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임종순 칼럼니스트]
언어는 사물의 본질을 담는다. 1986년 11월 대한민국에 처음 도입된 에너지의 이름은 ’액화 천연(天然)가스(Liquifiesd Natural Gas, LNG, )'였다.
영어와 한자, 그리고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3국과 전 세계가 동일하게 사용하는 이 명칭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혜택이자, 석탄과 석유의 매연에 신음하던 현대 문명을 구원한 청정에너지의 대명사였다.
최근 탈탄소 논의의 한편에서 천연가스의 명칭을 '화석가스(Fossil Gas)'나 '메탄가스'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언어적 공격과 함께, 그 친환경성을 뿌리째 부정하려는 무리한 프레임 씌우기가 횡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명분하에, 지난 40년간 천연가스가 한국 사회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궤적 전체를 폄하하려는 이 불필요한 논란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수도권의 하늘을 바꾼 대기환경 혁명의 주역
천연가스 도입 이전, 대한민국 도시의 겨울은 연탄재와 검은 연기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천연가스 도입으로 민생연료는 연탄에서 도시가스로 바뀌었고, 환경부의 '수도권 대기환경보전법'이 시행되면서 수도권 신도시들은 사상 초유의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중앙난방과 청정 가스연료의 보급은 서울과 수도권의 미세먼지와 황산화물을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격 단행된 시내버스의 '천연가스(CNG)' 교체 사업은 대한민국 수송 분야 대기오염을 직격하던 매연을 일시에 씻어낸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매일 시민들이 마시는 공기의 질을 바꾼 이 거대한 삶의 질 향상은 천연가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실질적 환경 혁명'이었다.
K-조선업을 세계 최고로 키워낸 산업의 견인차
천연가스는 단순한 소비재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가 추진한 LNG FOB(본선인도조건) 장기계약과 대량 수송 프로젝트는 국내 조선업계에 세계 최고 난이도의 'LNG 운반선' 건조 기술을 이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축적된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는 오늘날 대한민국 조선업이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시장을 지배하며 세계 1위를 지키는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유수 EPC 기업들의 해외 플랜트 사업을 확장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다.
천연가스는 대한민국의 대기환경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국가 먹거리 산업의 체질 자체를 고도화시킨 주인공이다.
'전환기 에너지'로서의 본질과 명칭의 정당성
물론 천연가스 역시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주성분이 메탄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 이슈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기술적·단계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기후변화 응전의 과제'일 뿐, 천연가스가 지나온 역사적 공헌과 현재의 실용적 가치를 부정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의 치명적 약점인 간헐성을 보완하고, 완벽한 무탄소 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브릿지 에너지(Bridge Energy)'로서 천연가스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천연가스(Natural Gas)'를 부정하고 억지스러운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에너지 전환의 복잡한 실무를 이념화하는 왜곡에 불과하다.
천연가스는 천연가스일 뿐이다.
탈탄소 과속이 놓치지 말아야 할 현실감각
기후변화 이슈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교한 기술적 대안으로 풀어가면 그만이다. 지나친 이념적 도덕주의에 빠져, 우리 국민의 삶을 천지개벽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대기질을 구했으며 조선, 설계・조달・시공(EPC) 산업 등 국내 연관 사업을 키워낸 천연가스의 공(功)을 폄훼하거나 그 가치를 낮추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한 것은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에너지 자원의 확보'다.
해상 수송로가 위협받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엄혹한 안보 현실 속에서, 검증된 공급망과 대체 불가능한 유연성을 가진 천연가스는 단순한 연료를 넘어 국가 생존을 지키는 든든한 보루다.
자연이 준 선물로서 천연가스가 이뤄낸 40년의 유산, 그리고 차가운 에너지 안보의 현실 위에 굳건히 서서, 보다 냉철하고 균형 잡힌 에너지 전환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임종순 칼럼니스트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