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데이터센터도 등급표 붙인다.. EU, AI 인프라에 전력·물 효율 라벨

앞으로 500kW 이상 시설 대상 A~G 등급 표시
지역 물 스트레스·폐열 재활용 여부도 공개키로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에 사실상 환경 성적표를 매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데이터센터에 전력과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공개하도록 하고 지역의 물 부족 위험과 폐열 재활용 여부까지 평가 정보에 포함한다.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대폭 늘리면서도 전력망과 수자원에 미치는 부담은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향후에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물 효율에 대한 최소 성능 기준까지 마련할 방침이다. AI 인프라에 대한 EU의 관리가 단순한 사용량 공개를 넘어 효율성 자체를 관리하는 단계로 확대되는 셈이다. 데이터센터 증설에 필요한 전력과 물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넘어 확보한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까지 새로운 규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 AI 데이터센터에 'A~G급' 효율 등급.. 물 사용까지 들여다본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물 효율을 투명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공통 등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적용 대상은 정보기술(IT) 설비 전력 수요가 500kW 이상인 데이터센터다. 가전제품 에너지 라벨처럼 A부터 G까지 7단계로 등급을 매긴다.

 

전력사용효율(PUE)은 1.15 이하면 최고 등급인 A, 1.9를 넘으면 최저 등급인 G를 받는다. 물사용효율(WUE)은 0.1 이하가 A, 1.0을 넘으면 G로 분류된다.

 

평가 범위는 전력과 물 사용 효율에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의 물 스트레스 수준과 해당 시설의 물 사용량도 공개 정보에 포함된다. 데이터센터가 물이 부족한 지역에 들어설 경우 냉각에 필요한 물 사용이 지역 수자원에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데이터센터가 에너지 시스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도 평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폐열 재활용이다. 서버를 가동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버리는 대신 지역난방 등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고려된다. 전력망 상황에 맞춰 전력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는지도 평가 대상이다.

 

EU 집행위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폐열 가운데 절반가량을 재활용할 경우 유럽 내 약 400만 가구의 난방 수요에 해당하는 열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전력 소비 시설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의 한 축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번 조치가 당장 데이터센터의 전력이나 물 사용량에 상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로이터는 새 등급제가 데이터센터의 총 전력 사용량 공개를 의무화하거나 에너지·물 사용량 자체를 제한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전했다.

 

핵심은 데이터센터마다 제각각 관리되던 효율 정보를 같은 기준으로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새 등급제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거치며, 최종 확정될 경우 2027년부터 개별 데이터센터의 지속가능성 정보에 라벨이 적용될 전망이다.

 

◆ AI 열풍에 데이터센터 급증.. 정보 공개 넘어 최소 효율 기준으로
EU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규제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가 있다. AI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고성능 서버를 갖춘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가 인용한 EU 자료에 따르면 유럽의 데이터센터 용량은 지난해 12GW에서 2030년 28GW로 두 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가 이미 EU 전체 전력 소비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증설이 이뤄지면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전력만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 시스템을 가동해야 하며, 냉각 방식에 따라 상당한 양의 물을 사용할 수 있다. EU 집행위 자료에 따르면 EU 데이터센터의 평균 물사용효율(WUE)은 0.58로 나타났다. 회원국별로는 0.07에서 1.28까지 차이가 컸다. 기후 조건과 냉각 기술 등에 따라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EU의 움직임은 정보 공개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EU 집행위는 등급제 발표와 함께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물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최소 성능 기준 마련에도 착수했다. 21일부터 12주간 공개 의견수렴을 진행해 12월 14일 접수를 마감하고, 관련 입법안은 2027년 2분기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U의 구상은 먼저 데이터센터별 에너지·물 사용 효율을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하고 비교한 뒤 이를 바탕으로 최소 성능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등급제가 데이터센터의 효율 수준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라면, 향후 최소 성능 기준은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시설에 직접적인 규제 부담을 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번 정책 변화는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경쟁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그동안 데이터센터 투자의 핵심 변수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통신망, 토지 확보 등이었다. 하지만 AI용 데이터센터가 대형화하면서 막대한 전력과 냉각 수요가 발생하자 전력망과 수자원에 미치는 영향까지 데이터센터 입지의 중요한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기조 속에서 국내 데이터센터 업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AI용 데이터센터가 대형화할수록 전력 공급뿐 아니라 냉각에 필요한 물 확보와 에너지 효율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EU처럼 효율 기준을 수치화해 관리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면 국내 사업자들의 설계·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효율 기준이 구체화되면 데이터센터를 새로 구축할 때 전력 공급과 부지 확보뿐 아니라 냉각 방식과 물 사용량, 폐열 활용 여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뿐 아니라 한정된 전력과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일이 되는 셈이다.