌다. 우라늄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점은 같지만 원전은 화석연료에 비해 전체 발전 비용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날씨에 영향받지 않고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일본이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는 주요 배경이다.

 

과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의존도가 급격히 낮아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커다란 정책적 변화다. 실제로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당시 일본에는 54기의 원자로가 있었지만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바 있다. 이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사고 이후 강화된 새로운 안전기준을 마련했고 이 기준을 충족한 원전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이 이뤄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가동 가능한 원전은 33기이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만 다시 가동된 상태다. 원전이 일본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약 10% 수준으로 후쿠시마 사고 이전인 2010년 약 30%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원전 재가동으로 방향을 틀게 된 배경에는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원인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다.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데이터센터가 처리해야 할 연산량이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서버 가동뿐만 아니라 막대한 열을 식히는 냉각 설비까지 24시간 돌려야 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날씨와 상관없이 멈춤 없이 쏟아부어야 하는 이 막대한 기저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원전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 전력수요 늘고 연료비 부담 커지자 기존 원전 재가동 고민
전기차 보급 확대와 산업·가정의 전기화도 전력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휘발유나 도시가스를 직접 사용하는 대신 전기를 이용하는 영역이 늘어나면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문제는 전력수요가 늘어난다고 발전소를 곧바로 새로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 발전소를 건설하려면 부지를 확보하고 환경·안전 심사를 거쳐야 하며 송전망도 함께 확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역시 발전량이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대규모 저장장치와 전력망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건설돼 있는 원전을 다시 가동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기준에 맞춰 설비를 보강하고 규제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발전소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력 공급 능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에 소용되는 구체적인 비용을 적시하며 일본의 방향 전환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는 현재 멈춰 있는 원전 가운데 약 15기를 추가로 재가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200억달러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했다. 원전 한 기를 다시 가동하는 데 최대 10억달러가 들 수 있다는 세계원자력협회(WNA)의 추산을 적용한 것이다.

 

200억달러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일본이 최근 에너지 비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기존 원전 재가동의 경제성을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게 로이터의 분석이다. 특히 연료비 지원은 해외에서 연료를 구매하는 데 계속 투입해야 하지만 원전 재가동에 필요한 자금은 발전소가 가동된 뒤 전력 판매를 통해 회수할 수 있다는 차이도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원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운전에 엄격한 제한을 뒀지만 최근에는 기존 원전의 활용 기간을 늘리고 원전·재생에너지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원전 재가동에는 넘어야 할 절차가 많다.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지진이나 쓰나미 등에 대비한 안전설비도 확보해야 한다.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도 필요하다. 장기간 멈춰 있던 원전의 설비를 점검하고 운전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결국 일본이 원전을 다시 돌리려는 이유를 원전 자체의 찬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 해외에서 석유와 LNG를 계속 사와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 수요는 늘고 있다. 이미 건설해 놓은 원전을 놀려두고 화석연료 수입을 늘리는 것이 맞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이 깔려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커지는 것도 부담이다.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원전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가동을 멈춘 원전이라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원전에서 전기를 만들지 못하는 만큼 부족한 전력을 LNG나 석유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원전 재가동 논쟁도 결국 여기에서 출발한다. 안전 문제를 어디까지 보완할 수 있느냐와 함께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고 전력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원전을 다시 돌릴 필요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